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훈중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장
천장이나 되는 큰 둑도 개미구멍 때문에 무너진다(千丈之堤 潰自蟻穴). 노자는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생기고 천하의 큰일은 언제나 사호한 일에서 시작한다”고도 했다. 견고하기만 하던 권력도 작은 불신이 쌓여서 무너지고, 작은 불씨가 큰불로 번져 나중에는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우리 속담에도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다. 조합원 과반수 지지를 얻어 당선된 노조 위원장도 작은 일 때문에 불신이 쌓이고 조합원의 신뢰를 잃으면 임기 중간에 불신임 되거나 재선에 성공할 수 없고, 반대로 신뢰를 얻은 위원장은 연임에 성공할 수 있다.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과 사퇴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조국은 검찰개혁이라는 대의를 위해 임명되었지만 자녀의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의혹 등 사적인 문제들 때문에 여론의 지탄을 받다 끝내 사퇴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조국 전 장관의 조기 사퇴는 임명 당시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사퇴 직전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임명반대여론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지지율도 덩달아 떨어졌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 여당으로서는 매우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서초동집회’를 통해 조국 임명이 지지층을 묶는 기능을 했지만 ‘광화문집회’에서 나타났듯이 보수층은 물론 중도층이 등을 돌렸다.
이번 사태로 집권 여당은 지지율이 빠진 반면 보수 야당은 추락한 지지율을 어느 정도 만회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 여당은 흔들리는 ‘노동존중정책’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불신을 사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정부 여당이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내년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 향후 안정적으로 정국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문 대통령이 어떤 공약을 제시하고 당선되었는지 되돌아보고 안 된 것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이행을 서둘러야 한다.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문재인 대통령은 ‘공정사회’와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약속하고 당선되었다. ‘노동존중공약’은 보수야당 후보와 선명한 차이가 있었고 이로 인해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그런데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노동기본권을 보장하지 아니하고, 노동시장의 차별과 불평등을 방치한 채 공정사회를 실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 대통령의 대표적인 노동공약은 ILO 핵심협약 비준과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1만 원,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요약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또 노조전임자임금 노사자율을 한국노총과 약속한 바 있고 민주당은 한국노총과의 정책간담회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통상임금에 포함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약속들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타임오프 개선에도 미온적이다. 물론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절반 정도 남았다. 하지만 바로 지금 정부 여당이 적극적인 공약이행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내년 선거에서 한국노총과 현장노동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
11월 국회에서 근기법개정안과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근기법 개정 논의에서는 노동시간단축에 따른 보완입법 내용이 다루어 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국회에서 노조할 권리가 폭넓게 인정되고 노동시간단축 취지에 부합하는 법제도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려스런 부분이 있다. 재계의 강력한 로비에 의해 이원욱 민주당 원내 수석부대표는 내년 1월부터 시행예정인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 노동시간 단축 시기를 늦추는 법안을 발의해 놓고 있고, 보수 야당은 탄력근로제 1년 확대, 선택근로제 확대와 주휴수당 폐지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모두는 노동시간 단축법을 무력화시키고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는 노동개악안들이다. 이전 정권 때도 노사정 합의를 무시하고 파견법 개악안과 쉬운해고 지침 등을 남발했다가 합의가 파기되고 사회적대화가 파탄 났는데 이를 벌써 잊은 모양이다.
한국노총은 11월 16일 오후 1시 ‘노조 할 권리 보장’과 ‘노동법 개악 중단’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한다. 한국노총의 외침에 정치권은 귀를 열고 이를 입법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 바야흐로 정치권은 내년 총선체제로 돌입하고 있다. 노동법 개악에 앞장서는 정당과 정치인은 내년 4월 총선에서 노동자들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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