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썬코어 이야기' … 소리없이 무너지는 중소기업

등록일 2018년04월16일 11시1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재고라도 갖다 팔아야지 어쩌겠어요. 거래처에서 안 받아주면 고물상에 고철로라도 내놓아봐야죠. 당장 돈이 급하니까.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야 새 인수자가 나타날 것 아닙니까.”

문봉인 썬코어노조 부위원장의 말이다. 그는 요즘 팔자에 없는 ‘세일즈맨’이 됐다. 공장 창고에 쌓여 있던 재고들을 팔러 다닌다. 과거 썬코어 제품을 취급했던 거래업체에 찾아가 제품을 땡처리한다. 급전이 필요해서다. 서울회생법원이 지난달 21일 인수합병(M&A)을 전제로 썬코어에 대한 기업회생절차 개시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기업사냥꾼으로 악명 높은 최규선 회장의 사기행각으로 상장까지 폐지된 썬코어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 썬코어 흑역사 1. 루보 주가조작 사건

썬코어는 자동차 오일리스 베어링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중견 제조업체다. 1978년 ‘주식회사 한도양행’으로 설립됐다. 창업주가 일본에서 직접 기술을 배워와 수입에 의존하던 오일리스 베어링 분야 기술 국산화에 성공했다. 업계에선 “굳이 비싼 돈 주고 일제를 사지 않아도 된다”는 입소문이 돌았다. 서울 고척동 공구상가에 제품을 내놓자마자 주문이 밀려들었다. 대기업들도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그 덕에 지역 영업망을 구축하고, 완성차업체 등 주요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때 닦아 세운 거래망은 이 회사가 40년 가까이 사업을 유지하는 기반이 됐다.

사세가 커지자 한도양행은 1996년 ‘루보’로 사명을 바꾸고 2001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회사는 순풍에 돛 단 듯 잘 풀려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위기는 외부에서 찾아왔다. 고령의 창업주가 회사 지분을 처리하기로 결정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단군 이래 최대 피라미드 사기로 기록된 ‘제이유 사태’ 주동자들이 루보에 눈독을 들였다. 소위 ‘작전세력’이 끼어든 것이다. 2006년 10월1일 기준 1천185원이던 주가는 6개월 만에 5만1천400원까지 뛰어올랐다. 중소 제조업체에 불과한 루보의 당시 시가총액은 5천200억원이나 됐다. 여기에 현혹된 개인 투자자들이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 그 사이 작전세력은 차명계좌를 이용해 주식을 팔아치웠다. 무려 1천500억원대 주가 조작사건으로 기록된 ‘루보 사태’의 전말이다. 손해를 본 투자자가 자살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다만 코스닥 시장의 광풍이 루보 경영상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자체 기술력과 탄탄한 거래처가 회사를 지탱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창업주를 비롯한 경영진들이 회사 주식을 내다판 결과 안정적이었던 지분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는 향후 벌어질 경영권 분쟁의 빌미가 됐다.

어찌됐든 루보는 여전히 매력적인 먹잇감이었다. 오일리스 베어링 생산으로 회사 경영이 안정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주가조작만큼은 아니더라도 ‘시세조정’을 통해 주가를 띄워 시세차익을 챙기는 일이 가능했던 당시의 상황이 경영권 분쟁을 부추겼다. 조직폭력배를 동원한 활극이 벌어지는 등 막장으로 치달았던 당시의 상황은 2009년 개봉한 영화 <작전>의 소재가 될 정도였다.


썬코어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3일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집회를 열고 고용안정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한국노총 중앙연구원>

 

# 썬코어 흑역사 2. 기업사냥꾼의 등장

루보 사태 여파로 회사 지분구조가 흔들리면서 크고 작은 경영권 분쟁이 계속됐다. 그럼에도 회사 매출은 오름세를 유지했다. 대형 악재 속에서도 안정적 수익을 낼만큼 견고한 기업이었다는 뜻이다. 2014년에는 450억원에 달하는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다시 악재가 찾아들었다. 경기불황에 따른 전방산업의 침체로 일감이 줄기 시작했다. 매출 하락 이어졌다.

경영난이 심각해지면서 2015년 회사 매각이 추진됐다. 당시 직원들은 책임지고 공장을 운영할 적임자가 회사를 인수하기 바랐다. 하지만 이 같은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김대중 정권 당시 최대 게이트 사건의 장본인 최규선씨가 회사 경영권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최씨는 유력 인사와의 친분과 화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각종 이권에 개입해 돈을 챙기고 사기를 친 전력 때문에 ‘희대의 사기꾼’으로 불리던 인물이다. 미국 유학시절 망명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인연을 맺은 것을 시작으로 세계적 팝가수 마이클 잭슨과 세계적 펀드 매니저인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 세계적 거부인 알 왈리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등과의 인연을 십분 활용했다. 그러던 중 2002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 김홍걸씨와 게이트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를 했다. 복역 후에는 사업가로 변신을 꾀했다. 유아이에너지·현대피엔씨·썬코어·썬텍·도담시스템스 같은 중견업체들의 경영권을 확보해 나갔다.

2015년 루보의 경영권을 장악한 최씨는 자신의 이름 마지막 자인 ‘선(Sun)’을 따 사명을 썬코어로 바꾸고,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우디 왕가로부터 투자를 받아 해외 부동산 개발과 전기차 사업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카림이타니·하니아가 등 알 왈리드 왕자와 관련된 인사로 이사회를 꾸리고 언론을 적극 활용해 신사업 구상을 알렸다.

그러자 썬코어 주가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최씨는 ‘일반 공모’와 ‘제3자 배정방식’ 유상증자를 통해 투자금을 모으고, 주식이 오르면 되파는 방식으로 이익을 챙겼다. 신사업추진 명목으로 사내 현금 60억원을 사우디로 빼돌리기도 했다. 회사 매출은 악화되는데 주가만 오르는 상황이었다.

썬코어 주가가 최고조에 달한 뒤 회사 자금난은 점점 심각해졌다. 외부가공비나 원재료비 등을 처리하지 못하고 원리금 연체와 직원 급여연체가 시작됐다. 최씨가 회사를 인수한 시점으로부터 채 2년이 지나지 않은 2017년 3월 썬코어 파주 생산공장의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최씨가 호언장담했던 사우디 왕가의 투자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최씨는 본인의 유명세가 무색할 만큼 경영인으로서 수완을 발휘하지 못했
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가 손을 댄 기업들은 줄줄이 상장폐지 되는 등 최악의 상태로 치달았다. 유아이에너지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증시에서 퇴출당했고, 현대피엔씨 역시 상장이 폐지됐다. 썬코어·썬텍·도담시스템즈도 결국 같은 운명을 맞았다. 최씨에게 이들 회사는 ‘자금 돌려막기’ 용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최씨는 현재 유아이에너지와 현대피엔씨에서 43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서울고법은 최씨의 항소심 재판에서 징역 9년과 벌금 10억원을 선고한 바 있다.

 

멈춰 선 공장, 소리 없이 무너지는 중소기업

썬코어가 안고 있는 문제는 두 가지다. 최규선으로 대표되는 오너 리스크와 그에 따른 재무 악화다. 이 중 한 가지 문제는 최근 해결된 상태다. 지난달 서울회생법원은 인수합병(M&A)을 전제로 썬코어에 대한 기업회생절차 개시결정을 내렸다. 법정관리가 시작된 것이다. 감옥에 있는 최씨는 경영권이 박탈됐다. 법정관리인이 파주공장에 내려와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돈이다. 1년 넘게 일체의 급여를 받지 못한 채 맨몸으로 버텨온 썬코어 노동자 20여명은 공장 창고에 쌓여있던 재고를 팔기 위해 거래처를 직접 찾아다니고 있다. 공장 가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노동자들은 새로운 인수자가 나타나 하루라도 빨리 공장 가동이 정상화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제조업의 경우 2016년 매출액증가율이 0.5% 역성장을 기록했다. 국내 제조업체의 매출액 증가율이 지난 2014년 이후 3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소비 부진에 따라 내수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들이 타격을 받고 있는 데다, 대기업들이 원가절감에 나서면서 중소기업 몫으로 떨어지는 납품단가 역시 낮아진 결과다.

회사 사정이 나빠진 틈을 타 경영진이 횡령을 시도하는 등 비리가 개입할 여지도 커졌다. 기업운영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기 어려울수록, 주가를 띄운 뒤 손을 털자는 식의 유혹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기업은 부실화되고, 기업을 일궈 온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내몰리게 된다. 썬코어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여기에 경기가 활력을 잃기 시작하면 시중에 자금 회전이 둔해지고 금융기관들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한다. 기업이 어려움을 이겨내게끔 추가로 혈액(자금)을 공급하지는 못할망정, 그나마 실적이 양호한 기업마저 부실에 빠지는 악순화의 고리를 형성한다. 은행들이 ‘위험한 공익’보다는 ‘안전한 수익을 선택한 결과다.

국책은행도 예외가 아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같은 정책금융기관의 기업 대출은 70% 이상이 대기업에 편중돼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6년까지 14년간 산업은행의 평균 대출 비율은 대기업이 67.9%, 중소기업이 32.1%였다. 수출입은행은 대기업 79.1%, 중소기업 20.9%로 파악됐다. 이들 기관이 재무구조가 비교적 튼튼한 대기업과 중견기업 위주로 여신을 운용한 결과다.
대기업에 대한 대마불사 식 공적자금 지원 이면에는 이처럼 ‘인공호흡’의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중소기업의 현실이 있다.

 

 

(주)썬코어 파주공장 전경 <사진=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일자리 창출? 있는 일자리부터 지켜라

썬코어는 생산현장과 무관하게 요동치는 주식시장, 최규선이라는 사기 전과자의 전횡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기업회생과 청산의 기로에 놓여 있다.

썬코어 사례가 우리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생력이 약한 중소기업일수록 투기세력의 공격에 속절없이 쓰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관련 법·제도 개선이 절실한 이유다. 사기 전과자 등이 아무런 제약 없이 기업의 경영권을 장악하지 못하게 중소기업 또는 제조업체 대주주에 대한 적격성 심사가 강화돼야 한다. 아울러 기업사냥꾼들이 자본시장에서 활개를 칠 수 없도록 금융감독기관의 관리·감독이 강화돼야 한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며 국회의원들을 쫓아다녀봤지만 우리 얘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은 없었다. 사회적 영향이 크지 않은 문제는 애초부터 정치권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중소기업이 국내 기업의 99%, 고용의 88%를 차지한다고 들었다. 국가와 정치권은 이들 기업이 쓰러지지 않고 자생할 수 있게끔 지원할 의무가 있다. 역대 정부 모두 일자리 창출을 강조했는데, 없는 일자리를 새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썬코어노조 조합원의 얘기다. 썬코어 같은 중소기업이 경영상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패자 부활전’의 기회라는 의미다. 이들에게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양대 노총을 포함한 노사정 대표자들이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 구성을 위해 모처럼 머리를 맞대고 있다. 본회의 참여 대상에 중견·중소기업을 새로 추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이제는 내용을 채워가야 할 때다. 제2, 제3의 썬코어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사정이 지혜를 모아주기 바란다.

❙참고자료
- 금융감독원, 「정책금융기관의 유형별 대출채권 통계」. 2017.6
- 송성호, 「중소기업 정책자금의 역할과 과제」, 산업경제, 2012.9
- 이정환, 『투기자본의 천국 대한민국』, 중심, 2006.4
- 김재율·이대순·홍성준·구은회, 「투기자본의 폐해와 노동조합의 대응전략」,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2017.12

구은회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 0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인터뷰 이슈 산별 칼럼

토크쇼

포토뉴스

인터뷰

기부뉴스

여러분들의 후원금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듭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