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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선' 푸에블로

등록일 2016년12월02일 15시2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1968년 1월 초 푸에블로는 승무원 83명을 싣고 일본 사세보 항을 떠나 동해를 향했다. 길이 53.6미터의 푸에블로는 미 해군 해양 조사 선박으로 위장했지만, 실은 백악관 국가안보국과 해군정보국의 합동 지령을 받는 "전자 정보 수집 선박"이었다. 임무는 북한과 소련의 레이더, 소나, 무선 교신 등의 전자 정보를 수집하고, 청진, 성진, 마양도, 원산 같은 항구 연안에서 북한 해군의 활동을 정탐하는 것이었다. 푸에블로는 2월 4일 사세보 항으로 귀환할 예정이었지만, 1월 23일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 해군에 나포되었다. 이때 북한 군함의 사격으로 사망자 1명과 부상자 4명이 발생했다.

 

1999년 김정일의 지시로 원산항에서 평양 대동강으로 옮겨져 관광 명소가 된 푸에블로

 

북한은 미국 "간첩선"에 대한 경고를 꾸준히 보냈다. 1968년 1월 6일 평양 방송은 "동해 연안에서 끊임없이 호전적 행위를 자행해온 미 제국주의 군대가 오늘 아침 또 다시 많은 수의 무장 선박을 우리 측 연안으로 보냈다"고 보도했다. 나포 며칠 전인 1월 20일 제260차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북한 대표는 "미국이 간첩선을 보내고 우리 측 연안을 염탐하는 도발적인 행위를 계속한다면 … 우리의 권리를 충분히 행사할 것이다"고 직접 경고하였다. 이때 푸에블로는 소련 블라디보스토크 항에 대한 첩보 임무를 수행한 후, 1월 15일과 16일 청진 연안, 1월 18일 성진 연안의 북한 영해를 침범하여 정탐 작전을 마치고, 마양도 인근에서 북한 잠수함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작전 중 푸에블로는 여러 번 북한 해군에 노출되었지만, 간첩 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1월 23일 북한 해군의 대응은 여느 날과 달랐는데, 군함은 물론 미그기까지 동원해 미국의 "간첩선”을 포위한 북한은 도주를 시도하던 푸에블로에 포격을 가했다. 선체 장악을 위해 북한군이 승선하던 시점 푸에블로 내부는 비밀 자료를 불태우는 연기와 열기로 가득 찼다.

 

나포 다음날 판문점에서는 유엔군 대표 스미스 제독과 북한군 대표 박중국 소장이 참석해 제261차 군사정전위원회를 열었다. 스미스 제독은 푸에블로가 공해상에 위치했다고 우기면서 선박과 승무원을 즉각 석방·송환하고, 불법 나포 행위에 대해 미국 정부에 사과하며, 미국 정부가 국제법에 의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중국 소장은 “미친개가 달보고 짖는다”고 비웃었다.

 

처음부터 일관되게 북한 당국은 미국 정부가 푸에블로의 영해 침범과 간첩 활동 사실을 인정하고, 불법적 도발 행위를 저지른 데 사과하며, 차후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11개월의 시간과 28번의 회담을 거친 협상은 12월 22일 북한 당국이 성안한 사과문에 북한 당국이 마련한 필기구로 미국 정부를 대표한 우드워드 장군이 서명함으로써 끝났다. 이로써 생존자 82명과 사망자 1명은 판문점을 거쳐 “자유의 세계”로 귀환할 수 있었지만, 푸에블로는 북한에 남겨졌다.

 

“미국 정부는 자국 함정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해를 불법적으로 침범해 저지른 중대한 간첩 행위에 대하여 모든 책임을 지고 엄숙하게 사과한다”는 내용이 공식 문서에 남겨졌다. 미국 역사에 푸에블로는 150년 만에 처음으로 평시 나포된 미국 군함으로 기록되었다.

윤효원 인더스트리올 컨설턴트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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