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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사회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들

등록일 2020년02월10일 13시1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유성규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위원, 공인노무사

 

객관성·공정성 확보를 위한 노·사·정 합의의 결과물

 

노동자가 업무로 인해 질병에 걸리면 산재보험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질병은 사고와 달리 산재로 인정받는 과정이 복잡하다.

질병은 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유해위험요인에 의해 발병하므로, 그것이 개인적 원인에 의한 것인지 업무상 원인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을 거쳐야하기 때문이다. 그 판단을 하는 기구가 바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우리 사회의 몇 안 되는 노·사·정 합의의 결과물들 중 하나다. 질병의 산재 인정 과정을 둘러싼 객관성·공정성 시비는 오래된 사회적 난제였다. 노·사·정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6.12.13.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업무상 질병 판정을 위한 핵심적 기구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노동자에게 발생한 질병이 산재인지 여부를 심의·판정한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현재 전국에 6개소(서울, 부산, 대구, 경인, 광주, 대전)가 설치·운영되고 있다. 2019년 3분기 현재 602명의 위원들이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고, 이 중 의사가 402명, 법률전문가(노무사, 변호사 등)가 156명, 인간공학 및 산업위생 전문가가 44명이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처리하는 사건 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19년에 3분기까지 처리한 판정 건수는 10,514건으로, 이는 전년 동기 7,149건에 비해 약 47.1% 증가한 수치이다.

 

객관성·공정성을 둘러싼 시비와 개선 노력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노·사·정 합의를 토대로 한 실험적 시도였다. 따라서 제도 운영 초기부터 객관성·공정성을 둘러싼 시비는 계속되었다.

이에 그 동안 판정의 객관성·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다.

 

심의회의시 위원장의 표결권 제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의 참여 확대, 민간인의 위원장 참여 기회 확대, 주당 회의 개최 횟수 확대와 심의 건수 축소, 추정 원칙 적용 강화, 만성과로 인정 기준 개선, 직업성 암 판단 절차 개선 등이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해결해야할 문제점들은 산적해있다. 


2020년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출범하고 열두 번째 맞이하는 새해이다. 본고에서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2020년 새해를 맞아 반드시 개선해야 할 지점 두 가지만 짚어보고자 한다.

‘신속성’과 ‘전문성’의 확보다. 사실 이는 개선 지점이라기보다 기본 조건에 가깝다. 

 

신속한 판정을 위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

 

노동자가 질병에 걸리면 임금 지급 중단과 치료비 부담이라는 이중의 고통에 놓이게 된다. 산재보험은 질병에 걸린 노동자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산재보험 승인이 늦어지면 노동자와 그 가족이 겪게 되는 고통의 시간도 길어지게 된다.

 

더욱이 뇌·심혈관계 질환과 같이 치료비가 많이 드는 질병의 경우, 고통의 정도는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에 소요되는 기간은 2019년 3분기 현재 전국 평균 40.1일에 이르고 있다1). 특히 통합 심의가 이뤄지는 서울은 무려 61.3일에 이른다.


심의소요 기간이 장기화된 가장 큰 원인은 인력의 부족이다. 근로복지공단 관할 지사에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로 사건이 심의의뢰되면, 운영지원부 소속 직원들이 사건 검토 및 보정, 심의안 작성, 심의회의 운영 등을 담당하게 되는데, 현재는 사건대비 운영지원부 소속직원의 수가 너무 적다.

또. 심의를 담당하는 임상의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심의회의 일정을 잡는 일조차 어렵고 복잡하다.


또 상병명에 대한 주치의, 심의위원(임상의) 간 소견의 불일치로 인해 소위원회 상정 및 재심의 절차를 경유하는 것도 심의 소요 기간이 길어지는 원인 중 하나다. 현행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운영규정에 따르면, 산재 노동자가 신청한 상병명은 인정되지 않지만 업무관련성은 인정되는 경우에는 소위원회를 통해 상병명을 재확인하고, 상병명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재심의하게 되어 있다.

 

심의 소요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운영지원부 소속 직원들을 심의 사건 증가율에 맞춰 충원해야 한다. 또 충분한 임상의 위원들을 확보하여 원활한 심의회의 운영을 도모해야 한다.


상병명 확인을 위한 절차도 개선해야 한다. 상병명은 심의 대상이라기보다 심의를 위한 기본 정보에 해당한다. 따라서 심의회의 전에 기본 정보인 상병명 확정을 위한 절차를 마무리하고, 심의회의에서는 업무관련성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판정의 전문성 확보를 위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

 

질병의 산재 인정 과정은 노동자가 걸린 질병이 산재보험에서 정하고 있는 보호 범위에 속하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이다. 즉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인 산재보험 인정 기준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산재보험 인정 기준을 ‘사회보험 약관’이라 칭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듯싶다.


우리 대법원은 질병의 산재 인정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입증이 되었다고 보아야 함을 수차에 걸쳐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14.9.25. 선고 2014두7893판결 등).


그렇다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회의에 참석하는 위원들은 산재보험 인정 기준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많은 위원들이 산재보험 인정 기준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

 

특히 몇몇 임상의들의 경우는 기초적인 인정 기준조차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심의회의에서 위원이 산재보험 인정 기준과 다른 자신의 의학적, 임상적 지식과 경험에 의존해 판정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사회보험 약관, 즉 산재보험 인정 기준에 기초한 일관성 있는 판정을 위해서는 위원들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모색되어야 한다.

위원들이 자율적으로 수강하는 현행 교육 프로그램 이수를 의무화하는 방안, 위원들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 세미나 등 다양한 정보 소통 채널을 운용하는 방안, 법률적 판정 과정과 의학적 자문 과정을 분리하여 심의하는 등의 방안이 모색되어야한다.

 

결론을 대신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업무상 질병 판정. 이는 노·사·정이 합의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출범시킨 사회적 목표다. 그러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출범한 지 10년이 넘은 현재에도 이는 여전히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본고에서 이를 위한 몇 가지 개선 지점들을 제시했지만, 내년에도 동일한 얘기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제도 개선은 그만큼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공론화해야 한다. 동일한 얘기를 반복하더라도 말이다. 그것만이 노·사·정이 합의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사회적 목표를 실현하는 길이다.

 

1) 본고에서 심의 소요 기간은 ‘심의 접수일로부터 판정서 결재 완료일까지 소요되는 기간’을 의미함

 

#한국노총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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