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4일, 양대 노총 노동자 일본에 가다
한국 대법원의 일제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 판결에 대한 일본의 무역 보복 조치와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한일관계가 최악인 가운데,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양대 노총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 추모행사 참가단은 일본 마이즈루에 도착했다. 교토의 작은 항구 마이즈루에는 일본이 아직도 부정하는 식민 지배와 일제 강제징용노동자의 역사가 살아 있다.
1945년 8월 24일, 우키시마 호 침몰
일제강점기, 특히 1936년 총동원체제 하에서 100만 명이 넘는 조선인 노동자는 일본과 아시아 곳곳에 동원되어 노예노동을 강요받았다. 일본제국주의는 석탄광산, 금속광산, 군수공장, 토목공장, 항만운수 현장에서 학대와 굶주림, 임금착취 등으로 조선인 노동자를 유린하였다. 해방이 되자 강제동원 노동자를 가득 태운 우키시마 호가 출항하였다. 조선에 돌아갈 수 있는 기쁨은 조선인 사이에 퍼져 배를 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4,730톤, 정원 841명의 우키시마 호에 수천 명을 승선시켰다. 그러나 부산으로 향하던 배가 8월 24일에 마이즈루 항구로 들어와 원인 모를 폭발로 침몰, 수천 명이 몰살당한다. 시체가 기름 젖은 파도에 실려 내려오는 마이즈루 바닷가는 처참했다. 아직까지 진상조사와 일본 정부의 사과나 배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1965년 8월 24일, 진실을 위한 일본 시민의 노력
우키시마 호 폭침사건의 진실은 바다 밑으로 사라질 뻔 했으나 마이즈루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모임을 결성하여, 1965년 8월 24일 ‘우키시마 호 순난자 추도식’을 개최한다. ‘우키시마호 순난자 추도 실행위원회’는 순난자 추도비와 추도동상, 추모공원을 건립했다. 이후 추도식은 매해 개최되며 올해 41주년이 되었다. 마이즈루 주민들은 ‘다시는 이런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우키시마 호의 참사를 마이즈루의 역사로 남기려고 노력해 왔다’고 말한다.
다시 2019년 8월 24일, 역사의 비극을 끝내야 할 때
8월 24일 11시 마이즈루 주민, 일본 시민, 재일동포, 그리고 양대 노총 참가단이 참석한 가운데 ‘순난자 추도비’ 앞에서 추도식이 시작되었다. 어린 소녀들의 추모노래는 영혼을 위로하였고 푸른 바다 위 흩뿌려진 국화는 넘실대는 파도를 따라 마치 부산으로 향하는 듯했다. 참가단은 역사의 비극을 마주한 현장에서 우키시마 호 사건과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한 올바른 진실규명과 사죄, 배상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하였다. 우리의 노력과 실천이 아베 정권의 경제보복에 파열구를 내고, 과거사에 대한 진실한 사죄와 반성, 배상을 이끌어낼 것이다. 한국 정부 또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나 2015년 위안부 합의와 같은 졸속 합의로 한일관계를 더 이상 왜곡하지 말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살아 있을 때 과거사 청산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역사의 비극을 끝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