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은 ‘가치외교’ 또는 ‘진영외교’로 표현된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은 약 40여 분간 진행된 미 의회 연설에서 ‘자유’를 46번 언급했다. “한국이 자유의 나침반이 되겠다”, “인류의 자유를 위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와 힘을 모으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정부의 외교전략이 어떠한 가치를 위해, 그 가치에 동의하는 진영과의 협력을 가장 우선하고 있음을 확인해주었다. 지난 1년간 한국은 ‘자유’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한미일 동맹 확대·강화에 역점을 기울였다.
▲ 출처: 이미지투데이
한미동맹은 정치, 군사,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더욱 견고한 형태로 강화되었으며, 미국의 지원 아래 한일관계는 과거사 및 방사성 오염수 등 수많은 난제를 덮어놓은 채 ‘정상화’만을 바라보고 나아가고 있다.
한미일 동맹의 확대·강화는 중, 러, 북과의 갈등 관계를 불러오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지난 한미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핵 방패’와 같은 안보 분야이다. ‘핵 방패’는 중대 사태 시 미국 전략자산 사용계획 및 확장억제 계획을 논의하는 한미 핵 협의 그룹(NCG) 신설, 핵잠수함 등 미 전략자산의 정기적 전개, 미 핵전략자산 관련 정보 공유 및 확대, 핵 억제 적용에 관한 연합 교육 및 훈련 강화 등을 골자로 한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 북을 위협 요인으로 규정하는 상황에서, 미 전략자산의 정기적 전개는 과거 사드(THAAD)와 같이 중, 러, 북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다. 대만 문제에 대한 군사적 공동 행보 합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검토 등도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하는 문제이다. 군사적 갈등도 문제이지만, 막대한 국방비를 포함해 우리에게 청구되는 막대한 비용도 심각한 문제다.
세계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촉발된 공급망 리스크를 둘러싸고 소리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강력한 보호주의 기조로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 과학법 등 제정하여 중국 배제의 자국 중심 공급망 재편을 추진 중이다. 미국 산업 육성을 위해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의 협조를 촉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산 광물을 사용하는 한국산 전기차는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한편, 삼성과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업계의 중국 공장에 적신호가 들어왔으며,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 방침에 따라 미국의 한국기업에 대한 압박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전기차, 반도체로 시작된 미국의 보호주의 및 중국 견제는 갈수록 확대될 양상이다.
세계 각국이 보호주의 색채가 강해지고, ASEAN과 같이 중소규모의 국가들이 주변국들과의 협력을 통해 공급망을 비롯한 경제적 이익을 획득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시점이다. 세계가 실리주의에 입각한 외교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철 지난 ‘가치외교’ ‘진영외교’에 매달리고 있으니, 우리의 실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난감하다.
외교는 전쟁이 아니다. 국가와 국민의 생존, 나아가 국익을 계산하는 셈법, 최대한 갈등과 충돌을 피하고 협력을 모색해나가는 과정이 외교다.
미·중 갈등은 이해관계의 충돌이며, 미국의 군사, 경제, 외교 등 모든 전략은 철저히 자국의 이익에 기반한다. 한국 외교는 정치·지리적 상황을 고려해 실리를 확보해나가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와 윤석열 대통령을 워싱턴에 초청하겠다고 약속했다. 조만간 정식적인 한미일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정부 외교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다른 영역보다 높은 편이니, 당분간 윤석열 정부는 현재 외교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 받게 될 비싼 청구서는 모두 국민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