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집단운송거부 사태? 명칭부터 제대로

이동철의 상담노트

등록일 2022년06월16일 13시24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상담 활동 경력이 10년을 넘었지만 갈수록 해결하기 어려운 상담사례가 증가하고 있어 난감할 때가 있다. 사회경제 환경 변화로 인해 다양해진 고용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여러 노사갈등을 기존 노동법이 다 보듬지 못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야구선수들이 선수노조를 결성하겠다고 나서 사회적 이슈가 된 사례가 있었다. 지금이야 고액연봉을 받는데 무슨 노동조합이냐며 선수들의 집단행동으로 비난받을 것이 뻔하지만 당시에는 선수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협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해 유명선수조차도 혹사당하는 현실이 알려지면서 ‘스파르타쿠스의 난’이라 묘사되기도 했다.

이처럼 경제적 약자들은 사용자와 개별적으로는 자신들의 노동환경을 대등하게 협의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 이 때문에 노동법은 이들이 뭉쳐서 보수를 지급하는 사용자와 노동조건을 협상해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노동 3권을 보장한다.

사회경제 환경이 복잡해진 최근에는 노동자와 사용자라는 전통적 고용관계를 넘어 대기업 원청회사와 하청, 프랜차이즈 본사와 대리점주 등 다양한 사회경제적 관계에서 강자와 약자가 계약이라는 이름으로 관계를 맺는다.

계약의 주요 사항을 결정할 권한이 있는 경제적 강자에 맞서 경제적 약자가 집단적으로 뭉쳐 대등하게 계약 내용을 협상해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를 강구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에서 우리 선수들을 노조법상 노조로 보기 어렵답니다. 협회에서 월급받고 일하는 상대적 약자가 분명한데 우린 무슨 수로 우리의 노동권을 보호하나요.”

 

경륜선수노조
 

몇 해 전 노조 설립신고가 반려된 운동선수들이 하소연했다. 비인기 종목 운동선수들은 소속 경기협회가 선수 생활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해당 스포츠 선수들은 협회에 전속해 협회가 주최하는 경기에 출전하고 보수를 받아 생계를 꾸리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적 상하관계 속에서 협회의 일방적 행정과 인사명령 등에 대응방법을 강구하다 노조 결성이란 결론에 도달했지만 정부에서는 당시 노조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설립신고를 반려했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르면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과 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를 노조를 만들 수 있는 근로자(노동자)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사업주를 사용자로 보고 있으며 노동관계에 관해 그 구성원이 사용자에 대해 조정 또는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단체를 사용자단체로 본다. 그리고 노조라 함은 노조법에 정의된 근로자(노동자)가 주체가 돼 근로환경(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말한다.

이렇듯 노조법 규정에 따라 설립된 노조가 아니고서는 ‘법외노조’라 해서 합법적 쟁의행위의 전제가 되는 노동위원회 쟁의조정 신청이나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할 수 없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건 ‘노동조합’이란 명칭을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노동부 장관을 정부 수석대표로 참가시켜 우리나라가 최근에 비준한 ILO 협약 87호의 성실한 이행을 다짐했음에도 말이다.

노동자들의 결사의 자유를 통해 노동권 보장을 천명한 87호 협약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선택한 단체를 설립해 차별 없이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정부가 행정권한을 이용해 이를 간섭하지 않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노조 설립신고가 반려된 선수노조는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으로 협회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협회측은 번번이 너희들은 노조가 아니라며 자신들 마음대로 ‘선수협회’라고 불렀다고 답답해했다. 공자는 정치에서 가장 선행돼야 할 일은 제대로 이름을 짓는 것이라 했다. 이를 정명(正名)이라 하는데 사물과 현상에 대해 정의하는 일에는 이를 바라보는 가치와 이념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파업을 두고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를 비롯해 윤석열 정부는 ‘집단운송거부’ 사태라고 불렀다. 물류산업의 안정과 화주들의 입장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국토교통부야 그렇다 치더라도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주요 과제로 삼아야 할 노동부 장관이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파업을 ‘집단운송거부’ 사태로 명명한 것은 답답한 일이다.

이러한 인식에 기반하면 이들의 파업은 개인사업자들이 담합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화주들과의 화물운송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업무를 방해하는 불법행위가 된다. 적어도 노동부는 이번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파업사태에서 자기 역할을 명확하게 재정의해야 한다. 노동부가 국제무대에서는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협약의 준수를 다짐하면서도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현실적 법의 한계를 들어 집단운송거부 사태로 명명하며 국토부와 보조를 맞추며 불법 엄단만을 이야기한다면 그 존재 의미를 의심받을 것이 자명하다.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leeseyha@naver.com)
 

이동철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 0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인터뷰 이슈 산별 칼럼

토크쇼

포토뉴스

인터뷰

기부뉴스

여러분들의 후원금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듭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