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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우리 안의 혐오

박채은(인권센터 활동가)

등록일 2020년04월06일 13시39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얼마 전 ‘다 있다는 잡화점’에 갔다. 필요한 물건을 고르는데 뒤에서 중국어가 들렸다. 개강 시즌이 다가와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돌아온 듯하다. 간단히 물건을 사고 동네 저렴하고 맛있는 빵집에 들렀다. 사장님 부부는 항상 찬송가를 틀어 놓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그 날은 학원 수업도 있는 날이었다. 내가 다니는 학원은 도심 한 가운데 있는데 큰 빌딩의 두 층 정도를 사용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지만 사실 꽤나 특별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다 있다는 잡화점’, 그 곳은 코로나19 감기기운에 열까지 있던 초기 확진자가 다녀간 곳으로 잠시 휴업을 했었다. 가뜩이나 방역을 마친지 얼마 안 된 그 곳에서 유학생들의 중국어가 들려왔고, 순간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해보았지만, 공간이 좁아서 크게 거리를 벌리지는 못했다. 마음이 움츠러들어서일까? 단골 빵집의 찬송가도 예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 분들 혹시 특정 종교를 믿는 것은 아닐까? 그 종교 신자들이 그렇게 많고 또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있기에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던데, 혹시 이 사람들이 그 쪽 교인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복잡한 마음을 안고 학원 갈 준비를 하는 중에 문자가 왔다. “본 건물에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하여 당분간 폐쇄합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짜증이 밀려오면서 화가 났다. 누굴까? 그 확진자. 
온통 밉고 싫은 마음이었다. 앞서 내 동선에 있었던 그들은 바이러스를 전파 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었고, 나의 일상에도 파란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중국 사람이라서 더욱 꺼려졌고,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일까 한심했다. 인터넷에 실린 가십 위주의 기사들과 그 밑에 달린 댓글은 나와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내생각과 딱히 다르지 않았다. 한 편으로는 ‘그러면 안 되지, 바이러스에 걸려 몸이 아픈 사람이 뭔 잘못인가’라며 맘을 다잡아봤지만 불쑥 올라와 처리되지 않는 이 감정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풀리지 않는 스트레스를 마음 한편에 쌓아두고, 코로나19 바이러스 전파자들에 대한 잔잔하지만 굳어진 분노를 간직한 채 예민한 일상을 보내던 중, 한 기사를 읽고, 손끝까지 저려오는 충격에 한 동안 생각을 잊지 못했다.
 

‘양푼 하나에 같이 비빔밥을 먹는다’는 제목의 콜센터 집단 감염과 관련된 기사였다. 밀폐된 공간에서 하루 종일 말을 해야 하는 업무 특성과, 식사나 휴식을 함께 하는 환경이 집단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식비를 아끼려고 대부분 도시락을 싸오는데, 큰 양푼에 밥을 한 데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일도 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왠지 행간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집단 감염 원인의 초첨을 콜센터 내부의 열악한 노동 환경보다는, 비빔밥을 함께 만들어 먹는 행위에 맞추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에 달린 댓글 내용이 온통 비빔밥에 모아졌다. ‘한심하다’, ‘저 와중에 비빔밥이라니? 위생관념이 없다’ 부터  ‘미개하다’, ‘제 정신이 아니다’, ‘왜 혼밥(혼자 밥 먹기)도 못해요?’ 등 상당했다. 이와 반대되는 입장도 있었지만 미미했고, 교묘하게 자극된 감정은 혐오로 표출되었다. 마치, 여기가 내 화를 던져 놓을 공간임을 입증 받은 듯이 타인을 향한 비난과 분노는 이어졌다.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하루에도 수많은 기사와 뉴스가 자극적인 방식으로 쏟아지면서 혐오의 장은 더욱 쉽게 펼쳐졌다. 확진자 판정을 받아 동선이 공개된 사람들은, 각각의 행적이 구청 홈페이지, 혹은, 기사에 ‘박제’되어 ‘전시’된다. 이 정보는 그 동선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에게 주의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사람들의 관심사는 주변부로 향하고 그 곳에서는 혐오가 펼쳐진다. 몇 번 확진자는 어디 유흥업소를 출입했는데, 그 업소 이름이 별명이 되어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고, 몇 번 확진자는 누구와 어떤 관계인지까지 신상이 드러나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재난이 닥쳤을 때 무었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긴 하다. 중요한건 이러한 개인의 예민함이 타인에 대한 비난과 분노, 그리고 더 나아가 혐오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개인이 모여 혐오의 감정들의 교집합을 크게 만들수록 그 위력은 더욱 강해지는 법이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혹시 이에 대한 역 또한 존재하지 않을까? 개인들이 모여 만드는 교집합이 혐오의 감정으로도 커질 수 있다면, 긍정적인 감정으로도 교집합의 크기를 늘릴 수 있지 않을까.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는 책 속에는 “연대와 이타주의와 즉흥성의 별자리는 우리 대부분의 마음속에 숨어 있다가 이런 순간에 다시 나타난다. 사람들은 재난이 닥쳤을 때 무었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문구가 있다. 이 문구를 차분한 마음으로 옮겨본다. 이타의 감정이 발현될 좋은 시기가 지금인 듯하다. 이를 증명하듯, 지면에 다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형태의 기부운동이 시작되고, ‘코로나 19에 감염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며 응원하는 목소리도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언제 멈출지 아직은 모른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불확실함과 불안감 속에서 서로 버텨나갈 수 있는 방법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코로나19 #혐오 #레베카솔닛 #연대 #이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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