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 된다는 건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고 그리스도로 부활했음을 믿음으로써 구원받는 걸 말한다. 예수의 삶, 즉 그가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가르쳤는지는 중요치 않다. 예수의 처음과 끝, 즉 어떻게 나고 어떻게 죽었는지가 중요하다. 이런 기독교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 바울(Paul)이다. 그는 서기 5년 지금의 터키 남부에서 태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가 아는 기독교는 바울이 만들어낸 종교로 역사상 실존했던 예수 운동(Jesus movement)과는 다르다. 예수 운동에서는 예수의 시작과 끝이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그 삶의 과정, 예수가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가르쳤는지가 중요했고, 예수와 같이 먹고 잤던 제자들이 지도부를 장악하는 건 당연했다. 이들의 권위는 예수가 행했던 바를 두 눈으로 보고, 예수가 가르쳤던 바를 두 귀로 듣은 데서 나왔다. 새로운 종교운동은 예수의 친형제 야고보와 수제자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주도하였다. 예수를 만난 적 없던 바울의 권위는 예수 운동 지도부와 비교할 때 너무나 초라했다.
기층 민중 출신으로 지식과 학문을 연마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예수의 제자들과 달리 바울은 엘리트 교육을 받은 귀족으로 그리스 철학에 정통한 일급 이론가였다. 그가 태어난 타르수스는 지중해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내륙에 자리 잡은 도시였다. 기독교성경의 신약전서를 이루는 27개 문건 가운데 13개의 저자명에 바울이 거론되며, 그 중 7개(데살로니가전서·갈라디아서·빌립보서·빌레몬서·고린도전서·고린도후서·로마서)는 진짜 바울이 쓴 것으로 평가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바울이 7개 문건을 쓴 시기가 서기 50~57년으로 그의 문건이 신약성경의 27개 가운데 맨 처음 쓰였다는 점이다. 4대 복음서인 마태복음은 서기 70년에서 110년 사이, 마가복음은 66년에서 70년 사이, 누가복음은 서기 80년에서 100년 사이, 요한복음은 서기 90년에서 110년 사이 쓰인 것으로 비정(比定)되며, 바울 문건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바울은 예수 운동의 지도부에 대해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이자 사기 치는 일꾼으로 스스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가장하는 자들”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야고보와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제자들은 예수의 실제 삶과 가르침을 따르는 운동이 아니라, 유대인이든 비유대인이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바울의 주장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살아생전 예수를 경험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바울에겐 예수와 같이 먹고 자면서 보고 들은 육체(flesh)는 의미가 없었다. 육체적 경험을 초월한 신령(the Spirit of God)을 믿는 게 중요했다.
역사적 존재로서의 예수를 배격하고 우주를 지배하는 신적 존재로서 그리스도의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기독교를 탄생시킨 바울은 서기 60년 로마에 도착했으나 가택 연금되고, 네로황제의 통치기인 64~68년 무렵 로마에서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사도 바울을 태우고 로마로 간 배는 현대 서구 문명도 같이 실어갔다고 썼다. 2천 년 동안 바울의 기독교는 진화와 변태를 거듭했고, 대한민국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가장 큰 종교집단을 형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