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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사람들

<수라>(2023), <206: 사라지지 않는>(2023)

등록일 2023년07월24일 09시16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손시내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지난 6월 두 편의 한국 다큐멘터리가 개봉했다. 다루고 있는 소재는 다르지만, 다 보고 나면 ‘기억’에 관해 오래도록 곱씹게 된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꽤 가까이 있는 듯하다. 게다가 영화를 이끄는 힘이 평범한 시민들의 단단한 발걸음과 섬세한 손짓에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 국가가 해결해 주지 않을 뿐 아니라 국가가 가해자이기도 한 문제들을 직접 마주하고 해결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 두 영화는 그러한 사람들의 곁에 머물며 그들의 활동을 정성스레 담아내고, 그 자신 또한 당사자의 자리에서 고민을 이어간다.

 

바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활동을 담은 황윤 감독의 <수라>와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 공동조사단’의 활동을 담은 허철녕 감독의 <206: 사라지지 않는>이다.

 

수라 (사진 출처 : 다음영화)
 

조사단의 이름에서 바로 짐작할 수 있듯 <수라>는 1991년 시작된 새만금 간척 사업의 역사와 현재를 다룬다. 새만금이라니, 2000년대 중반 국내 환경운동의 주요한 거점이었으나 이제는 잊힌 이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감독 또한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황윤 감독은 <작별>(2001), <침묵의 숲>(2004), <어느 날 그 길에서>(2006), <잡식가족의 딜레마>(2014) 등의 전작을 통해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탐색하고 동물의 권리를 영화의 방식으로 다뤄왔다. 아이를 낳고 먹거리에 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축산의 실체와 인간의 책임을 마주하기 시작하면서 만든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개봉 이후, 감독은 군산으로 이사한다. 그저 우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존재를 마주한다.

 

새만금 갯벌을 지키기 위한 2000년대의 격렬한 투쟁 이후, 그러니까 정부의 폭력적인 대응과 강제 물막이 공사로 인해 갯벌이 말라붙은 땅이 된 이후 더는 볼 수 없다고 여겼던 도요새 무리를 본 것이다. 게다가 그곳엔 도요새를 열정적으로 관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다.

 

영화는 조사단의 활동을 따라 새만금에 서식하는 다양한 생명을 들여다본다. 보고 있자면 경이롭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광경이다.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 쇠제비갈매기는 너무 작고 보송보송해서 당장이라도 가서 바람을 막아줘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는 검은머리물떼새 부부를 보고 있자면, 이게 정말 한국에서 찍힌 영상인가 싶어 눈을 비비게 된다. 칠면초라는 생경한 식물은 땅을 뒤덮고 눈부시게 빛난다. 귀여운 얼굴의 고라니, 땅속으로 숨어들어 가는 게, 난생처음 보는 다양한 새들까지, 영화에 담긴 새만금은 정말이지 굉장한 생명의 보고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20여 년 동안 새만금의 생명을 탐사하고 기록했다. 그렇게 새만금에 법정 보호종이 50종 이상 서식한다는 점을 증명해 내고, 새만금이 보호 가치가 없는 땅이 됐다며 신공항 건설을 추진하는 정부의 주장에 제동 거는 활동을 해왔다. 생계를 위한 직업이 따로 있는 그저 평범한 시민들이 말이다.

 


수라 (사진 출처 : 다음영화)

 

<수라>는 이들의 활동에서 숭고하고 대단한 의미를 발굴해 내려 애쓰기보다, 조사단의 부지런한 손과 발, 그리고 무수한 감정을 품은 눈을 들여다보려 노력한다. 이들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궁금한 점이 남김없이 해소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조사단장 오동필 씨는 조금은 의외라고도 할 수 있을 말을 들려준다.

 

너무 아름다운 것을 봐서 마치 죄인이 된 것 같았다는 말. 새만금 갯벌이 지금처럼 메마르기 전, 10만 마리 도요새의 군무를 본 기억을 들려주는 그는 아름다운 세계를 목격한 이의 책임과 의무를 지고 오늘도 뚜벅뚜벅 갯벌을 걷는다. 여기엔 정의로움 같은 단어로는 곧바로 수식되지 않는 정돈되지 않는 감정들, 그리움과 슬픔과 괴로움 같은 것들이 엉겨있다.

 

그것들을 모두 끌어안고 걸어가기에, 영화에 담긴 인간의 행보가 진정으로 대단한 것은 아닐까. 여기 겹치는 감독의 개인사 역시 우리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외면과 회피의 시간을 건너 마침내 대면하는 용기를 내는 ‘카메라 든 사람’의 여정이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206: 사라지지 않는>이 조명하는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 공동조사단’은 땅에 묻힌 어두운 기억을 햇볕 드는 곳으로 꺼내는 사람들이다.

한국전쟁 시기에 집단학살로 희생된 민간인은 어림잡아 10만 명. 하지만 유가족들은 너무나 오랜 세월 침묵을 강요당했다. 국가가 아무 죄 없는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5년이 되어서야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하고, 민간인학살의 실체를 밝히는 활동이 이어졌지만 5년 만에 중단됐다. 그리고 2013년, 시민발굴단이 결성됐다.

과거 위원회에서 일했던 조사관들이 주축이 됐지만, 나이, 직업, 사는 곳도 다 다른 시민들이 발굴단을 구성한다. 말 그대로 “시민들이 참여하는 유해 발굴”이다.

 

이들은 삽과 호미, 붓과 채를 손에 들고 흙을 털어 죽음의 흔적을 길어낸다. 이름 없는 구덩이부터 누군가의 기억에 생생히 박힌 어느 산 중턱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발 디딘 곳에서 과거에 얼마나 무참한 학살이 있었는지 파헤쳐 낸다.

 


206 사라지지 않는 (사진 출처 : 다음영화)

 

시민발굴단이 건져내는 죽음의 흔적은 실상 삶의 흔적이기도 하다. 철제 라이터에 다급하게 새긴 이름은 물론이고 여기저기 흩어진 치아와 뼈가 일러주는 그 주인의 성별과 나이까지, 발굴단의 활동은 사실 여기에 이렇게나 특별한 사람들이 살았다고 말하는 일이다. 한편으로 발굴단은 유해를 찾아내 희생자들을 더는 실종 상태가 아니게 만들고자 한다. 그들에게 잃어버린 이름을 돌려주고, 죽음의 상태를 부여함으로써 끊어졌던 사회적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비로소 함께 진실을 이야기하고 애도할 수 있을 테니까.

 

이처럼 유해 발굴을 위해 모인 이들이 해낸 활동은 참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206: 사라지지 않는>은 그러한 의미를 힘주어 부각하기보다 발굴단에 참여하는 개인들의 다양한 표정에 주목한다. 턱이 빠진 해골을 보며 다정한 웃음을 떠올리고, 함께 발굴된 가족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며칠 동안 성과가 없자 끝내 기이한 꿈을 꾸고 마는 사람들. 이들의 얼굴이야말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귀한 매개인 것만 같다.

 

<206: 사라지지 않는>엔 또 하나의 주인공이 있다. 감독이 전작 <말해의 사계절>(2017)로 인연을 맺은 김말해 할머니.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투쟁을 계기로 그녀와 만났던 감독은 한국전쟁 시기 ‘보도연맹’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김말해 할머니의 이야기를 품고, 전하지 못할 편지를 쓴다.

 

당신의 상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사라진 기억을 채울 수 있을까, 결국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까 질문하면서. 그렇게 영화는 우리가 이제 우리 곁에 없는 사람들을 남김없이 알 수는 없어도, 질문하고 상상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묻고 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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