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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 약일까 독일까?

노조 주도 ‘실노동시간 측정 프로그램’ 시급 … 사용자 주도 ‘생산성 압박’ 경계해야

등록일 2018년05월28일 09시5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 그림 출처 : 한겨레(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819551.html)
 

 

임금과 노동시간 문제는 언제나 비용을 수반한다. 노동시간 단축이나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둘러싼 노사의 신경전이 팽팽한 것도 이 때문이다. 노동자에게는 생계가, 사용자에게는 이윤이 걸린 문제다.


올해 상반기 내내 노동시장을 달군 ‘임금·노동시간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는 모양새다. 이번엔 포괄임금제다.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과정에서 임금 감소 폭을 최소화하기 위해 방어적 태도를 취했던 노동계로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이다.
 

최근 온라인 상거래 업체 위메프가 ‘포괄임금제’ 폐지 선언을 내놓자 업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포괄임금제 폐지는 ‘공짜 야근’ 근절을 의미한다. 일한만큼 보상하겠다는 뜻이다. 정부도 관련 제도를 손보고 있다. 정부가 다음달 발표할 예정인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에는 실노동시간보다 수당을 적게 준 기업에게 3년치 미지급분을 소급해 지급하도록 하는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위메프 ‘포괄임금제 폐지’ 선언, 업계 파장은?

 

 

국내 기업 중 포괄임금제 폐지를 선언한 곳은 위메프가 사실상 유일하다. 위메프는 지난 23일 “7월부터 시행되는 노동시간 단축 제도의 본래 취지를 살리는 동시에 임직원의 실질급여 감소 등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당장 다음달부터 포괄임금제를 폐지한다.


눈에 띄는 점은 임금 삭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로 한 대목이다. 현행 근로기준법대로 주 40시간을 넘겨 연장근로를 수행하는 노동자에게는 법정 수당을 지급한다. 인력도 새로 뽑는다. 상반기 80여명을 채용한 데 이어 하반기 50여명을 충원할 예정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란 점에서 현 정부 정책기조에 부응한다.
 

기업이 스스로 포괄임금제 폐지를 선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포괄임금제를 폐지하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계속돼 왔다. 특히 지난 2016년 게임업체 넷마블게임즈(현 넷마블) 소속 20~30대 직원들이 잇달아 과로사·돌연사하자,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뒤에 장시간노동을 강제하는 포괄임금제가 작용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넷마블 계열사 12곳을 특별근로감독한 결과 전체 직원 3천250명 중 2천57명(63.3%)이 법정 연장근로시간(12시간)을 넘겨가며 일하고 있었다.
 

게임업계와 더불어 대표적인 장시간노동 업종으로 꼽히는 포털업계에서도 노동자들의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설립 19년 된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에 지난달 설립된 네이버노조가 제일 먼저 꺼내 든 문제도 포괄임금제다. 노조는 “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새로운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었고, 제대로 된 휴식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났다”며 “포괄임금제에 책임근무제라는 이름 때문에 자다가도 새벽에 밴드로 업무지시를 받았고, 심지어 휴가를 가서도 업무지시를 받아 일을 처리해야 했다”고 폭로했다.

 

 

10인 이상 사업장 절반 이상 포괄임금제 시행 중

 

 

포괄임금제는 노동시간과 상관없이 노사가 임의로 약정한 고정수당을 임금에 포함시켜 지급하는 방식이다. 영업이나 운송·경비 등 외근이 많고 노동시간 측정이 어려운 업종에서 시작됐지만 IT업종이나 사무·전문직군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지난해 5월 기준 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상용노동자 10인 이상 기업 중 절반 이상인 52.8%가 포괄임금제를 도입한 상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6년 국내 사업장 1천570곳을 조사한 결과를 봐도 포괄임금제 적용 사업장은 30.1%나 된다. 조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시급제가 아닌 월급제나 연봉제를 도입한 기업 상당수가 관행적으로 포괄임금제를 도입한 상태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포괄임금제는 법에 정해진 개념이 아니라 판례로 인정돼 온 관행이다. 기본급을 미리 정하지 않은 채 법정수당을 합한 금액을 월 급여액 또는 일당으로 지급하는 ‘정액급제’와 기본급은 정하지만 노동시간에 관계없이 법정수당을 일정액으로 지급하는 ‘정액수당제’가 있다. 법적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근로감독의 손이 미치지 않는다.
 

법원이 법에도 없는 포괄임금제를 판례로 인정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2016년 노동연구원 조사에서 기업들은 포괄임금제 활용 사유로 △임금계산 편의(35%) △초과근로 예정(30.3%) △노동시간 산정의 어려움(22.5%) 등을 꼽았다. 기존 법원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임금 계산의 편의와 산업현장의 수요를 감안해 포괄임금약정의 효력을 인정했다.
 

그런데 최근 법원의 입장이 달라지고 있다. 군인을 위한 복지지원단에서 근무하는 민간인 근무원들의 포괄임금약정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08다6052)이 대표적이다. 복지지원단은 근무원들에게 시간외근무수당·특별수당·봉사료 등 이름으로 임금을 일률적으로 지급해왔다. 포괄임금제를 적용한 것이다. 이 중 봉사료 명목 수당 지급이 중단되자 근무원들은 “실노동시간을 산정해 차액을 돌려 달라”며 소송에 나섰다.
 

1심에선 원고인 근무원들이 패소했다. 법원은 종전과 같이 포괄임금약정의 효력을 인정해 근무원들의 추가지급 청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2심은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근무원들의 초과근로수당이 정상적으로 지급될 경우 근로자들에게 불이익이 없고 제반 사정에 비춰서도 정당하지만 수당 중 일부가 중단된 이후에는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되므로 포괄임금계약은 무효”라고 봤다.
 

이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심과 마찬가지로 “포괄임금에 포함된 수당은 근기법이 정한 법정 수당에 미달해 근로자에게 불이익하므로 무효”라고 판시했다. 포괄임금약정의 탄력적 운용을 허용하던 법원의 입장이 권리 남용을 방지하는 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해당 판결의 핵심은 누가 봐도 노동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아니라면 포괄임금계약의 유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 어떤 내용 담기나

 

 

포괄임금제 폐해가 심각한 데다 법원의 입장도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선회하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노동부는 포괄임금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의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다음달 말께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노동부가 지난해 10월 작성한 ‘포괄임금제 사업장 지도지침’은 곧 발표된 가이드라인의 초안 격이다. 이에 따르면 앞으로 포괄임금제는 노동시간 산정이 아예 불가능한 경우나 거의 불가능한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시간 산정이 어렵지 않다면 명시적 합의가 있더라도 무효가 되는 것이다.
 

또 노동시간 산정이 어려운 예외적 경우라도 반드시 포괄임금제에 대한 명시적 합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포괄임금제 적용에 대한 근거가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개별 노동자의 근로계약서에 관련 사항을 명시해야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부 가이드라인 관련 최대 관심사는 ‘소급분’이다. 포괄임금제 적용 사업장 중 실노동시간에 비해 수당을 적게 준 기업들에게 3년치(임금채권 소멸시효) 미지급 수당을 소급해 지급하도록 강제할 것인지 여부다. 예를 들어 월 30시간분의 고정수당을 지급하기로 계약했는데 해당 노동자가 월 40시간 넘게 초과노동을 했다면, 초과된 10시간(40시간-30시간)만큼의 수당을 지급하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최종 가이드라인에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될 경우 소급분 지급을 둘러싼 노사 간 공방이 가열될 여지가 크다. 포괄임금제를 없애고 환급해야 할 3년치 수당의 기준과 범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노사분쟁이나 관련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 된다. 포괄임금제 폐지가 제2의 통상임금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초과노동시간 측정 가능할까

 

 

관건은 실제 초과노동시간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이냐다. 대부분 회사는 전자단말기 등을 이용해 직원들의 출근시간이나 지각·결근을 꼼꼼하게 기록한다. 반면 퇴근시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회사는 많지 않다. 문제는 분쟁이 벌어질 경우 노동자가 퇴근시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홈플러스 노동자들의 ‘야근시계’ 사건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지난 2013년 홈플러스 노동자 2명이 회사를 상대로 미지급수당을 되돌려달라며 소송을 냈다. 노동자들은 야근시계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5개월간 초과노동시간을 기록한 뒤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대법원까지 간 이 사건은 결국 노동자들의 패소로 막을 내렸다. 당시 회사측은 “노동자가 일하지 않고 회사에 머물거나 스마트폰을 회사에 두고 다른 장소에 있는 방식으로 속일 수 있다”는 주장을 폈는데,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이처럼 노동자 개인이 초과노동시간을 증명해 내기는 어렵다. 때문에 노사가 함께 출퇴근 시간을 관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 발표와 연계해 임·단협 의제로 다뤄볼만 하다. 이와 별개로 정부가 공신력 있는 출퇴근 기록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보급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 vs 생산성 향상

 

 

포괄임금제 폐지 분위기가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할 것이란 기대와 달리, 노동자를 향한 생산성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올해부터 계열사 노동시간을 주35시간 체계로 전환한 신세계그룹은 ‘불안한 미래’의 단면을 보여 준다.
 

신세계가 파격적 실험에 나선 이유는 노동자들의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서가 아니다. 신세계 관계자는 “기존 근무방식으로는 미래 업계 변화에 대처하기 어렵다고 여긴 정용진 부회장이 임직원과 회사 모두 윈-윈하는 방식으로 생산성을 높일 일대 도전이자 실험에 나선 것”이라며 제도 도입 취지가 생산성 향상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제도 시행 2년 전부터 근무제도혁신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다양한 근무제도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하고, 근무시간을 1시간 줄여도 매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사용자가 강조하는 ‘생산성 향상’이 노동자들에 게 ‘임금삭감’이나 ‘휴게시간 감소’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업무량은 정해져 있는데 근무시간만 줄였을 때 이런 결과를 피하기 어렵다. 올해 7월 노동시간 단축을 앞두고 여러 기업에서 조기 출근이나 휴게시간 축소, 회사 밖 야근 증가, 퇴근한 척하며 몰래 근무하기, 원격근로나 재택근무 증가 같은 편법이 난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동시간 관리’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외국계 기업 사례도 눈여겨 봐 둘 필요가 있다. 2006년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현재 자율출퇴근제를 시행 중이다. 원하는 직원은 매니저 승인 하에 집에서 일할 수 있다. 외부에서도 회사업무시스템 접속이 가능하다. 회의는 집중근무시간에 잡는다. 회사 관계자는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을 따로 관리하지 않는다”며 “직원들에게 업무 동기를 부여하고 생산성을 높이려는 취지”라고 말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의 근무형태는 글로벌기업다운 세련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런 기업은 이미 우리나라에도 많다. 장시간노동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오른 넷마블과 네이버 같은 회사들이다. 하지만 이들 업체 노동자들의 현재를 세련되거나 자유롭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거나, 상황을 돌파하고자 노동조합을 찾는 길이다.
 

그나마 이들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더욱 열악한 환경에 놓인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근기법상 근로시간 관련 규 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정부가 포괄임금제 가이드 라인을 마련하더라도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
 

때문에 노동조합의 선제적인 대응이 중요하다. 노동조합이 주도적으로 사업장 실태를 조사하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가장 열악한 노동자들을 보듬고, 임금을 덜 줄 목적으로 포괄임금제를 악용해온 사업장을 찾아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울러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조삼모사’ 식으로 흐르지 않도록 주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노동정책은 일정한 패턴을 그리고 있다. 노동시간을 줄이되 휴일노동 할증을 없애고, 노동시간 특례업종을 줄이되 유연근로시스템을 확산하고, 최저임금을 올리되 산입범위를 늘리는 식이다. 이처럼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방식은 정책효과를 반감시킬 뿐만 아니라, 정부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킨다. 노동계가 이제라도 노동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아 와야 한다.

구은회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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