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 한국노총 정책본부 차장
지난 5월 31일, 국회앞 집회․시위 관련 법률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비하여 세간의 주목을 적게 받은 감이 있지만, 같은날 헌법재판소는 사용자의 노동조합에 대한 운영비원조를 부당노동행위로서 금지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이라고 한다) 제81조 제4호에 대하여도 헌법불합치 결정(사실상 위헌인 법률에 대하여 법적 공백과 그로 인한 혼란을 피하고자 일시적으로 해당 법을 유지하는 결정)을 내렸다.1) 이로써 동 규정은 2019.12.31.을 시한으로 개정될 때까지만 효력을 유지하게 되며, 향후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따라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저해하거나 저해할 현저한 위험을 야기하지 않는 운영비 원조행위’에 대하여는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보지 않는 방향으로 개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의 지나친 개입은 노조 자주성 침해로 판단
이번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조항이 된 노조법 제81조 제4호에서는 사용자가 노동조합에게 운영비를 원조하는 일체의 행위를 부당노동행위의 한 유형으로서 금지시키고, 다만 예외적으로 사용자가 노동자의 후생자금 또는 경제상의 불행 기타 재액의 방지와 구제 등을 위한 기금의 기부와 최소한 규모의 노동조합 사무소의 제공하는 것은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본 규정의 취지는 노동조합이 사용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거나 어용화되는 것을 막아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확보하고,2) 한편으로는 기업별 노조가 주를 이루고 있는 우리나라의 실정에 비추어 최소한 규모의 노조사무소 제공 등 ‘어느 정도’의 경비원조는 허용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용자의 경비원조중 ‘어느 정도’, 즉 ‘어느 범위’까지를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줄곧 쟁점으로 다루어져 왔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노동조합이 근로3권을 실현하는 활동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운영비 원조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고, 협력적 노사자치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운영비 원조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노사의 자율적인 단체교섭에 맡길 사항까지 국가가 지나치게 개입하여 노동조합의 자주적인 활동의 성과를 감소시키는 것에 불과하며, 복수 노동조합의 존재를 고려하더라도 운영비 원조행위를 일률적으로 금지할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라고 하여, 결국 사용자의 경비원조 중 ‘어느 범위’까지를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 헌법상 노동3권을 보장하는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것’ 이라고 판단하였다. 이로써 ‘어느 범위’에 대한 판단에 있어 형식적 아니면 실질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종전 학설상의 불필요한 논쟁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최근 노조사무실의 전기․수도요금, 통신비 등 사용자의 거의 모든 운영비 원조행위에 대하여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엄격하게 해석해왔던 대법원의 법률적 판단근거3) 역시 사라진 셈이라고 볼 수 있다.
행정관청의 단체협약 시정지도 법률적 근거도 사라져
특히, 지난 보수정권 하에서는 ‘위법․불합리한 단체협약 개선지도 계획’4)을 발표하여 노조사무실 유지관리비 및 차량지원 등 노조에 대한 최소한의 시설․편의제공을 ‘위법’이라 예단하고, 단위 사업장에 ‘단체협약 시정명령’을 통보한 바 있다. 이러한 시정명령의 영향으로 현장에서는 그동안 노사의 자율적 교섭에 따라 사용자로부터 지급되었던 노조사무실 운영비, 통신비, 전기․수도요금 등 사무실유지비, 사무용품, 차량지원 등이 중단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부 사용자들은 이를 빌미로 스스로 합의한 단체협약에 따라 제공해 왔던 노조운영비에 대해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고용노동부의 단체협약 시정명령 통보가 정권이 바뀐 현재까지 산업 현장 곳곳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 행정관청에 의한 단체협약 시정지도 행위의 법률적 근거 역시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제거됨으로써, 그동안 단체협약 시정명령 통보에 따라 생겨난 적지 않은 폐단도 함께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같이 현장 단위에서 그동안 노․사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하였던 고용노동부의 ‘단체협약 시정지도 행위’ 및 이에 터잡은 ‘사측의 단체협약 개정요구’의 법률적 근거가 없어졌으므로, 노동조합으로서는 차후 사용자의 일방적인 노조지원행위 중단 및 관련 단체협약 개악 요구를 거부하고 노․사간 자율적 교섭에 의한 노조활동의 근거․기반을 적극적으로 확보해 나가야 한다. 즉, 노조사무실 제공에 수반되는 각종 시설․편의(전화, 비품, 전기․수도, 냉․난방 등)의 제공은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므로 기존 노조에 대한 시설․편의 제공은 유지시키는 한편, 노조의 자주적 활동에 수반되는 갖가지 지원사항에 대하여도 적극적으로 단체교섭을 요구하여 이를 단체협약으로 명문화시켜 확보해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노총은 향후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촉구 활동과 병행하여 2019년까지 노․사의 자율교섭을 통한 노조전임자 유급활동 및 조합활동의 보장을 목적으로 노조법의 전면개정 입법활동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 한국노총 홈페이지 자료실(번호 4697)에「노조운영비 지원 관련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산하조직 대응지침」이 게재되어 있으므로, 모범 단체협약(안) 등 보다 자세한 내용은 동 지침내용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1) 사건개요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면, ① 산별조직인 해당 노동조합은 2010.6.18.부터 2010.6.30.까지 사이에 7개 회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는데, 이 사건 단체협약에는 ‘회사는 조합사무실과 집기, 비품을 제공하며 조합사무실 관리유지비(전기료, 수도료, 냉난방비, 영선비) 기타 일체를 부담한다’, ‘회사는 노동조합에 차량을 제공한다(주유비, 각종 세금 및 수리비용을 지급한다)’는 등의 노동조합에 시설․편의를 제공하는 조항(이하 ‘시설․편의제공 조항’이라고 함)이 포함되어 있었다. ② ◯◯지방고용노동청 ◯◯지청장은 이 사건 단체협약 중 시설․편의제공 조항은 노조법 제81조제4호를 위반하였다는등의이유로 2010.11.11. 해당 노사 당사자에 대하여 노조법 제31조 제3항에 따라 시정명령(이하 ‘이 사건 시정명령’이라고 함)을 내렸다. ③ 이에 해당 노조는 이 사건 시정명령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고, 그 소송 계속 중 위 노조법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으나, 법원이 이를 각하하자 2012.3.7.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기에 이른 사건이다.
2) 대법원 2016.1.28. 선고 2012두12457 판결.
3) 대법원 2016.1.28. 선고 2012두15821 판결, 대법원 2016.4.29. 선고 2014두15092 판결, 대법원 2017.1.12. 선고 2011두13392 판결 등 참조.
4) 고용노동부, ‘위법․불합리한 단체협약 개선지도 계획’, 2016.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