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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 근절할 협약과 권고 함께 채택키로

등록일 2018년09월07일 16시4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허윤정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 국장

 

지난 5월 말 열린 제107차 ILO 총회의 주제별 위원회 가운데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Violence and harassment against women and men in the world of work)’위원회는 일의 세계, 즉 직장 안팎에서 발생하는 여러 형태의 폭력과 괴롭힘을 규제하기 위한 기준 설정 논의를 시작하였다. 올해 1차로 약 열흘간에 걸쳐 치열하게 진행된 논의 결과 권고(Recommendation)에 의해 보완되는 협약(Convention)의 형태로 제정키로 결정되었으며, 내년까지 2차에 걸친 논의 결과를 토대로 제108차 총회에서 기준을 채택하게 된다.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을 다루는 국제노동기준의 부재

 

일터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괴롭힘은 인권침해이자 다른 여러 노동기본권을 제약하고, 안전과 건강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2015년 EU가 연구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조사대상 노동자의 무려 14%(여성의 비율이 더 높음)가 직장 내 폭력과 괴롭힘을 경험한 바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런 피해를 경제적 비용으로 환산하면 최소 GDP의 1.4배에서 최대 3.7%에까지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국제노동기준들이 다양한 형태의 폭력과 괴롭힘을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정의하거나 그 자체를 주된 목적으로 다루고 있는 기준은 아직 없다.


폭력과 괴롭힘의 문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이 커지면서1)1) 2015년 9월, 유럽경제사회위원회는 직장 내 성차별에 기반한 폭력에 관한 ILO 기준을 지지하는 의견을 발표하였으며,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는 2030년까지 모든 여성과 여아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을 근절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노동계는 그것을 다루는 국제노동기준을 설정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고, 마침내 2015년 10월 열린 제325차 ILO 이사회에서 2018~19년 총회 의제로 결정되었다. 올해 1차 논의는 2017년 말 ILO 회원국 노사정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면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전문가들이 마련한 기준안을 축조 심사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국제 사회 노사정,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 근절에 한 목소리

 

위원회에 모인 ILO회원국 노사정 모두는 일의 세계에서 폭력과 괴롭힘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 노동자 그룹은 각국이 국제 사회에서의 약속을 확실하게 이행토록 하기 위해서는 권고에 의해 보완되는 협약 제정과 같은 강력한 형태의 기준을 채택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협약은 회원국이 비준하는 경우 국제조약이 되어 이행의무가 발생하는 반면, 권고는 협약 내용과 관련하여 회원국의 정책과 활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지침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EU, 아프리카, 미국 등 대부분의 회원국 정부들 역시 지지입장을 표명했다. 사용자 그룹만이 유일하게 구속력이 없는 권고만을 채택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으나 다행히도 올해 1차 심의에서 위원회는 협약과 권고를 함께 채택하기로 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아직 ILO 기준들에 있어 무엇이 폭력과 괴롭힘인지 제대로 정의조차 서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도 사회경제적, 문화적, 법적 현실이 모두 다른 국가들에 한데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어떤 형태의 기준을 만드느냐 못지않게 회원국 개별 국가에서 실제로 효과적으로 이행될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실용적인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회원국 노사정들 앞에 놓인 숙제였다. 

 

치열한 논의 끝 노사정 결론문 채택

 

심의는 전문가들이 작성한 기준안 문안 하나하나를 꼼꼼히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수용할 수 없는 표현이 있거나 보다 명확 또는 적합한 표현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룹에서 수정안(amendment)을 제출하면, 그 수정안을 놓고 다시 논쟁이 이어졌다. 개념 하나를 정의하는 데 처음 문안이 무엇인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여러 차례의 수정안이 제출되는가 하면, 논쟁이 평행선을 달려 절충안을 찾기까지 정회를 거듭하다 보니 회의는 매일 밤 10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특히 폭력과 괴롭힘, 사용자 및 노동자, 일터 등에 대한 정의와 범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가 치열한 쟁점이 되었다. 사용자 그룹은 나라별로 다른 국내법을 적용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없도록 분명하게 정의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폭력은 좁게 정의하고, 괴롭힘은 따로 정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으나 관철되지 못하였다. 


노사정이 채택한 결론문은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을 ‘물리적, 정신적, 성적 또는 경제적 피해를 야기하거나 그러한 것을 목적으로 하는 용납할 수 없는 일련의 행위, 관행, 위협’으로 넓게 정의하였고, 노동자에 대한 정의도 ‘비공식경제에 종사하는 사람들, 계약상 지위에 상관없이 일하는 사람들, 인턴 및 견습생, 훈련생, 해고자, 자원봉사자, 구직자들’까지 넓게 내렸다. 한편 가장 쟁점이 되었던 폭력과 괴롭힘이 벌어지는 일의 세계의 범위에 대해서는 ’직장 내 작업 공간, 유급 휴식 및 식사 공간을 포함하여 출퇴근, 업무 관련 출장, 교육, 사용자가 제공하는 숙소, 정보통신기술을 사용한 일 관련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포괄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치열한 논의 끝에 위원회는 협약을 비준하는 국가들이 폭력과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한 관련 법령을 만들고, 폭력과 괴롭힘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 마련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 피해자들에 대한 치료 및 지원을 제공할 것, 권고를 통해 이를 적절하게 다룰 수 있도록 단체교섭을 장려하는 등의 내용의 담은 결론문을 채택하였다. 올해 논의 결과는 하반기 다시 한번 회원국 노사정을 대상으로 2차 서면 설문조사를 시행하고, 내년 제108차 회의에서 기준으로 채택된다. 


폭력과 괴롭힘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을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발생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이지만 특히 일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괴롭힘이 초래하는 피해는 가히 엄청나다. 폭력과 괴롭힘은 양질의 일자리와도 절대 양립할 수 없는 심각한 노동의 문제이기도 하다. ILO 창립 100주년을 맞는 내년, 폭력과 괴롭힘을 규율할 강력한 국제기준의 탄생을 기대한다.   

허윤정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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