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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이 아닌 진심을 전하는 노동조합으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IBK시스템지부 유정기 위원장

등록일 2022년03월31일 13시06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노조설립상담 이후 10개월 만에 만난 유정기 위원장은 머리가 꽤 자라있었다. ‘혹시라도 투쟁을 하면 머리 깍을 일이 생길지도 모른단 생각에 안 자르다보니 어느새 이렇게 길었다’며 수줍게 웃는 유정기 위원장은 전보다 부쩍 당당하고 의연해보였다. 곧 노조 설립 1주년을 앞둔 금융노조 IBK시스템지부 유정기 위원장을 만나봤다.

 


 

Q: 지부 및 본인 소개 부탁드린다.

 

A: 안녕하세요, 금융노조 IBK시스템지부 위원장 유정기입니다. 저희 지부는 지난 6월 8일 한국노총 지원을 받아 설립됐습니다. 현재 동종업계인 KB데이타, 우리FIS, 코스콤 등 금융 IT업계들이 가입돼있는 전국금융산업노조의 지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년 9월부터 시작해서 현재 단체교섭 18회차까지 진행했고, 이번주 최종교섭만 남겨놓고 있습니다.(2022년 3월 21일 기준)

 

Q: 초기 노조설립 상담을 진행했을 때, 개인적으로 위원장님의 노조설립 계기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다들 불만이 있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아서 제가 해보고자 한다’고 담담히 밝히셨었는데, 어떻게 결심하게 되셨나?

 

A: 가장 큰 계기는 소통 부재로 회사라는 조직의 뿌리가 썩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희 회사는 공공기관은 아니지만 공공기관에 준하는 수준의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통제를 핑계로 회사가 모든 걸 독자적으로 결정해서 회사와 직원들간 소통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직급간, 본사와 사업장 간 갈등이 있어도 직원들이 말할 데가 없고 제대로 공지조차 못 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직원들의 그런 답답한 마음이 저한테 자극으로 다가왔고, 소통 채널을 만들어보고 싶어져 노조를 설립했습니다.

 

부끄럽지만 당시 저는 노동조합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도 했고, 거창한 사명감보다는 강단있게 말할 수 있는 울타리로써 노동조합을 이용해보자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한편으론 저희 회사가 기업은행과 연관돼 있다보니, 계약해지와 같은 엄청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투쟁하기 위한 목적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또 다른 계기는 당시 동종업계인 KB데이타(국민은행 전산계열사)에서 1년 전 노조를 설립한 거였습니다. 동종업계 노조 설립을 보고 우리도 노조를 만들어야겠다 다짐하게 됐죠.

 

Q: 한국노총 혹은 금융노조와 본격적으로 노조 설립을 상담하기 전부터 동종업계인 KB데이타지부와 연락하는 등 개인적 노력을 많이 쏟으셨던 걸로 안다. 어떤 노력을 하셨고, 동종업계 노조와의 소통이 어떻게 도움이 됐는지 궁금하다.

 

A: 저희는 시기적으로 운이 좋았습니다. KB데이타지부가 금융노조에 가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수소문해 연락드렸더니 지부에서 여러모로 흔쾌히 도움을 주셨습니다. KB데이타지부 위원장님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듣고나니 회사가 무대응으로 나왔을 때도 ‘아, 이럴 줄 알았어.’라는 마음이 들면서 크게 놀라거나 타격을 입지 않게 되더라고요.

저희처럼 동종업계 노조를 만나 시행착오를 미리 듣는 것이 신규 노조에게는 노하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겪는 노조활동에 대한 혼란도 감소하고, 회사의 낯선 대응이 ‘나만 겪는 건 아니구나’란 생각과 함께, 덜 성급하고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면서 노조활동을 유리하게 이끄는 힘이 됩니다.

 

Q: 금융노조에 가입하면서 모은행(이하 모행)인 기업은행지부와도 한 가족이 됐다. 모행과 같은 상급단체에 가입하는 것의 이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A: 자회사 노동조합들은 동일할 것 같은데, ‘모회사에 없으니 우린 못한다’라는 주장이 단체교섭의 가장 큰 벽입니다. 하지만 복리후생과 같은 단편적인 사안들은 저희가 싸워나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경영, 인사 혹은 회사 존립과 같은 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모행과 같은 상급단체인 점이 아주 큰 방패막이 될 거라 기대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진지하게 교류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계열사마다 복지수준이 크게 차이나는 곳들은 그룹사 노조로 함께하면 매우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Q: 단체교섭이 18차까지 진행됐다고 말씀하셨다. 교섭의 중점 사안은 무엇인가?

 

A: 초기 노동조합 설립 목표가 ‘소통’이었기 때문에 단체교섭에 인사, 경영 관련 내용을 꼭 담고 싶었습니다. 직원 승진, 평가와 같은 인사에 노조가 참여하고, 경영에서는 불투명하게 쓰이는 비용에 대한 노동자의 알 권리를 주장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노조가 인사경영 참여권을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흔하지도 않고, 신생노조에겐 더욱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자회사 노동조합은 교섭으로 담기가 더 어렵다보니 교섭으로 풀기보다는 관련 사안이 있을 때마다 개별적으로 해결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우회했습니다.

 

원래 목표가 벽에 막히고나니 교섭에서 조합원들에게 복지나 금전적 혜택을 조금이라도 더 주는 것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조합비를 받은만큼 뭘 해줘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고, 설문조사에서도 복리후생비와 같은 금전적 요소가 가장 큰 호응을 받기도 했습니다. 공공기관처럼 예산이 통제돼서 금전적 부분에서 합의를 이뤄내는게 쉽지는 않지만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배 위원장님들이랑 이런 고민을 나눴는데, ‘조합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되 초기 설립 목표를 잊지 말고 중점에 두어라’라고 얘기하시더라고요. 교섭 과정에서 현실과 이상이 충돌할 때마다 참 어렵습니다.

 

Q: 교섭 외에도 지부 운영 차원에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A: 조합원들과의 소통이 제일 어렵습니다. 교섭에 열중하다 보니 소통에 다소 소홀하기도 했고, 코로나가 심각해서 오프라인 만남을 요청하는게 되려 상대방에게 부담이 될까 고민이 됐습니다. 교섭 진행 내용도 공유하지만, 역지사지로 조합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래서 이게 됐다는 건지 안 됐다는 건지’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타임오프를 받으면 조합원들과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신생노조일수록 현장에 가야지만 조합원들의 생생한 얘기도 듣고 상호간 이해도 더욱 잘 될테니까요. 소통은 몸으로 뛰어야 된다는 걸 배워가는 요즘입니다.

 

    △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IBK시스템지부 유정기 위원장

 

Q: 마지막으로 신규 노조로써 한국노총과 새롭게 노조설립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우선 한국노총에 말씀드리고 싶은 첫번째는 노조 내 각종 회의체와 직책의 역할, 필요성에 대한 교육 혹은 예제가 담긴 설명서가 있었으면 합니다. 신규 노조는 관련 배경지식이 부족해서 규약과 다르게 조직 체계를 구성할 수도 있고, 관련 배경지식이 탄탄해지면 초반 활동을 좀더 유연하게 임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여력이 된다면) 상급단체에서 신규 노조 상견례 정도는 함께 참석해주면 매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상급단체가 상견례에 함께 하기만 해도 회사의 태도가 유연해지고, 타임오프 확보 등 초기 노조 활동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저희도 금융노조 사무총장님이 사측에 계속 연락하고 면담해주신 덕에 조합 활동을 신속하게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사측에 요구했을 때는 인력 부족 등을 언급하며 상당히 지연됐었거든요.

 

새로이 노동조합을 시작하는 분들에겐 투쟁 현장을 참관해 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노조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 투쟁을 하는구나’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노조를 처음 만들면 무엇이 투쟁할만한 사안인지, 투쟁 방법은 무엇인지 판단이 잘 안 되거든요. 그리고 저도 MBTI가 I(내향성)여서 적극적으로 위원장님들을 만나뵙진 못했습니다만, 여러 노동조합 다녀보신 후에 노조를 설립하시면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또 돌이켜보면, 초기에 너무 조급해하지 않고 조합 간부들을 확보하며 조직 체계를 안정적으로 수립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건 제 자신에게 전하고 싶은 말인데, 스스로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합원들을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이건 저래서 못했고 저건 이래서 못했다’ 같은 회사와 똑같은 말투를 쓰고 있진 않나 고민될 때가 있습니다. 처음 노조를 설립했던 마음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조합원들에겐 변명이 아닌 진심을 전하는 노동조합이 되고 싶습니다.

박주현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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