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선 한국노총 조직본부 실장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도 변하는 게 없네요. 구조조정 위기는 여전하고, 타임오프로 노동조합 활동을 제약하고 회사의 부당한 인사나 정책에 반대하면 부당노동행위로 노조를 탄압하는 것도 여전해요. 또 과반수가 안 되었다고 노사협의회를 이용해 무용지물로 만들려고 합니다.”
최근 만난 한 현장 대표자의 말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 현장 노동조합 활동이 좀 편해질까 기대했건만 변한 게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 공공연맹 한국건설관리공사노동조합은 기관통합 당시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투쟁하는 과정에서 사장이 일상적인 노조탄압과 직원들에 대한 인사전횡을 서슴지 않고 강행했고, 금융노조 주택금융공사지부 역시 낙하산으로 임명된 사장의 노조탄압에 맞서 1년여 간 치열한 투쟁을 전개한바 있다.
뿐만 아니라 금속노련 서울반도체노동조합은 설립한 지 1년여 간 80~90년대에나 있었을법한 사측의 악랄한 노조가입 방해행위로 몸살을 앓았고, 공공연맹 법무부노조는 교섭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후퇴하는 노동정책
문재인 정부는 집권 이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대폭인상, 노동시간 단축, 사회적 대화 등 대표적인 노동정책에 대한 시동을 걸었지만 현재 모두 제자리걸음이거나 후퇴하고 있다.
최저임금법은 산입범위 확대로 개악되었고 2020년 1만원 공약도 파기되었다. 또한 주 최대 52시간 노동시간 단축제도는 계도기간 연장으로 근로감독을 유예함으로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 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노총의 문재인 정부 노사관계 정책평가와 노동조합의 과제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문재인 정부 사회적 대화와 노사관계의 평가와 과제」라는 발제를 통해 17개 노동정책 공약 중 5개만 추진이 완료, 7개는 진행 중, 나머지 5개는 아예 추진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정부 출범 초기에는 힘 있게 노동정책을 추진하다가 2018년에는 개혁보다 정책의 유지 관리로 들어갔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했다.
제자리 걸음 중인 ILO 핵심협약 비준
문재인 대통령은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국가 위상에 걸맞은 노동기본권보장을 이루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대통령 집권 2년간 경사노위 합의만을 강조했고 결국 10개월여 간의 논의에도 불구하고 노사정과 전문가의 논의에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경영계는 논의과정 내내 ILO 핵심협약 비준과 무관하게 사용자의 대항권 강화차원에서 △파업 시 대체근로 전면 허용 △부당노동행위제도 처벌조항 폐지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확대(현행 2년에서 4년)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보완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며, 경사노위 논의를 파행으로 끌어왔다.
결국 소리만 요란했지 제자리걸음을 해온 ILO 핵심협약 비준은 공익위원들이 법 개정 과제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조속한 조치를 권고했고, 정부는 이번 정기국회를 앞두고 공익위원 권고안을 토대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 입법안은 ILO 협약 정신과 원칙에 입각하지 않고 사측의 반발을 고려해 제출한 것으로 애초 취지에는 맞지 않게 후퇴했다.
하반기 국회, 노동법 개악의 장이 된다
10월부터 국회에서 논의될 정부 및 여야의 입법안에는 노동정책을 후퇴시키는 수두룩한 개악법안들이 제출되어있다
우선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주 52시간 유예법안들이 여야를 불문하고 발의되어 있다.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의 주 52시간제 적용시기를 1~2년 연기하는 개악법안을 발표했고, 바른미래당 김동철 의원은 재량근로제 대상업무를 법령이 아닌 노사합의로 결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또한 자유한국당 임이자 의원은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3개월로 연장하는 법안을 제출한 상태다.
최저임금 추가개악법안도 70여 개가 넘게 계류되어 있다. 여기엔 업종·규모·연령에 따른 차등적용, 결정 주기 연장, 결정체계 개편 등 그야말로 최저임금 제도를 난도질하는 법안이 다수 포함돼 있다. 작년 산입범위 확대로 수많은 저임금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인상효과를 낮춘 것도 모자라 최저임금제도 자체를 빈껍데기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저임금을 받는 미조직노동자들의 유일한 임금인상의 출로를 국회가 앞장서 가로막는 것으로, 입법권력의 명백한 남용이다.
정부도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하여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우선 정부가 제출한 노조법 개정안에는 현장 노조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는 타임오프 관련사항이 있지만 한국노총과 문재인 대통령이 정책협약으로 약속한 전임자임금 노사자율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내용이다.
이 개정안에는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조항을 삭제한다고 하면서도, 근로시간면제제도를 그대로 유지하여 법이 정한 타임오프 한도를 넘어서는 노사합의를 무효로 하고, 이러한 급여지급을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ILO가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제도에 관해 국가가 입법적 관여를 하지 말 것과 관련 제도폐지를 권고해왔으나 이의 수용을 거부한 것이다.
개정 노조법상 근로시간면제제도는 노사가 교섭해서 정한 급여지급 협약도 그 한도를 초과해서는 무효로 하는 강행규정이다. 그럼에도 마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에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를 두어 근로시간면제한도가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의결된 가이드라인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참으로 기만적인 법안의 내용이다.
또한 ILO 핵심협약 비준과 무관한 사용자의 대항권 강화 차원의 법률안이 함께 발의되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경영계는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하여 이와 무관하게 사용자의 대항권 강화를 강하게 요구하였고,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도 경영계의 주장에 동의하며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정부는 경영계의 요구를 포함시켜 △단체협약 유효기간 상한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 △직장점거와 관련해 “생산 기타 주요업무에 관련되는 시설을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형태로” 이뤄지는 쟁의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하였다.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와 관련하여 정부안은 회사로비, 회사 내 천막농성을 금지하는 등 사실상 직장 내 쟁의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으로 노조의 파업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법안임에 분명하다.
기업별 노조가 대다수인 우리 현실에서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무력화 시키고 핵심협약을 비준한다고 하면서 핵심협약과 무관한 재계의 부당한 요구를 정부안에 반영한 결과이다.
또한 단체협약 유효기간 상한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은 다수의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제한한다.
재계와 보수언론은 노조법 개정 논의를 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단체협약 유효기간의 상한 연장을 제기해왔다. 그들의 주장은 일본의 경우 3년, 프랑스 5년, 특별한 규정이 없는 독일, 미국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경우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짧아 파업 등 노사갈등이 빈번히 발생되고, 1년 내내 교섭하느라 생산성 저하된다는 것이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의 상한은 각 나라의 노사관계 특성을 감안하여 설정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노조조직률도 낮고 노사 간에 체결한 단체협약 수준이나 협약 적용률이 높지 않은 현실에서 그 유효기간의 상한을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한다는 것은 노동자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반노동적인 작태이다.
11월 16일 전국노동자대회 개최
한국노총은 후퇴하는 노동정책과 노동개악 움직임을 단호히 저지하고, 노조 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지난 8월 27일 제77차 중앙집행위에서 11월 16일 전국노동자대회를 국회 앞에서 개최하기로 결의했다.
김주영 위원장은 후퇴하고 있는 정부의 노동정책과 하반기 한국노총 주요현안에 대해 현장과 소통하고 전국노동자대회에 전조직적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9월 25일 제주지역본부를 시작으로 16개 지역 현장순회에 돌입했다.
전국노동자대회는 한국노총의 요구를 전 조합원의 단결된 목소리로 국회와 정부에 전달하는 투쟁의 장이다. 또한 노동계의 명실상부한 대표조직인 한국노총 위상을 대내외에 보여주는 단결의 장이다.
노동자대회 참가를 전조직적으로 결의하고 일본과의 경제보복으로 발생될 경제위기 심각성을 내세우며 노동자의 양보를 강요하고 노동개악 법안을 처리하려는 정부와 국회에 노동자의 분노를 보여주고, 개악법안 처리를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또한 현장의 노조활동을 옥죄는 타임오프제도 개선, 사회안전망 강화, 경제민주화법 개정을 촉구하여 99%의 국민과 노동자가 함께 잘 사는 노동존중세상, 공정한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한국노총의 강력한 의지를 대내외에 보여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