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희 한국노총 정책본부 차장
비정규직 규모를 통해 알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고용의 질’이다. 일반적으로 비정규직 규모가 증가한다는 것은 고용의 질이 나빠진다는 뜻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것은 고용의 질이 나아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기에 비정규직 규모는 정부의 고용정책을 살펴보는 데 중요한 지표로 활용된다.
지난 10월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748만 1천 명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전체 임금노동자(2천 55만 9천 명) 중 36.4%에 해당하는 비율이며, 전년 동월 대비 86만 7천 명(3.4%p) 증가한 수치다. 문제는 이번 조사 결과가 2007년 3월 조사 이후 비정규직 규모가 가장 높은 수치로 증가했다는 점에서 정치권과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현 정부의 고용정책 질타로 이어지며 비정규직 규모 논란이 불거졌다.
조사를 담당한 통계청은 비정규직 규모 증가에 대해 지난 2018년 국제노동기구(ILO, 이하 ILO)가 채택한 국제종사상지위분류 개정 채택안에(ICSE-18)1 포함된 여러 권고내용 중 이번에 ‘기간’의 기준을 강화해 실시한 병행조사 영향으로 기간제 노동자가 추가로 포착된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비정규직 규모가 급증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정규직으로 인식한 노동자가 새로운 기준에 맞춰 비정규직으로 분류된 일종의 통계 착시효과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부처마다 해석도 달랐다. 기획재정부는 취업자 수가 전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비정규직 규모도 늘어난 것이라 설명하였고, 고용노동부는 이번 비정규직 규모 증가에 대해 통계를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원인은 잘 모른다면서도 과거 노·사·정이 모든 시간제근로가 비정규직으로 분류돼 좋지 않은 일자리라는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통계를 개선키로 합의 한 바 있다는 애매모호한 답변만 내놓았다.
<그림 1> 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병행조사표 22-1번 문항2
통계청의 설명대로 이번 병행조사에서는 고용의 기간을 묻는 문항이 새롭게 추가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그림 1의 22-1번 문항참조) 새롭게 추가된 문항에서는 ①∼⑧ 번 보기는 1개월 미만~3년 초과(기한 한정)라고 돼 있으며, ⑨번 보기만 ‘기한제한 없음(정년제 포함)’이라고 문항이 구성돼 있다. ①∼⑧ 번 보기를 선택한 응답자는 22-2번 문항에 답하도록 구성했다. 22-2번 문항의 경우엔 보충설명으로 '인턴, 유급 훈련생 등 채용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를 언급 해놓았다. 언뜻 보기에도 22-1문항에서 ①∼⑧ 보기를 선택한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정년이 보장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인식될 수 있고, 22-2번 문항 역시 채용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라 언급하며 사실상 이들을 비정규직이라고 분류한 것이 아닐까 추정해 볼 수 있다.
정부의 애매모호한 설명과 조사문항의 추가가 87만명의 비정규직 규모 증가로 이어졌다는 설명에 통계 전문가들조차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면서 정부통계의 신뢰성 문제를 지적하였다.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발표하는 비정규직 통계의 결과는 달랐다. 예를 들어, 기간제 규모를 보여주는 사업체기간제근로자현황조사<그림2>에서는 기간제 노동자가 179만 1천 명(전년 동월 대비 6.9% 감소)으로 오히려 감소 추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고용보험에 가입된 기간제 노동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10.8%(16만6천 명) 증가하긴 했으나 증가 폭은 과거 발표된 통계 결과와 비슷한 수준을 나타냈다. 조사 방식과 응답자 형태 등의 차이를 감안 하더라도 같은 주제에 대해 제각기 다른 통계는 통계를 접하는 사람으로서 충분히 혼동할만하다.
그리고 통계청이 새로운 기준 마련을 위해 반영했다는 ILO의 국제종사상지위분류 개정안은 기존의 임금·비임금의 이분법 구조를 뛰어넘어 새로운 형태의 계약-노동관계를 포착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한다. 쉽게 말해,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산업형태 변화에 따라 생겨난 신(新)유형의 노동자(배달 노동자, 대리운전기사 등)들을 통계로 포착해내는 것이다. 문제는 새로운 종사상지위분류 개정안이 적용된다면 대표적인 비정규직 유형인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고종사자)가 급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에서 특고 종사자는 매해 50만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지만, ILO가 권고한 국제종사상지위분류에 기준에 맞춰 집계한다면 지금보다 최대 150만 명 이상 증가한 최대 220만 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3 그럴 경우 비정규직 규모는 이번 조사의 870만 명이 아니라 1,000만 명에 육박하는 규모에 이를 수 있다. 따라서 조사 방법의 변경 과정은 신중해야하며, 향후 사회에 미칠 영향과 파급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진행돼야 한다.
이번 경제활동인구조사처럼 통계청장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정책 수립 및 평가 등을 위하여 승인하고 발표하는 지정통계의 경우 통계제공을 함에 있어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비정규직 규모 논란을 일으킨 통계 조사 방법 설계부터 조사 결과를 설명하는 데 있어 자신들이 내놓은 결과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통계청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쉽다. 국민의 경제활동(취업, 실업, 노동력 등) 특성을 조사함으로써 거시경제 분석과 인력자원의 개발정책 수립에 필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 조사목적처럼 향후 올바른 국가 정책 수립을 위해서 통계청이 신뢰할 수 있는 통계를 제공해야한다.
1 고용상 지위분류의 국제 기준(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Status in Employment)의 약자
2 병행조사 문항의 경우 공식적인 조사문항이 아니기에 통계청에서 발표하지 않음. <그림1>은 언론이 입수한 그래픽 문항 발췌(중앙일보. 2019년 11월 7일자)
3 정흥준(2019),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규모 추정에 대한 새로운 접근, 한국노동연구원 고용·노동브리프 제88호
#한국노총 #비정규직 #고용 #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