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6월 전쟁 위기로 치닫던 한반도 정세는 7월 제네바에서 열린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 8월 공동합의문 서명, 10월 제네바 합의문으로 이어지면서 평화롭게 종결되었다. 제네바 합의에서 북미 양국은 북한 핵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정치경제 관계를 정상화하고 핵 문제를 단계적으로 해결하기로 약속했다. 이 합의문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위협과 사용을 하지 않겠다는 공식적인 보장을 해 주기로 했으며, 북한의 흑연감속로를 대체하는 2기의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주선해 주기로 했다. 또한 북한의 핵 프로그램 동결로 인한 에너지 부족분을 보충하기 위해 연간 50만 톤의 중유를 북한에 공급해 주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는 삐걱거리다가 2002년 1월 미국 의회가 북한을 긴급사태시 핵 공격 대상에 포함시키고, 같은 달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칭함으로써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그리고 그해 10월 미 국무부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으며, 북한이 시인했다”고 선언함으로써 그 효력을 상실했다. 물론 북한은 그런 시인을 한 적이 없다. 그해 11월 미국은 일방적으로 북한에 대한 중유 지원을 중단했고, 12월 북한은 미국의 중유 수송 중단으로 핵시설 재가동이 불가피하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2003년 6월 북한은 “자위를 위해서 핵 억지력을 강화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미국과 한국은 다시 분주히 움직였고, 그 결과가 2005년 9월 19일 베이징에서 나온 <제4차 6자 회담 공동성명>이었다.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계획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확인하였다. 미국은 북한이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갖고 있음을 인정하고, 미국과 북한은 상호주권 존중, 평화적 공존, 관계 정상화 조치를 취하기로 약속하였다.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다자간·양자간 증진시키로 약속하고, 전력 등 북한에 대한 에너지 지원을 제공할 용의를 표명하였다. 그리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별도의 협상을 갖기로 합의하였다.
그런데 잉크도 마르지 않은 합의 다음날인 9월 20일 미국 정부는 마카오 소재 은행인 BDA에 북한의 불법자금이 들어 있다며 해당 계좌를 동결시킨다는 결정을 미국 정부의 <관보>에 게재하고, BDA 자금 동결 문제와 6자 회담 합의는 별개라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확대했다. 북한은 이를 6자 회담 합의 위반으로 간주하고, 핵무기 개발을 재개하여 2006년 7월 깃대령 발사장에서 단중장거리 미사일 7발을 쏜 다음, 그해 10월 1차 핵폭탄 시험에 성공하게 된다.
▲ 2008년 6월 27일 북미 합의의 성과로 폭파되고 있는 영변 원자로 냉각탑
북한의 강공에 놀란 미국은 6차 회담 재개에 나섰고 결국 2007년 2월 또 북미 합의를 만들어내야 했다. 같은 해 4월 미국 재무부는 BDA 자금 동결 해제 의사를 밝혔고, 6월 동결된 북한의 자금은 러시아 극동은행의 북한계좌로 송금되었다. 7월엔 미국을 대신해 한국이 북한에 중유를 제공함으로써 2007년 10월 3일 ‘핵 합의’, 즉 2005년 9.19 공동성명 이행 2단계 조치가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2008년 2월 이명박 정권이 등장해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이뤄졌던 남북 합의를 뒤집었고, 2009년 들어선 오바마 정부는 ‘전략적 인내’라는 북한 무시 전략으로 일관하였다. 그 결과 북한은 5차례 핵 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성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