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라는 과학적 현상뿐 아니라 세계 주요 정부의 정책과 시장의 변화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은 지구 위 생명의 생존을 위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고 있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저소비형 산업과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은 산업 및 노동에 중요한 변동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의 대응이 늦을수록 한국의 노동자와 사회적 취약 집단에게 다가올 피해는 더 크고 급작스러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제 사회의 의무와 한국의 현실 사이에서 지혜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에서도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문재인 정부에서 한국판 그린뉴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도 발표되었다. 필요한 정책이고 변화지만, 이런 정책으로 인해 성장하거나 창출되는 산업과 일자리가 있는 반면에 상대적으로 위축 및 소멸될 부문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 환경이 크게 변화할 것이다. 경제적 혜택을 누리게 될 부문과 이로부터 배제되는 부문 간에 노사갈등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초래될 것이다. 노동조합은 주요 이해당사자로서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관련 논의에서도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
세계 노동조합운동이 발전시키고 파리협정의 공식 문구로 포함된 ‘정의로운 전환’ 정책은 매우 유용한 지침과 자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의로운 전환의 아이디어와 정책은 그냥 쉽게 적용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산업과 부문마다, 그리고 사회 집단과 처지에 따라 이해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전환을 현실화할 중장기적 구상을 실현하고 장애물을 해결하는 데에 한국의 노동조합의 경험과 역량은 충분치 않은 게 현실이다. 노동조합 스스로가 예상되는 피해와 영향을 조사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현실화할 수 있는 대안과 더불어 교섭과 투쟁을 위한 힘을 키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조합이 참조할 수 있는 정책 사례와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많지 않다.
주요 내용
이 보고서는 한국판 그린뉴딜, 2050 탄소중립 전략 등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대응이 본격화됨에 따라 노동조합의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보고서는 먼저 기후변화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정의로운 전환의 개념을 살펴보고, 최근 정의로운 전환을 둘러싼 정책 동향과 쟁점을 소개한다. 그리고 주요국의 기후 정책, 특히 그린뉴딜와 정책 현황과 한국판 그린뉴딜과 탄소중립 전략을 평가하며, 그것이 국내 노동에 미칠 영향과 관련 논의를 알아본다.
노동조합의 기후위기 대응에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 사례 제시
이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국제 노동운동의 기후위기 대응을 여러 사례를 통해 분석한 것이다. 주요 국제노동단체 및 해외 주요국 노동조합의 기후위기 대응 전략을 개괄하며, 사례들을 노동조합의 기후위기 의제화, 작업장 녹색 전환과 일터 혁신, 녹색 단체교섭,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한 노사정 협력과 거버넌스의 순서로 살펴보고 있다. 결론에서는 사례들을 종합하며, 노동조합의 대응 방향 및 과제 그리고 한국에서 실행가능한 정의로운 전환 정책과 프로그램(단협, 위원회, 가이드라인 등)을 제안한다. 부록으로 ETUC(유럽노총)의 노동조합을 위한 가이드를 실어서 후속 연구와 사업 기획에 참고가 되도록 했다.
보고서는 기후위기 대응은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역량 강화라는 중장기적 목표와 함께 갈 필요가 있고, 나아가서 사회 전반의 대응력과 회복력도 증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의로운 전환은 피해 예방과 보상 차원이 아니라 더 많고 더 좋은 녹색 일자리와 녹색 산업으로 나아가는 촉진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은 단지 문구 포함의 문제가 아니라, 노사정 그리고 시민사회가 함께 실효성 있는 기후위기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집행을 담보하는 제도와 수단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의 과제
보고서의 구체적인 권고는 다음과 같다. 우선 탈탄소화 과정에 노동조합 동원을 늘리고 역량을 강화하려면 노동조합은 내부적으로 여러 수준에서 활동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의 기후변화 대응은 작업장에서의 실천, 녹색일자리 정책 만들기, 사회적 홍보와 교육, 국제회의에 대한 공동의 협상 전략까지 매우 다양한 수준에 걸쳐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으로, 한국판 그린뉴딜과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노동조합의 입장을 분명하고 풍부하게 정립하고, 개입의 통로를 넓혀야 한다. 녹색일자리 창출과 작업장 녹색전환을 실현할 수 있는 노사 및 노사정 공동의 기획과 직무훈련 프로그램 개발 등 노사정 협력 사업을 다양하게 기획하여 정의로운 전환의 저변을 넓힐 필요가 있다.
또한 노동조합은 조직 수준과 영역의 특성에 따라 기후정책과 정의로운 전략에서 차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권역별 또는 국가 총연맹 수준에서는 거시적인 정책 영향 조사와 전국적 대화 참여 같은 활동이 필요하며, 산별 조직에서는 산업별 일자리 영향 조사와 대안을 작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산별 기후-노동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또한 부문별로 그리고 구체적인 이슈별로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단사 노동조합에서는 상급 단체의 도움을 받아 단협에 기후 이슈를 포함하고, 사업장의 특성과 자원을 고려하여 녹색작업장 만들기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기후변화와 산업 전환과 관련한 조합원 교육을 일상적으로 수행하고 기후 대응 활동가를 지정하고 양성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조직 역량을 키우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노동조합 운동 전체의 시각에서는 기후위기에 대한 내부 인식 제고로부터 노동조합의 기후 의제 형성을 도모하고, 이를 전국적, 산업별 교섭으로 구체화하며, 나아가서 다변화된 경제, 회복력 있는 지역과 조직, 녹색 노동조합 패러다임으로 전환 등 다양한 발전 경로를 상정할 필요가 있다.
본 보고서가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하는 한국판 그린뉴딜 정책의 방향과 과제, 그리고 노동조합의 역할과 전략을 도출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