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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생각하는 한국과 즐기는 한국

임명묵 대학생

등록일 2021년03월10일 10시0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한국의 음식문화를 다룬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는 주인공 성찬이 부대찌개가 한식인지 아닌지 묻는 장면이 있다. 이 질문에 대해 잡지사 음식 코너 기자인 진수는 햄, 소시지, 치즈 같은 게 들어간 부대찌개가 한식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지 않겠냐고 답한다. 그러나 성찬은 한국에서 발전하여 한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인 부대찌개는 당연히 한식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2010년에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한식 세계화 사업을 둘러싼 국정감사에서 ‘양념치킨’을 한식이랍시고 지원해야 하느냐는 비판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당시 류근찬 자유선진당 의원은 언제부터 우리가 치킨을 기름에 튀겼냐면서 치킨과 관련된 한식 지원 사업을 얼토당토 않은 곳에 세금이 지원된 사례라고 두들겼다.

 

그러나 한국에 다녀가는 외국인들이 늘어나고, 이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기 시작했다. 2020년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들이 꼽은 최고의 한국 음식은 정부가 그렇게 홍보하려고 노력했던 한정식 같은 것이 아니라 바로 10년 전에 한식 취급도 못 받던 양념치킨이었다.

 

만화 <식객>에 나온 부대찌개 논쟁과 양념치킨을 둘러싼 해프닝은 한국인이 한국을 규정할 때 드러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보통 ‘한국적’인 것을 연상하면 다들 생각하는 것은 김치, 한정식, 한옥, 한복, 판소리, 부채춤 같은 것이다. 과거 한국인들이 외국에 인정받고 싶었던 것도 다 이런 ‘전통’들이었다. 그래서 방송에서 외국인 게스트에게 김치를 찢어서 먹이고 그들이 판소리를 듣고 감동하는 멘트를 어떻게든 따가곤 했던 것이리라.

 

하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가 한국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지 실제 한국인들이 즐기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물론 위의 요소들은 전부 한국적인 것이지만, 아파트, 아이돌, 부대찌개, 그리고 양념치킨만큼이나 생활 밀착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아파트, 아이돌, 양념치킨은 처음에는 외국의 영향 아래 도입되거나 탄생한 것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특유의 한국적 색채를 강화하면서 지금 우리 생활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진정 ‘한국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들 요소는 한국적이라는 형용사에 한옥과 한복만큼이나 쉽사리 따라붙지는 않는다.

 

상황을 바꾼 것은 외국인들이었다. 한국 정부는 이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한국을 즐겨주기를 바랐으나, 굳이 한국인들의 자기규정을 신경 쓸 필요가 없던 외국인들은 그냥 한국인들이 ‘즐기는’ 한국을 즐기기로 했다. 스마트폰, SNS, 유튜브의 부상은 정부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선별해서 보여주는 게이트키핑 과정 없는 소통과 자연스러운 민간 교류를 대폭 확대시키는 일등공신이었다. 그리고 날것 그대로의 한국을 접하게 된 외국인들이 열광한 것은 한국인들이 진심으로 즐기는 영역이었다. 혹독한 훈련을 통해 성장한 아이돌 가수, 편의성과 효율성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아파트, 매운맛, 단맛, 신맛이 혀를 사정없이 때려대는 양념치킨 소스 같은 것들이 그런 것이었다.

 

한국인들이 선진국에 대한 열등감을 차츰 벗어던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실제 즐기는 문화는 무언가 ‘떨어지는’ 문화라고 지레 낮춰봤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 선망하던 선진국 사람들이 한국 문화에 열광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인들이 한국적이라고 ‘생각하는’ 요소들은 결코 그런 열광을 끌어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생각하는 한국과 즐기는 한국의 괴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요즈음에도 종종 한국의 ‘전통’을 해외에 널리 알려야 한다는 주장을 접할 수 있다. 중국이 한국 문화에 대한 공세를 시작하면서 이런 주장은 날이 갈수록 힘을 더 얻고 있다. 그러나, 한국 문화가 해외에 수용되는 양상에서 알 수 있듯이, 문화는 작정하고 널리 알린다고 해서 알려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평소처럼 즐기는 것을, 그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다 보면 어느새 그들 사이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 문화 확산의 본질이다. 과거의 열등감을 벗어던지고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질문하면서 느긋하게 기다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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