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에 대한 대선후보들의 언급이 쏟아지고 있다. 어떤 후보는 다소 공격적인 입장을, 어떤 후보는 매우 소극적인 자세로 연금개혁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필자는 이를 지켜보며 한 편으로는 2018년 연금개혁이 좌절된 이후 다시 공적연금의 상향식 개혁을 위한 정치적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후보들이 공적연금개혁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들을 보았을 때 과연 연금개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상당한 의문이 들게 되었다. 본고에서는 각 후보들이 주장하는 연금개혁에 대한 내용들을 다시 간략하게 평가하고 향후 공적연금개혁의 논의방향이 어디로 가야 할지 짚어보고자 한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이슈는 연금통합론이다. 공무원연금 등과 같은 특수직역연금에 대한 특혜가 과도한 편에 속한다는 것이다. 특수직역연금을 대표하는 공무원연금의 경우 높은 연금급여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향후 상당한 재정투입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에 통합시키고 국민연금 가입자와 동일하게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처음 이를 주장했고, 이후 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동조하며 연금통합론에 대한 언급이 몇 차례 나오게 되었다.
공무원연금 급여가 상당한 수준으로 지급되는 반면, 국민연금은 평균적으로 50만원 남짓하는 급여수준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국민들의 시각에서 공무원연금에 대한 불만이 이에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세하게 뜯어보면 조금은 다른 이야기가 가능하다. 국민연금은 보험료율이 아직 9%인데 비해 공무원연금은 18%이다. 평균가입기간도 공무원연금이 훨씬 더 긴 편이며 그만큼 오래 보험료율을 납부한다.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들은 이 외에도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반해 공무원연금은 그렇지 않다.
연금의 제도간 통합에 있어서는 몇 가지 사소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지점들이 있다. 통합을 위해서는 이 차이를 메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언급한 두 후보진영에서는 이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이 없다. 진짜 연금통합을 이루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연금제도간 불균형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을 지지율에 이용하고 싶은 것인지는 후보와 캠프만 알 것이다. 하지만 실제 연금통합론에 대한 구체적 계획 없이는 그야말로 공약(公約)이 아닌 공약(空約)이라는 점은 국민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 출처 = 클립아트코리아
재정안정화가 진보의 금기?
여기서 더 나아가 심상정 후보는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를 주장했다. 국민연금은 정규직 중심의 제도이며, 인구고령화로 장기적으로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달성할 수 없다는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을 최소 12%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당장 높여야 하고, 부족한 노후소득은 기초연금 40만원과 퇴직연금으로 충당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동안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공적연금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정규직 이기주의에 불과하며, 특히 지금 재정안정화를 꾀하지 않으면 미래세대, 현재 청년이나 영유아보다도 더 이후의 세대인 태어나지 않는 미래인구가 스스로의 노후소득 마련을 위해 더 큰 부담을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후보는 스스로 이러한 방안을 ‘진보의 금기’를 깨기 위한 정책공약이라고 내세웠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지점인데, 통상적으로 과거부터 진보진영이 전통적으로 내세웠던 가치인 적정노후소득보장에 대한 개념을 삭제하고, 소위 ‘기금고갈’을 막기 위해 보험료율의 급격한 상승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는 보수적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현실을 왜곡하는 부분이 상당하다. 보험료율이 당장 9%에서 12~15%가량 오른다는 것은 보험료가 33~66%가 인상된다는 것인데, 이러한 개혁안은 가구 가처분소득의 심각한 감소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당장 가계경제에 충격이 발생한다. 더군다나 국민연금은 올해 1000조를 돌파하며 국민경제에 비해 과도하게 큰 규모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료율을 급격하게 올리게 되면 기금의 규모가 지금보다도 2배가량 커지는 것이기 때문에 과연 우리 경제와 기금운용체계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재정안정화를 위해 보험료율을 올리는 만큼 적정수준의 노후소득보장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연금개혁의 제1목표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한계는 명확하다.
이에 더하여 미래세대라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매우 불안정한 개념은 이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현재의 노인과 곧 노인이 될 장년층, 그리고 노동시장에 막 진입하거나 진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세대의 적정한 노후소득보장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과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세대에 대한 세대간 계약이 가능키나 할까?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거창하게 진보의 금기를 표방하려 했지만, 내용은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연금개혁은 사회적 논의를 통해서?
당선확률이 높은 거대양당의 대선후보들은 반대로 연금개혁의 구체적 방향과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한 바 없다. 다만 절차적으로 국민들의 여러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사회적 논의과정을 거쳐 결정하겠다고만 밝혔는데, 이 또한 사실상 정치적 비난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왜냐하면 연금개혁 자체가 본래 사회적 논의를 통해서 그 결과가 도출되기 때문이다. 2007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60%에서 40%로 비상식적으로 깎이던 삭감식 개혁도, 2012년 기초노령연금이 기초연금으로 바뀌면서 금액은 올라갔지만,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수록 연금액이 깎이는 이상한 연계제도가 만들어진 개혁도, 2015년 공무원연금개혁을 통한 재정절감분을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쓰자는 여야합의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연금만 깎이고 아무런 조치가 없었던 개혁의 사례도 사실상 어떤 방식이든 사회적 논의를 거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연금개혁에 대해 대선후보들의 언급이 나오고 있지만, 사실상 진지한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책임 있는 정치적 주체가 되어야 할 대선후보와 각 정당들이 이런 입장이라면 연금개혁은 기회보다는 위기에 가까울 수 있다. 2022년 국민연금의 다섯 번째 재정계산을 앞두고 각 운동진영, 노사단체는 자기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일부 전문가는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만 취하거나 공식자료를 조작해 발표하는 등의 행위도 난무하고 있다.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시민사회진영은 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활동에 매진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처럼 보이는 개혁의 불씨가 상향식 국민연금으로의 첫 단추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연금제도를 통해 세대간 책임, 계층간 공평성, 중산층과 서민의 계급연합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개혁의 장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오직 책임 있는 사회주체인 노동운동의 몫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