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옥시' 정리해고 1년의 기록

회사측, 공장매각 후 나몰라라 … 무용지물 된 노동위 복직명령서

등록일 2018년10월22일 11시0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빨래 끝~”


한때 표백제 부문 국내 점유율 90%를 넘나든 ‘옥시크린’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국민세제’다. 현모양처로 분한 여배우가 두 팔을 치켜들며 낭랑한 목소리로 외치던 광고의 한 장면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하지만 국민세제라는 타이틀은 과거의 영광이 되고 말았다. 이달 기준 정부 인정 피해자만 679명, 시민·사회단체 추산 피해자가 56만명에 달하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최대 가해자 RB코리아(옛 옥시레킷벤키저)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여전히 거세다. RB코리아 대표상품인 옥시크린 역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는 신세가 됐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피해자는 또 있다. 옥시크린을 비롯해 물먹는하마·오투액션·쉐리 같은 가정용 생활용품을 생산해온 RB코리아 해고노동자들이다. 회사가 매출 감소를 이유로 전북 익산의 생산시설을 팔아치운 탓이다. 노동자 입장에서 더욱 억울한 점은 익산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은 독성물질 논란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잘못은 회사가 저질렀는데 고통은 노동자들의 몫이다. 무고한 노동자들만 갈 곳 잃은 신세가 됐다. 한때 250여명에 달했던 익산공장 노동자들은 수차례 진행된 희망퇴직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마지막까지 남았다가 끝내 정리해고 된 30여명의 노동자들은 회사를 상대로 1년 넘게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회사는 묵묵부답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제2의 피해자’

 

 

RB코리아는 시민·사회단체가 주도한 옥시제품 불매운동과 주요 대형마트의 옥시제품 입점 거부로 더 이상 익산공장을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매각을 강행했다. 지난해 10월 LG생활건강의 자회사 해태htb(옛 해태음료)와 자산양수도 계약을 맺었다. 익산공장 부지와 건물·포장설비 등 물적자산을 넘기는 내용이다.

 

자산양수 방식이 일반적인 기업 인수·합병(M&A)과 다른 점은 고용승계 의무가 없고 인수기업이 우량자산과 부채만을 떠안는다는 것이다. 주로 기업을 정리하고자 할 때 선호하는 방식이다. 회사의 희망퇴직 요구에 응하지 않고 남아있던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쫓겨났다.
 

“익산공장이 원래 24시간 풀가동 되던 곳이에요. 주문물량이 워낙 많았으니까 3조3교대로 쌩쌩 돌아갔죠. 가습제 살균제 사태가 터진 뒤에도 공장은 지속적으로 가동됐어요. 생산량의 30%가 옥시제품 불매운동과 무관한 수출물량이었고, 대형마트들이 입점을 거부한 건 사실이지만 회사가 자체 운영하는 대리점이나 일반마트·편의점 등에는 납품이 이뤄졌으니까요.”

 

문형구 옥시레킷벤키저노조 위원장의 말이다. 회사가 익산공장을 매각하고 직원들을 해고할 만큼의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는 없었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회사의 태도가 이상했다. 쉐리·파워크린·에어윅·옥시싹싹 같은 제품의 생산을 줄줄이 중단했다. 뿐만 아니라 영국 본사 방침이라며 익산공장에서 생산되던 수출물량을 해외공장으로 넘겨버렸다. 경영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회사가 취할만한 행동은 아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RB코리아 익산공장 주력제품인 '물먹는하마'와 '옥시크린'이 공장이 매각된 뒤에도 '옥시레킷벤키저' 상표를 붙인 채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외투기업 단골수법 … 생산기지 버리고, 영업망 살리고

 

 

RB코리아는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종합생활용품업체 레킷벤키저그룹의 한국 현지법인이다. 레킷벤키저그룹은 지난 2001년 동양화학그룹 계열사던 옥시의 생활용품사업부를 인수해 옥시레킷벤키저를 설립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사명을 RB코리아로 바꿨다.


RB코리아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국내에서 생활용품 사업이 고전하자 의약품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스트렙실·개비스콘 등이 RB코리아의 의약품이다. 의약 부문으로의 전환은 영국 본사의 경영방침과 관련이 있다. 레킷벤키저그룹은 일본·홍콩법인 등에서 헬스케어 사업을 확장해 왔다. 해외의 알짜기업을 인수한 뒤 생활용품 분야에서 기반을 다진 다음, 마진이 큰 사업 분야로 넘어가는 수순이다.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다.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이 공장을 철수하는 등 생산시설을 폐기하면서 밟았던 전철과 판박이다. 자산은 본사가 회수하고, 국내에는 영업·판매망만 남기는 방식이다. 생산이 유발하는 고용창출 효과가 사라지고, 국내시장은 다국적 기업의 판매시장이나 물류창고 전락한다. 주로 외국계 제약회사들이 이런 경로를 거쳤다. 헬스케어 사업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RB코리아 역시 이런 루트를 따라갈 여지가 크다.
 

한 마디로 RB코리아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익산공장 폐쇄와 정리해고라는 카드를 꺼내들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속담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익산공장 매각과 정리해고가 옥시제품 불매운동 때문이라는 RB코리아의 주장이 그저 핑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정황은 또 있다. RB코리아의 핵심 제품이었던 옥시크린과 물먹는하마는 현재 ‘옥시레킷벤키저’ 라벨이 붙은 상태로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옥시크린은 폴란드 생산공장에서 들여와 라벨만 바꿔 붙인 채 판매된다. 물먹는하마는 익산공장을 인수한 해태htb가 만든 뒤 옥시 라벨을 붙여 판매한다.

 

 

음료수회사로 넘어간 세제회사

 

 

생활용품 제조업체인 RB코리아 익산공장이 식음료 제조업체인 해태htb에 자산양수도 방식으로 넘어간 것도 짚어볼 대목이다. RB코리아는 LG생활건강 자회사인 해태htb와의 매각 협상과정 일체를 비밀에 부쳤다. 노조의 정보공개 요구에도 “인수사와 비밀협약을 맺어 공개할 수 없다”고 버텼다.
 

“2016년부터 공장이 매각될 거라는 소문이 돌았어요. 본사에 찾아가 사실 여부를 물었더니 ‘사실무근’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지난해 7월 인수 희망업체라며 두 회사가 익산공장에 현장 실사를 온 거예요. 그 중 한 곳이 LG생활건강이었어요. 그런데 실사단도 아닌 해태htp가 자산을 인수한다는 거예요.”
 

옥시가 해태에 넘어간다는 소식에 업계도 충격을 받았다. 생활용품을 생산해온 익산공장이 식음료 제조사와 시너지를 내기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LG생활건강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장지배적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피하기 위해 해태htb를 인수주체로 내세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7조에 따르면 공정위는 시장지배적사업자(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3개 이하 사업자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75% 이상)의 기업결합을 제한할 수 있다. 이는 다른 회사의 영업용 고정자산을 양수하는 경우에도 해당한다. LG생활건강이 익산공장을 직접 인수했다면 표백제와 제습제 부문 독과점 논란을 피하기 어려웠다. ‘눈 가리고 아웅’인 셈이다.
 

그런데 정작 공정위는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가 기업결합 승인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서면 질의하자, 공정위는 “해태에이치티비(주)의 (유)옥시레킷벤키저에 대한 영업양수 건을 심사한 결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7조(기업결합의 제한) 제 1항의 규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통보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회신했다.
 

“노동자들이 법을 잘 모른다고 해도 이건 정말 이상하잖아요. LG생활건강이 직접 실사까지 나왔는데…. 실질을 따져서 기업들의 편법을 밝혀내는 것이 공정위의 존재 이유 아닌가요? 어떻게 뻔히 보이는 꼼수를 눈 감아 줄 수 있는 건지….”

 


 

 

 

복직명령 모르쇠 … 해고자 ‘힘 빼기’ 나선 회사

 

 

1년 넘게 복직투쟁을 하는 동안 해고노동자들의 일상은 만신창이가 됐다. 무엇보다 경제적 어려움이 크다.
 

“친구들 찾아가서 돈 빌리고, 부모님께 손 벌리고…. 한 마디로 민폐죠. 실업급여는 아무리 길어봤자 8개월 받으면 끝이고. 직장이 없다고 은행에서 대출도 안 해줘요.”
 

이경아 노조 부위원장의 말이다. 노동자 잘못으로 해고된 것이 아닌데, 이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며 복직투쟁을 벌일 수 있는 방안은 사실상 없다. 하다못해 퇴직금 수령도 쉽지 않다.
 

“은행에 가서 퇴직연금 중도인출을 받으려고 했더니, 회사에 가서 고용관계가 종료됐다는 증명서를 받아오라는 거예요. 회사를 상대로 부당해고 여부를 다투는 상태인데 그걸 어떻게 떼냐고요. 황당해서 원.”
 

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를 인정받으면 사정이 나아질까? 옥시레킷벤키저노조는 전북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상태다. 초심판정과 재심판정 모두 “(회사가) 경영상 해고를 위한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해고자들을 원직에 복직시키고, 이들이 정상적으로 근무했다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상당액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회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회사는 최근 노동위원회에 ‘이행강제금’을 냈다.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를 복직시키라는 노동위의 구제명령을 이행하는 대신 ‘돈으로 때우려는’ 것이다.
 

이행강제금 제도는 2007년 근기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됐다. 부당해고 사용자에 대한 기존 형벌규정이 삭제되면서 강제금 제도로 대체됐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구제명령을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는 2천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1년에 2회의 범위 안에서 최대 2년까지 부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제도의 실효성이다. 해고자를 원직에 복직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인건비 총액이 노동위가 부과한 이행강제금 총액보다 많을 경우, 사용자는 신뢰관계가 깨진 노동자를 복직시키기보다는 이행강제금을 납부하면서 재심 또는 행정소송을 청구해 분쟁을 길게 끌고 가려고 한다. 행정 또는 사법상 구제절차를 이용해 근로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동자들의 의지를 약화시려는 목적이다. 전형적인 ‘시간 끌기’다.
 

실제 지난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참석한 박동석 RB코리아 대표는 중노위 원직복직 판정 수용 여부를 묻는 질문에 “(행정소송을) 검토 중”이라는 답변을 되풀이 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구조조정, 그 배경엔?

 

 

RB코리아의 공장폐쇄와 정리해고 과정을 보면 물 흐르듯 막힘이 없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 비롯된 불매운동으로 경영이 악화됐다는 것은 표면적 이유고, 사전에 조율된 시나리오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익산공장의 정리해고자는 모두 36명이다. 자동차나 조선업종 정리해고 사례와 비교했을 때 해고자 규모가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회사가 매각과 정리해고에 대한 노조의 교섭요청에 성실하게 응했더라면, 노사가 한뜻으로 노동자 고용승계를 매각조건으로 내걸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일방통행을 택했다.
 

RB코리아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 때부터 줄곧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으로부터 법률자문을 받아 왔다. 회사가 익산공장 매각에 앞서 노조무력화 작업에 나선 대목에서부터 김앤장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회사는 처음부처 노조 조합원 위주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조합원수가 급감하면서 옥시레킷벤키저노조는 과반수노조 지위를 상실했다. 협상의 주도권을 빼앗긴 것이다.
 

결국 해고 대상자도 아닌 회사쪽 측근인물이 근로자대표로 선출돼 해고협상을 이끄는 웃지 못 할 상황이 전개됐다. 생활용품 사업에서 헬스케어 사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노조라는 걸림돌부터 치우고 가는 모양새다. 매각 협상과정을 비공개로 진행하면서 기업들이 현행법을 우회하도록 유도하고, 노동위 복직판정에 불복하고 소송전을 불사하면서 노동자들의 힘을 빼는 작전도 김앤장의 전매특허다.
 

“외투기업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법인세 감면 같은 각종 혜택을 누리다가, 단물이 빠지면 자본만 회수해서 ‘먹튀’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 사이에 김앤장 같은 대형로펌들이 끼어들어 노사관계를 망치는 경우를 왕왕 봅니다. 분쟁이 있는 곳에 돈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겠죠. 로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분쟁을 조장하기도 하고요.”

 

 

정부는 ‘쌍용차 비극’ 잊었나?

 

 


 

 

 

지금의 상태가 계속된다면 익산공장 해고자들은 낙관적 미래를 그리기 어렵다. 노조는 해고자 전원이 어렵다면 일부만이라도 해태htb에 취업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노조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양보안이다.
 

“회사에 노조간부들은 복직 대상에서 제외해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막 가정을 꾸린 젊은 직원만이라고 인수업체에 취업시켜 달라고 요청했어요.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RB코리아는 더 이상 고용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해태htb는 자신들과는 상관없다는 이유로 노조의 요구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해고자들을 더욱 낙담하게 만드는 건 주무부처인 노동부의 형식적 대응이다. 노동부는 지난 1년여 간 실효성 있는 구제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적극적 중재노력도 없었다. 정부 당국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의 비극을 벌써 잊은 것일까.
 

지난 11일 국정감사에서 이재갑 신임 노동부장관은 RB코리아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하는 이용득 의원의 주문에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문진국 의원의 중재요구에는 “적극 노력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형식적 답변에 그쳐선 안 될 일이다. 주무 부처부터 나서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갈 곳 잃은 노동자들의 호소에 응답해야 한다.

 

정부가 무능으로 일관할 때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는 현실로 발현한다.<끝>

구은회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 0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인터뷰 이슈 산별 칼럼

토크쇼

포토뉴스

인터뷰

기부뉴스

여러분들의 후원금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듭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