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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대화와 공론화: 윤석열 정부의 사회적 대화 평가와 전환

박성국_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등록일 2023년11월27일 15시21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요 약

 

이 연구는 사회적 대화와 공론화가 부재한 정부가 주도하는 개혁정책은 추진 동력을 상실하고 표류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진단은 사회적 대화와 담론 형성을 연구한 선행 문헌에 대한 이론적 검토와 사례 분석에 근거하였다. 사례는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와 1998년 노사정위원회이며, 해당 시기의 언론 매체의 보도기사를 분석해 사회적 대화와 공론장 형성이 관련되었음을 규명하였다.

이에 따르면 선행 사례에서는 노동 개혁에 관한 노사정의 의견 차이가 조율되는 사회적 대화 과정과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언론 매체들의 공론장이 겹쳐진다. 물론 사회적 대화의 활성화와 언론 매체의 높은 관심이 교차하는 시간은 일상적이지 않으며, 특정 시기와 특정 이슈로 제한된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근로시간 개편 등 노동 개혁 과제들이 표류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적 대화와 공론장 형성이 병치하는 한국적 특성과 노사관계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부 주도의 개혁을 고수한 탓이다. 즉 1990년대 중반 이래 사회적 대화와 공론화의 선순환을 바탕으로 역대 정부의 노동 개혁 관행 또는 문법이 형성되었음에도 윤석열 정부는 이와 다른 방향으로 치달았던 셈이다. 본 연구는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 이후 새로운 사회적 대화의 방향과 한국노총의 선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제언한다.

첫째, 윤석열 정부는 역대 정부의 노동 개혁 추진방식을 참고하여 사회적 대화와 공론화에 대해 전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조합을 개혁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대화의 파트너로써 존중해야 한다. 종전과 같이 정부 주도의 개혁 방향과 추진방식이 답습된다면 재개된 사회적 대화는 언제든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소속 산별연맹과 조합원의 요구에 따라 사회적 대화 중단과 대화 기구 탈퇴를 되풀이하였던 한국노총의 전례를 상기해볼 때 이러한 우려는 현실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둘째, 정부가 주도하는 노동 개혁은 노사에게 주는 동기 부여가 낮을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성 또한 없다. 따라서 향후 노동 개혁은 노사가 주도하는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적 대화 국면에서 노동계를 대변하는 한국노총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정부 주도의 개혁과정에 들러리로 전락하거나 수동화되지 않으려면 한국노총은 의제 선정과 논의과정을 적극적으로 주도해야 한다. 즉 근로시간, 노동시장 이중구조, 상생 임금체계, 노조 회계공시, 정부 위원회의 배제 문제 등 노동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특히 사회적 대화의 장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와의 공식·비공식 의사소통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사회적 대화의 의제와 과정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참여자 수의 축소로 인해 사회적 대화 과정과 정책내용의 질이 낮아지는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며, 협상 역량의 강화에도 기여한다.

 

 

 

Ⅰ. 문제 제기1)

 

한국노총과 정부가 지난 11월 13일 사회적 대화를 재개하기로 하였다. 한국노총은 6월 7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참여를 전면 중단한다고 밝힌 이후 5개월여 만에 사회적 대화 기구에 복귀하기로 한 것이다. 그간 한국노총은 망루에서 농성 중이던 금속노련 간부에 대한 경찰의 강경 진압과 함께 근로시간 개편, 노조 회계 공시 등 정부 주도의 노동 개혁에 대해 강하게 항의하였다. 노정 관계를 경색시킨 문제들이 해결되거나, 노정 간 합의점이 만들어져 대화 국면이 조성된 것은 아니다. 한국노총과 정부가 사회적 대화 재개에 호응하면서 국면이 일시적으로 바뀐 것이다. 노정 갈등의 지뢰는 여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따라서 국면은 바뀌어도 안정적으로 지속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현재로선 갈등과 대립을 자초한 행태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사정이 차분하게 과거를 복기할 필요가 있다. 역대 정부 사례를 보면 정권교체 시기에는 새 정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사회적 대화가 활성화되었다. 사회적 대화를 통한 이해 당사자 간 이해의 조정과 맞물린 공론장이 형성되면서 노동 개혁은 지속성을 갖게 되었다. 반대로 정부 주도의 노동 개혁은 이해당사자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좌초하거나, 공론장을 형성하지 못한 채 표류하였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노정 갈등과 사회적 대화의 중단이라는 이례적인 사건이 왜 일어난 걸까.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노동 개혁은 역대 정부의 노동 개혁과 무엇이 달랐을까.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 이후 노동계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까.

 

본 연구는 윤석열 정부가 정권교체 시기 여소야대 정국에서 나타났던 노사정 사회적 대화와 여야 협치에 따른 개혁 입법의 관행을 따르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대신 2022년 5월 출범 이후 윤석열 정부는 정부 주도의 노동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하였다. 이것은 역대 정부에서 추진한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동 개혁과는 사뭇 다른 전개이다. 결과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혁 표류는 사회적 대화와 공론장 형성이 병치하는 한국적 특성과 노사관계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부 주도의 개혁을 고수한 탓으로 진단된다. 즉 1990년대 중반 이래 사회적 대화와 공론화의 선순환을 바탕으로 역대 정부의 노동 개혁 관행 또는 문법이 형성되었음에도 윤석열 정부는 이와 다른 방향으로 치달았던 셈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 이후 정부가 전향적인 방향으로 행태를 바꾸어야만 노동 개혁이 실질적으로 추진될 수 있으며, 노사 또한 의제 선정과 논의를 주도하는 참여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 연구는 사회적 대화와 담론 형성을 연구한 선행 문헌에 기대어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와 1998년 노사정위원회의 논의과정을 정성적 방법으로 검토해 사회적 대화와 공론화의 맥락을 분석한다. 해당 사례는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동 개혁과 공론화 추진방식의 전형으로써 검토된다. 또한 1996년 초부터 1998년 말까지 주요 언론 매체의 노동문제 기사 빈도를 정량적으로 분석해 사회적 대화와 공론장 형성이 관련되었음을 규명한다. 끝으로 본 연구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혁 추진방식에 대한 평가와 함께 공론장을 분석하는 한편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 이후 새로운 사회적 대화의 방향과 한국노총의 선택에 대해 제언한다.

 

 

Ⅱ. 이론적 검토: 사회적 대화와 공론화

 

1. 담론 형성 기제로서 사회적 대화

 

슈미트(Schmidt, 2008)에 따르면 담론(discourse)은 행위자들이 말 그대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논의하는 것이다. 정책과정론으로 접근하면 담론은 정책결정자와 이해관계자들이 사회적 논의과정을 통해 정책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박보영, 2019). 여기서 슈미트는 누가(행위자), 언제·어디서(제도적 맥락), 무엇(정책 아이디어)을 말하였지에 대해 주목한다. 그는 행위자들 간의 정책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소통하는 ‘담론적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이러한 담론적 상호작용 과정은 아이디어를 재현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적 사실(사건)에 인과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Schmidt, 2008). 이것은 자신과 타인이 함께하는 공론장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담론의 기능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제도는 행위를 제약하는 구조적 결정요인이거나 그 자체로 연속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정책 아이디어의 정당성을 설득하는 담론 과정 상에 있는 것으로 규정된다. 그렇다면 사회적 대화와 공론화 또는 담론은 어떠한 관계일까.

 

사회적 대화는 노사정 행위자 간의 담론적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담론을 형성하는 기제이다. 즉 국가 수준의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 정부는 공공정책을 협의·합의하는 사회적 대화의 전 과정에서 담론적 상호작용을 한다. 사회적 대화를 하는 동안 이해관계자 간의 조정된 담론이 형성되며, 이것은 사회적 합의 또는 사회협약이라고 호명된다. 여기서 사회적 대화의 핵심 쟁점들은 언론 매체를 매개로 국민적 공론장에 소환되어 담론을 형성한다.

 

이처럼 사회적 대화 과정에서 노사정의 조정된 담론이 형성되며, 국민과의 소통 담론 또한 활성화된다(박성국, 2022). 하지만 슈미트의 가설에 근거해 일부 선행연구는 권위주의적 정부의 유산을 가진 한국의 경우 이해관계자의 조정 담론뿐만 아니라 국민과의 소통 담론마저 활성화하지 않았다고 분석한다(주재현, 2007). 본 연구는 해당 연구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전개된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동 개혁과 공론화의 한국적 특성을 역사적으로 분석하지 못하였다고 진단한다. 즉 사회적 대화와 공론화를 바탕으로 전개된 한국의 노동 개혁에 대해 역사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고 본다.

 

2. 1990년대 중반 이후 노동 개혁의 공론화

 

본 연구는 1990년대 중반 이래 한국의 노동 개혁이 다음과 같은 추진방식과 공론화의 단계를 거친 것으로 규정한다. 1단계에서는 사회적 대화 성립 이전에 노동 개혁을 둘러싼 복수의 정책 아이디어들이 경쟁하는 담론지형이 형성된다. 경쟁하는 노동 개혁 아이디어에는 ‘정책문제의 원인 진단과 처방’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것을 매개로 노사정 행위자들은 사회적 대화를 시도한다. 2단계에서는 노사정이 사회적 대화 테이블을 만들어 핵심 쟁점에 대한 상호 토론과 설득을 중심으로 담론적 상호작용을 한다. 3단계에서는 공통된 관심사와 공유된 이해를 바탕으로 노사정의 조정된 담론이 형성되며, 이것은 사회적 합의로써 표출된다. 노사정이 합의한 정책 패키지 형태의 노동개혁안은 의회의 입법과정을 거치며, 후속 개혁 과제와 연계된다. 사회적 대화의 전 과정과 언론 매체들의 의사소통 담론이 상호작용할수록 공론장은 더욱 활성화된다. 이러한 노동 개혁과정에는 정치·경제의 변화, 제도적 맥락과 정책 유산이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1997년 노사관계개혁위와 1998년 노사정위원회 사례는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동 개혁 공론화의 전형으로써 평가된다. 1996년 이전의 사회적 대화는 공론화를 고려하지 않았으며, 실행과정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였다. 1996년 이후 노사정은 정책적 불확실성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대화를 하였으며, 국민적 공론화를 바탕으로 노동 개혁을 추진하였다. 이 가운데 노사정이 합의하지 못하거나, 합의를 파기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는 사회적 대화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주목한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발생한 노동 개혁의 공론장 형성과 확산 과정을 분석한다.

 

본 연구는 과정 추적 방법을 채택하여 사회적 대화와 공론화를 분석하였다. 과정 추적 방법은 인과관계 연구에서 어떻게 의사결정이 이뤄지며, 어떠한 순서로 발생했는지, 변수 간 상호작용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설명한다(박성국, 2022). 연구대상은 사회적 대화와 공론화의 전형적 사례로서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 1998년 노사정위 논의과정을 설정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혁 추진방식을 평가하는 한편 새로운 사회적 대화의 방향에 대해 제언하였다.

 

 

Ⅲ. 사례 분석: 노사관계개혁위원회와 노사정위원회

 

본 연구는 사회적 대화의 출현 배경과 특성, 대화 기구의 구조와 위원 구성, 합의 이슈와 이행을 중심으로 노사관계개혁위와 노사정위의 활동 맥락을 검토한다. 또한 주요 언론들의 보도기사 노출 빈도를 분석해 사회적 대화와 공론화의 관련성을 규명한다.

 

1.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

 

김영삼 정부 시절 출범한 노사관계개혁위원회는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동 개혁 공론화의 원형으로써 평가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노동기구(ILO)의 가입에 따른 국제노동기준의 준수, 세계화와 국제화를 추구하였던 김영삼 대통령은 1996년 4월 24일 노사정 관계자와 언론계, 학계, 법조계, 시민단체 등 2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노사관계 구상을 발표하였으며, 이를 추진하는 대통령 직속의 노사관계개혁위 설치를 지시하였다. 이 기구는 종전과 같이 비공개 방식이거나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며, 노사단체와 공익위원이 주도하는 공개적인 논의기구를 지향하였다. 이러한 전환은 노사관계개혁위에 양대 노총이 함께 참여하면서 가능했다.

 

노사관계개혁위는 대통령령에 따라 설치된 ‘대통령 자문기구’로서 위상을 가지며 한시적으로 활동하였던 비상설기구로서 특성을 가졌다. 소속 위원은 노사단체와 공익 및 학계 위원으로 구성되었으며, 정부는 위원회의 공식적인 성원이 아니지만 회의 및 운영을 지원하였다. 노사관계개혁위는 전체회의-운영위원회-분과위원회-소위원회로 편재된 4층 구조였다. 전체회의는 양대 노총, 경영계, 공익 및 학계 위원 30명으로 구성된 최고 의결기관이며, 양대 노총과 경영계는 각 5명씩, 공익 및 학계 위원이 각 10명씩 참여하였다.

 

전체회의는 최종 의사결정기구였지만 실질적으론 노사 단체와 학계 및 공익위원이 참여한 분과위원회와 소위원회에서 쟁점이슈에 관한 합의 도출이 추진되었다. 분과위원회는 노사의식과 관행개선(1분과), 노동관계법·제도 개선(2분과), 공공부문 및 노동행정 쇄신(3분과)이 설치되었다. 소위원회는 개혁과제에 대한 심층 토론을 위해 분과위원회 내 설치되었다(노사관계개혁위원회, 1998).

 

노사관계개혁위는 노동 개혁을 3단계로 추진하였다. 1단계는 1996년 5월부터 8월까지의 노사관계 개혁의 기반 구축기이다. 이 기간에는 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노사관계 개혁의 기반을 구축하는 과제가 설정되었다2). 2단계는 1996년 9월부터 12월까지의 노사관계 제도의 개혁기이다. 노사관계개혁위는 노동법 개정이라는 소극적 접근을 지양하되, 노사관계 개혁을 위한 국민운동으로 접근하며 각계 각층의 공개적 논의를 통한 국민적 합의를 목표로 세웠다.

 

이전까지 노사관계 논의가 노동법 개정에 한정한 데다 비공개로 진행되니 노사 간 대립과 불신만 조장되어 공론화되지 못한 점이 고려되었다(노사관계개혁위원회, 1998). 노동 개혁의 3단계는 1997년 1월부터 12월까지의 시도된 신노사문화 확산 시도이다. 1년 동안 진행되었던 노사관계개혁위의 사회적 대화는 후속 개혁 과제와 연계되었다.

 

이에 따라 노사관계개혁위는 8월 12일 노사 합의 존중을 기본원칙으로 노사와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된 노동관계법 개정 요강 소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소위원회는 총 26차의 회의를 개최하여 전체회의에 상정할 노동관계법 개정요강(안)을 마련하였다. 이에 따라 노사관계개혁위는 11월 7일 전체회의에서 노동관계법 개정요강(안)을 최종적으로 심의·의결을 하였으며, 11월 12일 개정요강(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

 

그런데 노사가 일부 쟁점에 대해 합의하지 못한 가운데 개정 요강(안)에는 미합의 쟁점 사항이 명시되었다. 이에 따르면 개정요강(안)은 총 141건의 심의된 노동관계법 안건 가운데 98건의 합의안, 43건의 미합의안으로 구성되었다. 미합의 사항은 복수노조 허용, 제3자 개입금지, 교원 및 공무원의 단결권,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파업기간 중 임금지급 제한, 변형근로시간제,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 파견근로제 등이다.

 

정부는 공익위원안을 대폭 수정한 노동법 개정안을 발의하였으며, 집권당인 신한국당은 1996년 12월 26일 새벽 환경노동위원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은 채 노동법 개정안과 안기부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 처리하였다. 이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1996년 12월 26일부터 1997년 2월 28일까지 역사상 최초의 공동 총파업과 집회를 벌이면서 개정 노동법의 철회를 요구했다. 결국 김영삼 대통령은 1997년 1월 21일 여야 간 영수 회담에서 정리해고제 2년간 유예 등 노동법 재개정을 합의하였다. 양대 노총의 총파업을 포함한 저항에서 비롯된 여야의 노동법 재개정안은 같은 해 3월 10일 국회를 통과하였다.

 

2. 1998년 노사정위원회

 

1997년 완성된 금융 자유화와 자본시장의 전면 개방,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으로 상징되는 세계화 정책은 외환위기의 원인이 되었다. 특히 1997년 1월 23일 한보철강과 ㈜한보가 최종 부도 처리되면서 한국은 국가적인 경제위기 상태에 처했다. 급기야 김영삼 정부는 1997년 12월 3일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이를 기점으로 재벌기업 산하 계열사들이 대거 부도 처리되면서 한국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김상조, 2010).

 

이에 따라 노사정은 경제위기와 IMF 개입과 같은 외부제약과 정책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노사정 3자 회의를 추진했다. 사용자단체는 재벌개혁을 제어하는 한편 노동시장 유연화를 고려하였으며, 노동조합은 재벌개혁을 강화하는 한편 노동시장 유연화를 규제하려 했다. 정부는 사용자에게 재벌개혁과 노동기본권 보장을 유도하는 한편 노동조합에게 노동시장 유연화를 수용하도록 설득했다.

 

이에 따라 1기 노사정위원회는 1998년 1월 15일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노사정위원회에는 노사정 및 정치권이 대화의 주체로 참여한 가운데 공익위원은 제외되었다. 이러한 위원회의 구성은 합의 도출에 실패한 노사관계개혁위의 위원 구성과 차별화한 것이며, 합의안의 도출 및 이행(입법)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노사정위원회는 본위원회-기초위원회-전문위원회로 구성된 3층 구조의 체계로 이뤄졌다.

 

본위원회는 김대중 당선자 측의 한광옥 국민회의 부총재를 위원장으로 하여 양대 노총 위원장 2명, 전경련·한국경총 등 사용자 측 2명, 재경원장관·노동부장관 등 정부 측 2명, 4개 정당 위원 4명 등 10인으로 구성됐다. 본위원회 산하의 기초위원회는 노조 측 5명, 사용자 측 5명, 정당 및 정부 측 6명으로 구성되었다. 한편 대통령 자문기구인 노사정위원회는 1998년 6월 8일 대통령령으로 설치됐으며, 1999년 5월 법이 제정되어 제도화되었다.

 

노사정위원회의 노동 개혁 추진방식은 3단계를 거쳤는데 다음과 같다. 1단계는 노사정의 대타협의 시기이다. 노사정은 1998년 1월 20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간의 공정한 고통 분담에 관한 노사정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후 노사정은 1998년 2월 6일 90개 항으로 이뤄진 사회협약안을 합의한 데 이어 2월 9일 합의안에 서명했다. 노사관계개혁위는 ‘선 공론화 후 대타협’을 추진했다면 노사정위는 ‘선 대타협 후 이행과 공론화’를 추진한 셈이다. 이것은 경제위기라는 조건에서 추진되는 노동 개혁방식이 차별화되는 것을 보여준다

 

2단계는 합의사항 이행과 추가 합의 도출의 시기이다. 이 단계에서 노사정은 합의사항 이행점검 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후속 개혁과 관련된 합의 도출을 위해 머리를 맞대었다. 1998년 3월부터 1998년 12월까지 활동하였던 2기 노사정위원회가 그러한 예이다. 3단계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대화 기구의 제도화를 추진하는 시기이다. 노사정은 각종 정책토론회와 국민제안을 바탕으로 노사정 협력방안을 도출하는 한편 노사정위원회의 제도화를 이뤄냈다.

 

이 기간에 노사정은 90개 조항으로 이뤄진 2·6 사회협약과 10개의 후속 합의를 포함해 100개의 합의 조항을 도출하였다. 합의 조항 가운데 경제정책 의제(40개)가 가장 많은 가운데 그 다음은 사회복지 의제(31개), 노사관계 의제(17개), 노동기본권 의제(8개), 노동시장 의제(4개) 순이었다. 노사관계개혁위에서 논의된 노사관계·노동시장 개혁의제는 노사정위에서도 쟁점화되었으며, 여기에 재벌개혁과 사회복지 의제가 합의 조항에 추가되었다.

 

그러나 양대 노총 중 민주노총 대의원들은 1998년 2월 9일 8차 임시대의원대회에 상정된 사회협약 승인 안건을 부결시켰다. 이에 따라 배석범 위원장 직무대행 등 민주노총 지도부는 대의원대회의 결정을 수용해 총사퇴하였다. 그럼에도 의회 내 소수 의석을 가진 정부·집권당과 다수 의석을 가진 야당은 위기 극복을 위해 사회협약 법안의 국회 통과에 협조하였다. 이후 여야는 사회협약에 후속 과제로 명시된 노사정위원회법을 논란 끝에 처리하였다.

 

3. 사회적 대화와 언론 매체의 공론화

 

노사관계개혁위와 노사정위는 노동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 간의 상충하는 이해를 조정하여 합의안 도출을 시도하였다.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를 거쳐 조정된 담론이 형성되는 한편 공론화가 이뤄졌다. 이러한 과정은 의회 입법과정과 후속 개혁 과제와 연계되었다. 본 연구는 1996년 초부터 1998년 말까지 주요 언론의 보도기사 빈도와 그 추이를 분석해 사회적 대화와 공론장 형성과의 관련성을 분석하였다.

 

[그림 1]과 같이 노사관계개혁위와 노사정위의 핵심 쟁점과 관련된 주요 단어에 대한 종합일간지(8곳)와 방송사(2곳)의 보도 기사의 노출 빈도를 분석하였다4). 관련 보도기사에 포함된 주요 단어 가운데 정리해고, 노동법 개정, 노사정 합의, 재벌개혁, 복수노조, 노사정위원회, 신노사관계, 교원노조, 사회복지, 경영참여 순으로 노출 빈도가 높았다. 이 가운데 신노사관계, 복수노조, 경영참여, 정리해고, 경영참여 등은 노사관계개혁위의 핵심 쟁점과 관련된 단어이다. 정리해고, 재벌개혁, 복수노조, 노사정위원회, 노사정 합의, 교원노조, 사회복지는 노사정위원회와 관련된 핵심쟁점이다. 양 시기에 걸쳐 가장 높은 보도기사 노출 빈도를 기록한 단어는 ‘정리해고’였다.

 

세부적으로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노동기구(ILO) 가입에 따라 국제노동기준과 노동기본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노사관계개혁위 시기(1996년 9월부터 1997년 4월까지)에는 복수노조·경영참여 등의 단어가 주목받았다. 또한 경제위기 극복방안 논의와 연계된 노사정위원회 시기(1997년 12월부터 1998년 3월까지)에는 정리해고·재벌개혁·사회복지 단어의 언론 노출 빈도가 높았다. 다만 이전 시기 높은 노출빈도를 기록한 정리해고 단어는 현대자동차 노사갈등이 불거졌던 1998년 7월부터 9월까지 언론 지면을 가장 많이 차지한 단어로 재부상한다. 이후 교원노조와 사회복지는 국회의 입법 시기와 맞물려 언론보도의 노출 빈도가 높았다.

 

한편 [그림 1]과 같이 노사관계개혁위와 노사정위의 핵심 쟁점과 주요 언론의 보도 추이는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준다. 첫째, 노동 개혁 공론화와 사회적 대화의 국면이 겹치는 시점이다. 1996년 9월부터 1997년 4월까지, 1997년 12월부터 1998년 3월까지는 사회적 대화가 전개되는 시기인 가운데 이 기간에 노동 개혁 쟁점이 공론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즉 노동 개혁과 관련된 주요 단어들은 주요 언론의 보도기사에서 노출 빈도가 증가하기 시작하다가 국회의 입법 국면까지 그 추이가 이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사회적 대화 이전 또는 이후 시기에는 노동 개혁 쟁점 단어의 언론보도 노출 빈도는 급격하게 감소한다. 둘째, 사회적 대화와 노동 개혁을 상징하는 단어들이 겹쳐지는 현상이다. [그림 1]과 같이 노동법 개정·노사정 합의·노사정위원회 등 사회적 대화를 상징하는 단어와 복수노조·정리해고·재벌개혁 등 노동 개혁을 상징하는 단어의 언론보도 노출 빈도는 동반 상승하는 추이를 보인다. 이러한 사항을 고려할 때 사회적 대화가 활발한 시기에는 노동 개혁 핵심 쟁점에 대한 공론장이 형성된다. 주요 언론들은 사회적 대화의 쟁점과 개혁 과제에 대한 높은 국민적 관심을 반영하는 한편 문제 해결방식으로써 노사정 합의에 대한 우호적인 담론을 형성한 것이다.

 

그러나 노사정 합의 등의 단어와 맞물리지 않는 시점에는 노동 개혁 상징 단어의 언론 노출 빈도가 낮은 편이다. 이러한 결과는 1996년 이후 노동 개혁이 사회적 대화를 거쳐 국민적으로 공론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실증적인 근거로써 평가된다. 역으로 사회적 대화를 거치지 않은 노동 개혁의 의제는 공론화하기 어려운 조건인 것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양상들은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동 개혁의 공론화 방식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Ⅳ. 해석과 진단: 윤석열 정부의 사회적 대화 평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사회적 대화는 사실상 불능상태이다. 한국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를 탈퇴하면서 대화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5). 그간 한국노총 지도부와 경사노위 위원장 간 물밑 채널과 만남은 있었지만, 사회적 대화 재개를 위한 공식 접촉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경사노위는 노동개혁 과제 논의를 위해 노사관계제도·관행 개선 자문단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연구회를, 새 이슈 대응과 특별위원회 추진을 위해 초고령사회 계속고용 연구회를 운영하였다.

 

문제는 해당 연구회에는 이해당사자인 노사단체 대표자가 참여하지 않은데다, 연구회는 운영 세칙상 임의기구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연구회는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와 합의 도출을 위한 공식적인 회의체를 준비할 수 있지만 대체하는 기구는 아니다. 그렇다면 임의기구인 연구회 운영이 전부인 경사노위의 활동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경사노위가 왜 불능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느냐를 살펴봐야 한다. 이것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혁 추진방식과 과정을 되짚는 것과 관련된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 개혁을 공언하면서 정작 노사의 참여를 유도하기보다 개혁의 대상으로 여겼다. 근로시간 유연화, 임금체계 개편,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등 노동 개혁 과제를 추진하면서 학자·전문가 중심의 연구회 및 위원회의 자문을 받았다. 또 다른 한편에선 윤석열 정부는 건설현장 불법행위 특별단속, 노조 회계 공시제도 적용 등을 노사 법치주의 실현 과제로써 추진하면서 노조를 개혁대상으로 규정하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노사관계에서의 법과 원칙의 엄정한 적용을 성과로써 평가한다. 최근 노사 정상 단체의 회계처리 공시제도 수용을 노동 개혁 사례로써 지목한다6). 노사관계 ‘관행’에서의 법치주의 개혁의 효과가 나타났다는 게 정부 측의 해석이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학자와 전문가 의견을 반영했다는 근로시간 제도개편안7)은 노동계와 국민 여론의 부정적 평가에 직면해 표류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애초 6~7월 근로시간제 개정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려 하였으나, ‘장시간 노동을 조장한다’라는 비판이 일어나면서 발표 8일 만에 윤 대통령의 보완지시가 내려졌다. 이후 고용노동부는 6천여 명의 설문조사와 인터뷰 조사를 시행해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을 보완하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법안의 국회 제출은 미뤄졌다. 이처럼 제도개혁이 사라진 자리에 노사관계를 관리하는 정부의 행태로서 법치주의만 남았으며, 이것이 성과로써 규정되었다.

 

문제는 법치주의 효과가 윤석열 ‘정부’의 성과보다는 ‘검찰과 경찰’의 공안 실적으로 부풀려진 점이다. 실제 경찰은 2022년 12월부터 2023년 8월까지 250일 동안 건설현장 불법행위 특별단속을 진행한 결과, 4천 829명을 검찰에 송치하고, 148명을 구속하는 실적을 거뒀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아시아투데이, 2023.8.22)8). 이처럼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혁은 검거 실적과 구속자 수로써 국민에게 각인되었다. 건설업의 제도개혁과 노사관계의 관행 변화를 유도하는 내각(국토건설부·고용노동부)의 역할은 사라진 대신 경찰과 검찰의 실적만 남은 셈이다.

 

국민은 법적 처벌을 앞세운 정부의 개입에 따라 건설공사 현장의 노사관계 관행이 어떻게 변하였는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사례는 노사관계 제도와 관행의 개혁과정으로 국민에게 인식된 역대 정부의 노동 개혁과는 다른 양상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노동 개혁 과제의 공론화 양상은 어떠할까.


 

 

[그림 2]와 같이 본 연구는 2022년 5월부터 2023년 10월 31일까지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혁과 관련된 핵심 단어에 대한 주요 언론의 보도기사 노출 빈도를 분석하였다. 이에 따르면 주요 언론의 보도기사에서 사회적 대화, 근로시간, 중대 재해, MZ 노조, 노동시장 이중구조, 노사 법치주의, 직무성과급 등 단어 순으로 노출 빈도가 높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회적 대화와 관련된 언론보도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어졌지만 특정 시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았다.

 

아울러 사회적 대화 과정과 맞물리는 개혁 의제들에 대한 언론보도의 노출 빈도 증가 현상은 재현되지 않았다. 이것은 주요 언론들이 사회적 대화가 중단된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나마 ‘근로시간’ 단어는 2023년 3월부터 2023년 4월까지 두 달여 동안만 언론보도 노출 빈도가 가장 많이 증가하였다. 그러나 근로시간 개편안이 표류하면서 언론보도 노출 빈도는 급격하게 감소하였는데 이것은 언론들이 낮은 국민적 관심도를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림 2>의 주요 언론의 보도기사 추이에서 보듯이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혁 의제들은 공론장에서 활발하게 호명되지 못한 채 그 동력을 상실하는 양상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노동 개혁의 표류는 사회적 대화와 맞물려 공론장이 형성되는 한국적 특성과 노사관계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부가 자기 주도의 개혁을 고수한 탓으로 진단된다. 즉 1990년대 중반 이래 사회적 대화와 공론화의 선순환을 바탕으로 노동 개혁 관행 또는 문법이 형성되었음에도 윤석열 정부는 이와 다른 방향으로 직진했다가 좌초한 셈이다.

 

 

Ⅴ. 결론: 노사 주도의 사회적 대화를 위한 제언

 

노사관계개혁위원회와 노사정위원회의 노동 개혁 사례가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선행 사례들은 노동 개혁과정에서의 국민적 공론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1990년대 중반 이래 노동 개혁은 노사정의 상충하는 이해가 조정되는 사회적 대화 과정과 언론 매체들의 공론화가 맞물리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의 활성화와 언론 매체의 높은 관심이 병치하는 시간은 일상적이지 않으며, 특정 시기와 특정 이슈로 제한된다. 노사관계개혁위와 노사정위는 사회적 대화와 공론화라는 양 날개를 바탕으로 노동 개혁을 추진한 공통점이 있지만 노동 개혁의 추진방식은 차별화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노동 개혁이 사회적 대화와 공론화의 선순환을 바탕으로 추진돼야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근로시간 개편 등 노동 개혁 과제들이 공론화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적 대화를 거쳐 공론화하지 않은 채 정부 주도의 개혁이 추진되면 노동 개혁은 동력을 상실한 채 표류한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역대 정부의 노동 개혁 추진방식을 참고하여 사회적 대화와 공론화에 대해 전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종전과 같이 정부 주도의 개혁 방향과 추진방식이 답습된다면 재개된 사회적 대화는 언제든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소속 산별연맹과 조합원의 요구에 따라 사회적 대화 중단과 대화 기구 탈퇴를 되풀이하였던 한국노총의 전례를 상기해볼 때 이러한 우려는 현실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에 따라 노동 개혁 방향과 추진방식을 새롭게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첫째, 윤석열 대통령 스스로 사회적 대화 활성화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경제위기와 같은 불확실성이 큰 시기를 제외한 나머지 시기의 노동 개혁은 대통령이 주도한 구상 또는 선언으로부터 시작된 공통점을 갖고 있다. 1996년 4월 24일 김영삼 대통령의 ‘신노사관계 구상’, 2004년 5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의 ‘노사 대화와 타협 제안’, 2013년 5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의 ‘고용률 70% 달성 로드맵 추진 선언’이 그러한 예이다. 물론 경제위기 시기의 대통령들도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 적극적이었다.

 

둘째, 윤석열 정부는 노사를 개혁대상이 아니라 동반자로서 여겨야 한다. 지난 30여 년 동안 사회적 대화와 합의가 지속된 것은 정부의 노력만 아니라 노사단체의 참여와 기여가 결정적이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사회적 대화의 지속과 성공은 정부의 태도 전환에 달렸다. 따라서 향후 노동 개혁은 정부 주도 개혁에서 노사가 주도하는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적 대화 국면에서 노동계를 대변하는 한국노총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정부 주도의 개혁과정에 들러리로 전락하거나 수동화되지 않으려면 한국노총은 의제 선정과 논의과정을 적극적으로 주도해야 한다. 즉 근로시간, 노동시장 이중구조, 상생 임금체계, 노조 회계공시, 정부 위원회의 배제 문제 등 노동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미래 현안을 포함한 노동 개혁 의제는 새롭게 설정돼야 할 것이다.

 

특히 사회적 대화의 장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와의 공식·비공식 의사소통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사회적 대화의 의제와 과정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참여자 수의 축소로 인해 사회적 대화 과정과 정책내용의 질이 낮아지는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며, 협상 역량의 강화에도 기여한다.

 

 

<참고문헌>

 

김상조(2010), “재벌중심 체제의 한계: 경제력 집중 심화 및 폐쇄적 지배구조의 폐해와 극복 방안”, 안현효 편.『신자유주의 시대 한국경제와 민주주의』, 서울: 선인.

박성국(2023),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동개혁 공론화 분석: 1996년부터 2016년까지 사례 중심으로” , 『노동개혁 의제 설정과 공론화 사례 연구』, 한국노동연구원 편(출간 예정).

박성국(2022), 『사회적 학습을 통한 전략적 선택: 한국 사회협약과 입법체계의 진화』, 한양대학교 경영학 박사학위 논문.

박보영(2019), “사회복지정책 형성과정 분석을 위한 새로운 이론 틀의 모색: 담론제도주의를 중심으로”, 『사회적질연구』 제3권 제3호(2019.12), pp.95-129.

주재현(2007), “정책형성 담론의 국가 간 비교분석: Schmidt의 제도적 담론분석 적용”, 『현대사회와 행정』제17권 제1호(2007. 4), pp.29~57.

 

Schmidt(2008), “Discursive Institutionalism: The Explanatory Power of Ideas and Discourse,” The Annual Review of Political Science 11, pp.303–326.

 
 

<미 주>

 

1)이 연구는 한국노동연구원이 2023년 출간할 예정인 “노동개혁 의제 설정과 공론화 과정 사례 연구(가제)”에 포함된 박성국의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동개혁의 공론화 분석: 1996년부터 2016년까지 사례를 중심으로’를 바탕으로 수정·보완하였다.

2)노사관계개혁위는 내부 의견 조율을 위한 워크숍과 기업현장 방문, 국민제안 창구 설치, 여론조사 실시, 국민공청회 개최, 노사단체로부터 의견 수렴, 학술연구 용역 실시 등 공론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노사관계개혁위원회, 1998).

3)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의 상향식 노동 개혁방식은 2006년 노사정 대타협, 2015년 노동시장 구조개선 합의에영향을 주었다. 반면 1998년 노사정위의 하향식 노동 개혁방식은 2009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합의에서 재현되었다(박성국, 2023).

4)본 연구에서 언론보도 분석대상은 국민일보, 세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서울신문, 한국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KBS, MBC 등 종합일간지와 방송사이다. 종합일간지로 등록된 문화일보·내일신문은 1990년대 이후에 창간된 점을 고려해 배제되었다. SBS 등 타 방송사도 같은 이유였다. 조선일보는 해당 시기와 관련해 BIG Kins를 통한 기사검색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 주요 언론의 보도기사에서 분석된 주요 단어는 사회적 대화 의제와 관련한 노사정의 제안문, 토론문, 성명서 등에 대한 텍스트 마이닝 분석을 거쳐 우선순위에서 추출한 것이다(박성국, 2023)

5)한국노총은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에 대한 과잉 진압과 구속 조치에 항의하면서 사회적 대화를 중단하였다. 김 사무처장은 지난 2023년 5월 30일께 포스코 하청노동자 교섭을 지원하기 위해 7미터 높이 철탑에 올라 농성하다 다음 날인 31일 연행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봉으로 수차례 얻어맞아 과잉 진압 논란이 불거졌다. 김 사무처장은 지난 11월 3일 구속된 이후 5개월여 만에 석방되었다(매일노동뉴스, 2023.11.3).

6)고용노동부는 지난 10월 1일부터 노동조합이 회계를 공시하지 않을 경우 조합비 세액 공제 혜택을 부여하지 않는 내용의 노조법·소득세법 시행령을 시행했다. 공시대상은 조합원 1천 명 이상의 노동조합이지만, 상급단체나 산하 조직 등도 공시해야 조합원도 조합비에 대한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한편 한국노총은 11월 15일 노조의 회계 공시를 강제하는 내용의 시행령에 대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7)고용노동부는 2023년 3월 6일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주’에서 ‘월·분기·반기·연’으로 확대하되 연장근로 포함해 최대 69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근로시간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8)경찰은 특별단속을 통해 검찰에 송치한 피의자 4천 829명 가운데 2천 850명(59%)이 양대 노총 소속이라고 밝혔다(아시아투데이, 2023. 8.22; https://www.asiatoday.co.kr/view.php?key=20230822010011054).

9)경제위기와 같은 불확실성이 큰 시기를 제외한 나머지 시기의 노동 개혁은 대통령이 주도한 구상 또는 선언으로부터 시작된 공통점을 갖고 있다. 1994년 4월 24일 김영삼 대통령의 ‘신노사관계 구상’, 2004년 5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의 ‘노사 대화와 타협 제안’, 2013년 5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의 ‘고용률 70% 달성 로드맵 추진 선언’이 그러한 예이다. 물론 경제위기 시기의 대통령들도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 적극적이었다. 따라서 윤석열 대통령 스스로 사회적 대화 재개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박성국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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