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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함께 준비하는 노후' … 국민연금 개편과 노동조합의 과제

등록일 2018년08월20일 10시2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최근 출간된 소설 <당신의 노후>는 2031년 대한민국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인구의 4할이 80세 이상 노인인 초고령화 사회. 청년 3명이 노인 7명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서 세대 간 갈등은 필연적이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들이 미심쩍은 사인으로 죽어간다. 사망한 노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국민연금공단 ‘적색 리스트’에 오른 노령연금 100% 수급자라는 사실. 공단은 해결사를 고용해 공단에 낸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수급해가는 노인들을 분류해 조용히 살해한 뒤 자살이나 자연사로 위장하는데….

 

공공기관인 국민연금공단이 노인들을 죽여 없앤다는 소설의 설정은 충격적이다. 그런데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아직은 오지 않은 미래의 예고편을 보는 듯하다. 소설이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지난 17일 국민연금 4차 재정추계 결과를 공개했다. 사전에 언론을 통해 알려진 대로, 지난 2013년 이뤄진 3차 재정추계 결과보다 3년 이른 2057년에 국민연금기금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를 바탕으로 제도발전위원회는 2088년까지 70년간 1년치 연금을 지급할 수 있는 적립기금을 계속 유지하는 것을 재정목표로 잡고, 현재 20년간 9%에 묶여있는 보험료율을 11∼13.5%로 2∼4.5%포인트 올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아울러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을 현행 60세 미만에서 65세 미만으로, 연금 수급연령도 65세에서 67세로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를 통해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를 꾀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가입자 부담을 높이고 연금혜택은 줄이는 것이어서 국민들의 상당한 반발이 예상된다.

 


 


 

물론 국민연금 고갈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관측이 이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건 아니다. 앞서 국회예산정책처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2058년에 국민연금이 고갈될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급격한 고령화와 함께 ‘내는 돈보다 받아가는 돈이 많은’ 국민연금 구조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다.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막거나 늦추기 위한 방안은 사실 정해져 있다. 보험료를 ‘더 많이, 더 오래’ 내고, 연금을 ‘더 늦게’ 받아가는 것이다. 제도발전위가 내놓은 방안의 핵심도 이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선택지를 선뜻 고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장 보험료 부담이 커지는 데다, 은퇴 후 연금 수급시점까지 ‘소득 공백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사회보장제도가 낙후한 현실을 감안할 때 노후의 초입부터 빈곤과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암울한 미래는 소설이 아닌 현실이다.

 

 

‘기금 고갈’ 잉태한 국민연금

 

 

국민연금은 논쟁적 이슈다. 태생부터 그렇다.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은 올해로 도입 30주년을 맞았다. 도입 당시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소득의 3%, 40년 만기가입 시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은 평생소득의 70%(소득대체율, 급여율)로 설계됐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다. 연금제도가 낯선 가입자들의 정서를 고려해 유인장치를 둔 것인데, ‘기금 고갈론’이라는 갈등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탓에 1998년과 2008년 두 차례 국민연금 개편이 이뤄졌다. 기금 고갈시점을 늦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 보험료율을 높이고 급여율은 낮추는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이다. 일반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사업장 기준 보험료율은 제도 도입 5년 만인 93년 6%로 높아진 데 이어, 다시 5년 뒤인 98년 9%까지 올라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노후에 받는 연금액은 점진적으로 낮아졌다. 외환위기에 따른 재정불안이 겹친 상태에서 이뤄진 98년 1차 연금개편 때 급여율이 60%까지 떨어졌다. 그 뒤 2008년 2차 연금개편에서는 급여율을 매년 0.5%포인트씩 낮춰 2028년에는 40%까지 낮아지도록 설계했다. 2018년 현재 급여율은 45%다.

 


 

연금 수급연령은 높아지고 있다. 98년 1차 개편 때 연금 수급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5년마다 1세씩 늦어지도록 했다. 57~60년생은 62세, 61~64년생은 63세, 65~68년생은 64세, 69년생부터는 만 65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요컨대 월평균 100만원을 벌던 국민연금 가입자가 40년 동안 꼬박 보험료를 냈다면, 애초 연금 수급연령인 65세부터 월평균 70만원을 받기로 했던 게 60만원에서 다시 40만원으로 낮아진 것이다. 국민연금이 ‘용돈연금’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이유다.

 

2000년 12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TV토론에서 다음과 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회창 후보는 연금지급액을 월급여의 40%로 깎아야 한다고 공약했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의 수지를 맞추기 위해 연금지급액을 깎는다면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연금제도가 아니라 용돈제도다.”

 

이랬던 그가 대통령 취임 반년 만에 국민연금 급여율을 낮추는 법 개정안을 제출한 것이다. 용돈연금이라는 표현을 탄생시킨 장본인이 연금개편을 추진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됐다. 왜일까.

 

98년 개정된 국민연금법은 국민연금 재정불안을 사전에 진단하고 대비하고자 5년마다 재정추계를 하도록 했다. 참여정부 임기 첫해인 2003년 이뤄진 1차 재정추계 결과 당시의 보험료율(9%)과 급여율(60%)을 유지할 경우 2047년 국민연금기금이 소진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언론은 국민연금 고갈론을 연일 대서특필했다.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4차 재정추계를 둘러싼 지금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추계 결과가 나오니, 5년마다 유사한 논쟁과 갈등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세대 간 연대’에 기반한 국민연금

 

 

국민연금이 안고 있는 첫 번째 문제는 ‘덜 내고 더 받는’ 고수익 구조다. 두 차례에 걸친 개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민연금은 내는 돈에 비해 받아가는 돈이 많다. 2017년 기준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의 3년간 평균 소득월액(A값) 218만원을 기준으로 보면, 일반적으로 연금 수령기간이 10년 정도면 수익비가 1배다. 납부한 보험료 총액과 지급받는 연금 총액이 같아지는 것이다. A값 기준으로 10년만 연금을 수령해도 ‘본전’은 챙길 수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국민연금은 수급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수급자가 사망할 때까지 연금이 지급된다. 수급자가 사망하더라도 배우자에게 유족연금을 지급해 유족의 생계를 돕는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처음 받는 연금액의 가치가 보전되도록 매년 물가에 따라 금액을 조정한다. 민간 보험회사가 판매하는 사적연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 같은 ‘덜 내고 더 받는’ 구조가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보험제도는 ‘적립방식’과 ‘부과방식’으로 구분된다. 적립방식은 가입자가 나중에 연금을 받기 위해 보험료를 미리 쌓아두는 것이다. 반면 부과방식은 가입자에게 받은 보험료를 쌓아두지 않고 바로바로 사용한다. 정부는 매년 필요한 지출액만큼 가입자에게 보험료를 부과한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수정적립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가입자가 미래에 받을 연금의 일부를 후세대의 보험료에서 충당한다. 현세대 가입자가 ‘낸 것보다 더 받는 부분’이 바로 후세대들의 몫이다. 국민연금이 현세대에 유리하게 설계될 경우 후세대의 보험료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안고 있는 두 번째 문제는 한국사회의 급격한 고령화다. 한국은 일본에 이어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다. 고령화는 연금을 받게 될 사람에 비해 보험료를 낼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5년 주기 재정추계 때마가 기금 고갈시점이 앞당겨 지는 것도 급격한 고령화 속도와 연관된다. 지금 상태로도 후세대들의 짊어져야할 짐이 많은데, 고령화의 진전으로 짐의 무게마저 늘어나는 형국이다.

 

‘덜 내고 더 받는’ 현행 방식의 문제가 여기에 있다. 현행 국민연금의 고수익비 구조를 완화해 후세대의 짐을 줄여주는 것은 현 세대가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다. 국민연금제도가 세대 간 연대에 기반해 설계된 것처럼, 국민연금 개편 논의 역시 세대 간 연대의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사회적 대화, ‘어디서’ ‘무엇을’ 논의할 것인가

 

 

국민연금 4차 재정추계 결과 발표를 앞둔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연금 개편은 노후소득 보장 확대라는 기본원칙 속에서 논의될 것”이라며 “국민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정부의 일방적인 국민연금 개편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에 공개된 ‘보험료 인상과 가입연령 상향조정’을 골자로 한 정부의 정책자문안 내용이 정부정책에 온전히 반영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4차 재정추계 결과를 바탕으로 이해 당사자들과 국민 의견을 수렴한 뒤 관련 부처협의를 거쳐 9월 말까지 정부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안은 10월 국회에 제출된다.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 가열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한국노총은 지난 6일 성명을 통해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제안한 바 있다. 한국노총은 “‘기금고갈론’ 프레임으로 보험료가 높아지고 연금액이 줄어들면, 국민노후가 불안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적연금시장을 활성화해 재벌대기업 배만 불릴 것”이라며 “국민연금의 공적기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제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을 찾으려면 사회적 논의를 통한 정치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정부도 공감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를 통해 “국민연금은 더 받고 더 내는 방향으로 논의하되, ‘사회적 논의’라는 포괄적 정책결정방식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서 두 가지 현실적 문제가 도출된다. 사회적 대화의 ‘장소’와 ‘내용’이다.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둘러싼 공방이 국회를 중심으로 전개될 경우, 노동계가 논의를 주도하기 어려워진다. 노동계는 이미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법 개정 과정에서 국회 중심 논의구조가 노동자들에게 어떤 해악을 가져오는지 충분히 학습했다. 노동계가 논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차원에서라도 사회적 대화기구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국민연금 개편을 위한 노동조합의 과제

 

 


 

더 중요한 건 사회적 대화의 내용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다양한 쟁점을 포괄하고 있다. 세대 간 형평성 못지않게 세대 내 형평성 문제도 심각하다. 고용형태나 소득수준에 따라 연금혜택의 편차가 크고, 자영업자·청년실업자·특수고용직처럼 제도에 접근하기 힘든 사각지대가 넓다.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보완책으로 10인 미만 사업장 연금보험료 부담을 줄여주는 ‘두루누리 사회보험 지원사업’이나, 실직·출산·군복무로 국민연금을 정상적으로 납부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크레딧 제도’가 시행중이지만 역부족이다. 국민연금 개편에 대한 사회적 대화는 사각지대를 줄이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연금개혁의 시야를 넓힐 필요도 있다. 노후소득 보장 확대라는 공적연금 본연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국민연금에 비해 세대 간 갈등 여지가 작은 기초연금을 확대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퇴직연금을 일시금이 아닌 연금형태로 수령하도록 유인하는 인센티브도 필요하다. 다층연금체계를 통한 노후보장 방안이다.

 

노동조합이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야 할 대목도 있다. 국민연금 수급연령이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은, 노동자가 직장에서 은퇴한 뒤 소득의 공백상태에 방치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따라서 국민연금 개편은 정년연장 방안과 함께 다뤄져야 한다.

 

노인 일자리 확대도 중요한 과제다. 노인들이 노동시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빈곤의 늪에 빠질 확률은 줄어든다. 이때 일자리의 질이 열악할 경우 해당 고령자가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빠져버릴 공산이 큰 만큼,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관건이다.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 대목이다.

 

노동조합이 목소리를 높여야 할 대목은 또 있다. 연금기금 운용의 투명성 확보와 민주성 제고를 위한 감시기능 강화다. ‘증시 큰 손’으로 통하는 국민연금이 지분 10% 이상 가진 상장기업은 106곳이나 된다. 포스코와 네이버·KT의 경우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다. ‘대장주’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지분도 각각 9.90%와 8.02%를 확보하고 있다. 하지 만 지난 2015년 삼성그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승계를 돕고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시도할 당시,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거수기’를 자처했다. 이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국민연금은 지난달 주주권 행사 강화 지침인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했지만, 반쪽 개혁에 불과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이 수익률 위주의 재무적 투자 관행에서 벗어나 사회책임투자(SRI)에 기여하도록 유인해야 한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각종 쟁점들을 사회적 대화 없이 해결하기는 어렵다. 미래세대에 노후를 의탁한 현세대 가입자 대표로서 노동조합에 부여된 과제가 무겁다.<끝>

 

 

❙참고문헌
-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 등, ‘국민연금 장기재정전망과 제도 개편방안’, 2018.08.17
- 박형서(2018), 『당신의 노후』, 현대문학
- 연합뉴스, ‘국민연금 지분 10% 이상인 기업, 1년 새 22% 증가’, 2018.07.23
- 연합뉴스, ‘“국민연금 고갈 3~4년 빨라진다”…보험료 인상설 ‘솔솔’’, 2018.08.02
- 연합뉴스, ‘[국민연금개편] 보험료 20년 만에 오르나…인상방식·지급비율 달라’, 2018.08.17
- 오건호(2006), 『국민연금, 공공의 적인가 사회연대 임금인가』, 책세상
- 오건호(2016), 『내가 만드는 공적연금』, 책세상

구은회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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