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특수고용직 노동 3권 보장'을 공약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골프장 경기보조원이나 학습지 상담교사 같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수고용직)에 대한 유형별 보호방안을 언급해 주목된다. 참여정부 당시 논의됐다가 흐지부지된 특수고용직 보호 방안이 조만간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39차 정례 주례회동에서 “특수고용직 유형이 다양한 만큼 이들에 대한 법적 보호 강화를 전체에 대해 한꺼번에 하려고 하기보다는 같은 유형의 특수고용직 그룹별로 해결하고 이를 점차 넓혀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들에 대한 법적 보호 강화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특수고용직 노동 3권 보장을 공약한 바 있는 대통령 자신이 ‘유형별 보호’ 형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기존에 익히 알려진 특수고용직군 이외에 디지털 플랫폼에 기반해 일하는 이른바 ‘플랫폼 노동자’까지 포괄하는 실질적 보호 방안이 제시될 지 관심이 모아진다.
문재인 대통령 “특수고용직, 유형별 보호가 바람직”
특수고용직 관련 대통령 발언은 지난달 15일 나온 대법원 판결의 연장선에 있다.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전국학습지산업노조와 재능교육 해고 교사 9명이 “노조활동을 이유로 위탁계약을 해지한 것은 부당해고이자 부당노동행위”라고 주장하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일부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사건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건 당사자인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은 그해 노조를 결성하고 노조설립필증을 받았다.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단체협약도 체결했다. 그런데 회사측은 노조 설립으로부터 8년이나 지난 2007년 교사들의 임금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대폭 삭감하고, 곧이어 단체협약까지 해지했다. 이듬해에는 노조를 탈퇴하지 않는 교사 전원과 위탁계약을 해지했다.
해고자들은 노조활동 방해와 부당해고를 이유로 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에 나섰다.
2012년 1심 재판부는 해고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현대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나타난 특수고용직도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사용종속 관계 등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집단적으로 단결해 사용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노동조건을 협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헌법의 취지에 부합한다”며 “(해고자들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일하는 근기법상 근로자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회사측의 위탁계약 해지 통보가 노조 조직·운영을 방해하고 와해하기 위한 것으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2014년 항소심 재판부가 이를 뒤집었다. 재판부는 “학습지 교사들은 위탁계약에 따른 최소한의 지시만 받을 뿐 업무과정에서 회사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다”며 근기법은 물론이고 노조법상 근로자로도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1·2심 재판부가 오락가락하는 사이 해고자들은 노숙농성·단식·삭발·고공농성 등 극한의 투쟁에 내몰렸다. 국가 사법시스템은 이들을 구제하지 못했다. 이들은 무려 7년에 걸친 혹독한 투쟁 끝에 2014년 다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현장으로 돌아갔다. 이로부터 또다시 4년이 지나서야 이번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이다. 노조 설립 시점부터 따지면 19년의 세월이 지났다.
‘위장된 자영인’ 230만명 … 노조설립은 ‘하늘의 별 따기’
특수고용직은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공식적 고용형태 가운데 하나다. 계약형식을 보면 자영업자인 것 같지만 업무 수행방식이 전형적인 자영업자와는 구분된다. 오히려 한 명의 사업주에 종속된다는 점에선 근로자와 유사하다.
골프장 경기보조원·학습지 교사·보험설계사·덤프트럭 운전기사·택배기사·퀵서비스기사·대출모집인·신용카드모집인·전속대리기사 등이 대표적이다. 노동계 추산으로 약 230만명, 정부 기준 115만명에 달한다.
이와 별개로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이 택배기사·퀵서비스기사·화물기사·레미콘기사·덤프트럭기사·대리운전기사·보험설계사 등 7개 직종 특수고용직 규모가 91만3천435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특수고용직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합의된 명칭도 없다. 특수한 고용형태라는 측면을 강조해 노동계는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용어를 주로 써왔다. 그러다 지난 2003년 노사정위원회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정부를 중심으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용어가 공식 용어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노동관계법 중에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25조(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 조항에 관련 규정이 있다. 해당 조항은 특수고용직에 대해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함에도 근로기준법 등이 적용되지 아니하여 업무상의 재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는 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특수고용직이 급증한 건 90년대 중반 이후다. 그 배경엔 정부 주도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과 기업들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기존에 정규직이 수행하던 업무가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도급으로 바뀌고, 이 때 해당 노동자들이 강제 또는 반강제로 사업자등록을 하는 방식으로 특수고용직으로 전환된 사례가 적지 않다. 특수고용직이 근로자냐 자영업자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질 때, 이른바 ‘위장된 자영업자’로 봐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변죽만 울리다 끝난 특수고용직 보호방안 논의
재능교육 교사 사례처럼 법원은 특수고용직군의 근기법상 근로자성을 대체로 부정하면서, 가뭄에 콩 나듯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 왔다. 이런 탓에 특수고용직 대부분은 노동3권은커녕 자주적으로 단결할 권리조차 행사하기 어려웠다. 일방적인 계약변경과 해지, 보수 미지급, 계약에 없는 노무제공 강요 같은 불이익을 당해도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일부 직종 외에는 일을 하다 다쳐도 산재보험조차 적용되지 않는다.
그 사이 사업주들은 법원이 제시한 근로자성 판단 기준을 역이용해 스스로의 사용자성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어 위탁계약서에 근로자성을 추단할만한 표현을 배제하거나, 작업도구나 비품 등을 특수고용직 스스로 조달하도록 하고, 회사로고가 들어간 유니폼이나 신분증을 지급하지 않거나, 특수고용직이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식이다. 특수고용직 당사자들이 법적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자기 파괴에 가까운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 온 점에 비춰볼 때 사업주들은 너무 쉽게 우월적 지위를 유지해 온 셈이다.
물론 지금까지 특수고용직 보호 방안에 대한 논의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특수고용직을 비롯한 비정규직이 급증하자 참여정부는 입법적 보호방안 논의에 들어갔다. 당시 노동부가 마련한 입법안은 노동법에 ‘근로자에 준하는 자’ 개념을 신설하는 내용이었다. 이 같은 범주에 특수고용직 상당수를 포괄하고, 노동법 일부 규정과 산재보험법을 적용하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이는 사회적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 뒤 특수고용직 관련 입법 논의는 노사정위원회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별위원회로 넘어갔다. 특고특위는 근기법상 근로자 정의 규정에 특수고용직 관련 조항을 추가하되, 이들에게 노동 3권에서 단체행동권을 제외한 노동 2권만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역시 사회적 공감대를 얻는 데 실패했다.
공은 다시 노동부로 넘어갔다. 노동부는 2007년 의원입법 형식으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김진표 대표 발의)을 국회에 제출했다. 노동법 개정 아닌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식이다. 특수고용직의 범위를 특정해 이들에 관한 새로운 보호 입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해당 법안도 노동 2권만 적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당시 노동계는 근기법과 노조법상 근로자 정의 조항을 개정할 것을 주장하며 맞섰다. 17대 국회에선 단병호 전 의원이 18대 국회에선 홍희덕 전 의원이 노동계 의견을 반영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 법안은 ‘근로자’를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자라도 특정 사용자의 사업에 편입되거나 상시적 업무를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그 사용자 또는 노무수령자부터 대가를 얻어 생활하는 자’로 정의했다. 특수고용직을 노동법상 근로자 개념에 포섭하는 방식이다. 보호가 필요한 특수고용직군을 특정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참여정부 시절 특수고용직 보호방안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수정부로의 정권 교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특수고용직 보호 논의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정부 특수고용직 보호방안, 어떤 내용 담길까
이런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5월 현행 노조법을 개정하거나 별도 법률을 제정해 특수고용직이 노조를 설립 할 수 있도록 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특수고용직 관련 인권위 입장 표명은 지난 2007년과 2014년에 이어 세 번째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도 지난해 10월 한국정부에 자유로운 노조 결성·가입 권리를 보장하고 하청·파견·특수고용직 등 모든 노무 제공자가 노조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노동부는 이같은 권고를 받아들여 특수고용직 보호 대책 마련에 나선 상태다.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특수고용직 실태조사와 전문가 논의를 진행해 왔다. 이를 토대로 조만간 특수고용직 보호 방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문 대통령이 이달 초 특수고용직에 대한 유형별 보호 방안을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빠르면 이달 안에 관련 대책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정부 대책의 내용이다. 아직 구체적 사항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라 그 내용을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대통령이 언급한 ‘유형별 보호’라는 말에서 단서를 찾아볼 수는 있다.
우선, 명백하게 ‘위장된 자영업자’로 볼만한 유형에 대해선 근로자성을 부여하는 방안을 예상해볼 수 있다. 사업주와의 관계에서 사용종속성과 경제종속성이 강하게 발견되는 특수고용직종이 여기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 모두를 보장하는 방식이다.
근로자 성격이 강하기는 하지만 자영업자로 구분하기는 어려운 ‘중간 유형’의 경우에는 새로운 범주의 접근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독일·영국·이탈리아 등 유럽국가가 채택한 ‘유사 노동자’ 개념을 도입하는 방식이다. 노동법 일부와 사회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이다.
노조활동을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지도 관심사다. 특수고용직도 노동 3권 행사를 통해 노동시장 내 힘의 불균형을 완화하고, 직종별 노무 공급형태에 꼭 맞는 단체협약을 체결함으로써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노조법 개정이 병행돼야 가능한 내용이다.
‘누더기 법안' 막으려면 노동계 역할 중요
사업주들은 벌써부터 반발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동부가 특수고용직 보호방안 발표에 앞서 특수고용직 고용보험 가입 허용방안을 추진하자 비용 부담을 앞세워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업주들은 노동분쟁이 늘어날 것이란 이유로 노조법 개정도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사업주들의 근심은 근기법 개정이다. 특수고용직이 근기법상 근로자로 인정된다는 것은 사업주들이 부담할 법정비용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퇴직금이나 각종 수당이 여기에 해당한다.
참여정부 시절 특수고용직 보호방안 논의가 좌초한 것도 결국은 사업주들의 강한 반발 때문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특수고용직 보호 방안을 내놓는 동시에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더구나 정부의 방침은 입법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국회 논의 과정에서 ‘누더기 법안’으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특수고용직 보호방안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에 틀림없다. 기존 특수고용직은 말할 것도 없고, 소위 ‘디지털 특고’나 ‘플랫폼 노동자’로 불리는 변형된 고용형태가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자리들은 이미 저임금·장시 간 노동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노동계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특수고용직 보호 논의가 ‘옆 길’로 새지 않도록 노동계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법·제도 개선과정에서 구호를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노동조합 밖에서 서성이는 특수고용직을 노동조합 안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끝>
❙ 참고 문헌
- 이병희 외, '비공식 취업연구', 한국노동연구원, 2012.12.28
- 윤애림, 변화하는 노동현실에 늘 뒤처지는 대법원, 매일노동뉴스, 2018.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