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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설립하면 폐업은 공식?

서해인사이트 하청노동자들은 왜 거리로 나왔나

등록일 2021년04월01일 14시2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김지훈 한국노총 조직강화본부 부장

 

※ 이 글은 서해인사이트노조가 새 협력업체인 제일에스피(주)와 고용승계를 합의하기 전 작성되었습니다. 4월 1일 현재 식품산업노련 서해인사이트노조는 3월 30일 오후, 해고자 전원 고용 보장과 노동조합 인정 등을 합의했다고 알려왔습니다. 이에 따라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진행하던 천막농성과 피켓시위는 31일부로 종료했습니다.

 

 

요즘 맥주회사들이 왜 이러나 싶다. OB에 이어 하이트진로에서도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거리에 내몰리고 있다. 노동조합이 설립되고 나서 갑자기 하청업체가 변경되고 더 나아가 아예 폐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 설립 후 갑자기 폐업하거나 업체 변경 후 고용승계를 하지 않는 것은 누가 봐도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언제까지 고용승계 문제에 시달려야 하며, 노동조합이 설립되면 폐업이라는 공식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까?

 


 

노동조합 설립 후 1달 뒤 폐업 통보

 

서해인사이트는 하이트진로 생맥주제품을 판매하는 전국의 모든 업장에 생맥주기계를 설치하고 유지·관리·보수 업무를 하는 생맥주서비스 노동자들로 구성된 도급회사이다. 하지만 지금은 폐업하고 없어진 회사가 되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동안 서해인사이트 노동자들은 최고의 생맥주를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 8년간을 누구보다 피땀 흘려 성실히 일해왔다. 하지만 8년간 급여는 거의 동결되었고, 인상이 있더라도 1% 정도 수준이었다. 또한 소장의 폭언, 권력남용, 휴일업무 강요 등 도를 넘는 갑질에 늘 고통받아 왔다. 함경식 서해인사이트노조 위원장은 이와 같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30일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설립 후 단체교섭을 시작하였지만, 회사는 초지일관 폐업이라는 입장만을 고수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단체교섭은 결렬되었고, 노동조합 설립 1달 후 서해인사이트 사측은 폐업절차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 후 원청 또한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도급업체 선정을 공고했다.

 

노동조합 있으면 회사가 망한다?

 

“노동조합이 계속 유지되면 회사가 문을 닫게 될 수 있다.”

 

노동조합 설립 후 보름이 지난 시점, 서해인사이트 관리자(소장)가 비조합원 노동자들을 불러서 한 이야기다. 비조합원들을 선동하여 노동조합 가입을 방해하고, 회사가 문을 닫는 것은 노동조합 때문이라는 식의 이런 구시대적인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했다. 전과 달라진 것이라고는 노동조합이 생긴 것 뿐인데, 갑자기 회사가 문을 닫는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조합원 140명이 똘똘 뭉치자 사측은 폐업을 강행했고, 동시에 하이트진로 원청은 제일에스피라는 새로운 도급업체를 선정했다. 그동안의 관행대로라면 전원 고용승계가 되어야 하지만, 제일에스피는 이를 거부하고 개별적으로 입사지원을 받으며 조합원들을 한명 한명 뿔뿔이 흩어지게 하여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려 했다. 결국 2월 말 폐업으로 고용승계가 되지 못한 서해인사이트 노동자 140명은 3월 1일부로 해고되었다.

 

졸지에 거리로 내몰린 서해인사이트 노동자들

 

청춘을 바쳐 하이트진로 생맥주서비스를 위해 일해온 조합원 140명은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었다. 많은 욕심도 없었고, 변하지 않는 악조건 상황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 노동조합을 설립했고 가입했지만, 해고되고 버려졌다. 우리는 한가족이라고 말하던 하이트진로는 이제는 냉정히 등을 돌렸다. 누구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이 상황에서 서해인사이트노조가 할 수 있는 것은 투쟁밖에 없었기에 절박한 심정으로 거리로 나섰다.

 

서해인사이트노조는 2월 23일부터 새벽같이 하이트진로 청담사옥과 서초사옥에 집결하여 고용승계를 외치고 있으며 천막농성도 병행하고 있다. 하루하루 고된 시간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탈 없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힘차게 투쟁하고 있다.

 

상급단체인 식품산업노련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투쟁 승리를 위해 함께 싸워나가고 있다. 식품산업노련 소속 노조들의 뜨거운 연대와 방문도 끊이질 않고 있다. 한국노총 또한 더불어민주당과의 고위급정책협의회와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단 회의에서 적극적인 해결을 요구하며, 서해인사이트노조 동지들의 투쟁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뒷 짐 지고 있는 하이트진로

 

현재 해고된 서해인사이트 노동자들은 새로운 도급업체인 제일에스피에 전원 고용승계를 요구하고 있지만, 제일에스피는 법적인 의무가 없다며 회피하고 있다. 이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원청인 하이트진로 또한 우리와는 상관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함경식 서해인사이트 노조 위원장에 따르면 서해인사이트 노동자들은 원청 직원에게 지시를 받고, 사무실도 같이 쓴다. 뿐만 아니라 원청 직원들이 사용하는 앱인 ‘하이트로’를 함께 사용하면서 작업지시를 받는다. 일할 때도 ‘테라’, ‘진로’, ‘참이슬’ 같은 원청 제품 이름이 적힌 옷을 입거나 차를 타고 다닌다.

 

이렇듯 서해인사이트 노동자들을 원청 직원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적지 않다. 직접고용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이 상황에서 자신들은 고용 문제에 대해 상관없다는 식의 행태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하이트진로는 지금이라도 원청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고용보장을 위한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

 

함경식 위원장은 “원청인 하이트진로가 우리를 책임지고 직접 고용해야 한다”며 “하이트진로가 의지를 가진다면 못할 일도 아니다”고 밝혔다. 특히 “2000년에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하이트 생맥주서비스 노동자들은 원청 계약직이었다”면서 “그러다가 기간제법 제정을 앞둔 2004년도에 회사가 해당 업무를 도급업체에 위탁하여 우리를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기 위한 꼼수를 부렸다”고 지적했다.

 

하청업체 고용승계 법제화 되어야

 

OB에 이어 하이트진로까지 하청업체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원청을 위해 많게는 수십년을 일한 하청 노동자들이지만 하루아침에 해고당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하청 노동자에게는 생존권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생존권 사수를 위해 노동조합을 설립하여 투쟁하지만, 불공평한 원·하청 관계 속에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이 같은 하청노동자 해고 문제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가장 근본적인 해결은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거나, 간접고용을 금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상 어렵다고 한다면, 하청 노동자의 고용승계 의무화라도 반드시 법제화 되어야 한다.

 

‘노동존중’을 표명한 정부와 집권여당에게 고한다. 이제라도 하청 노동자들의 고통을 온전히 헤아려 법제화에 최선을 다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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