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웅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 정책차장
건설현장에 높게 치솟아 있는 타워크레인을 운전하는 노동자 표모씨는 지난주 10개월간 근무하던 건설현장의 공정이 종료되면서 실직자가 되었다. 표씨는 다음 일자리를 찾아 또다시 기약 없는 구직활동에 나선다. 타워크레인 노동자도 건설사에 정식 고용된 정규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어림없다. 건설현장이 종료되면 실직자가 되고, 다시 새로운 현장을 찾아다니며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 동안 노동시장을 전전해야 한다.
20여년전 외환위기를 겪으며 국가는 친기업적 규제 완화 정책으로 표씨와 같은 비정규직을 양산했고, 어느새 건설현장은 일용직 일터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었다.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을 운전하며 꾸준히 납부하던 고용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자발적으로 실직자로 전락한 표씨는 구직활동을 하는 동안 고용보험법에 의해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구직급여 덕에 표씨와 가족은 얼마간 최소한의 생계는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그마저도 힘들어질지 모른다.
지난 11월 2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구직급여 반복 수급자에 대한 제한이 포함된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의결하고, 곧바로 다음날 3일 정부안으로 이를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안에 따르면 5년간 2회 이상 구직급여를 지급받은 후 다시 구직급여를 지급받는 경우, 구직급여가 감액되는 등 수급자에게 패널티가 부여된다. 정부는 ‘고용보험기금 재정 건전성 제고’를 정책의 이유로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으로 지난 외환위기 때처럼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또다시 옥죄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직이 반복되는 타워크레인 노동자처럼, 불안정한 고용형태의 취약계층 노동자를 위한 고용보험의 사회안전망 기능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생계의 위협 속에서도 부단히 살아가는 노동자를 국가권력이 앞장서서 ‘고용보험 재정을 좀먹는 기생충’ 정도로 낙인찍어 버리는 비겁하고 잔인한 책임전가를 하고 있다.
위기가 오면 사회안전망이 작동한다. 안전망을 찾는 이가 많을수록 더 큰 위기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고용보험기금 재정 건전성이 악화 되었다면 그것은 현재 노동자들이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해 있음을 알리는 시그널이다. 정부와 국회는 국가적 위기상황 일수록 취약계층의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고, 사회안전망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경제적 위기는 노동자 책임이 아니며, 반복적으로 실직자가 되며 구직급여를 반복적으로 수급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고용형태 역시 노동자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법 개정을 통해 노동자에게 구직급여 패널티를 부과하는 것은 법적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것이며, 사회보장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정부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지금은 구직급여 반복 수급자에 대한 패널티를 부과할 때가 아니라, 비자발적 실업이 반복되도록 만든 고용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을 논의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