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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곳곳에 살아남은 군사파쇼의 잔당

등록일 2016년06월21일 14시4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파시즘은 2차 대전을 일으켜 인류를 전쟁과 학살의 광기로 몰아간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일본의 히로히토 체제를 일컫는다. 그리고 파시즘 체제를 유지하는 사람과 조직을 파쇼라 한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가 주도한 군사쿠데타로 인해 군사독재가 들어선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회복하지 못하고 파시즘 체제로 이행한다. 군부독재세력이 주도하는 파시즘 체제를 떠받은 세력이 군사파쇼다.

 

1979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박정희 살해로 찾아온 유화 국면은 그해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환 일당에 의해 좌절되고 이에 맞선 민중들의 항쟁은 1980년 5월 군대를 동원한 광주학살로 분쇄되었다. 광주광역시가 2009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29주년을 맞아 목숨을 잃거나 다친 사람을 집계한 결과, 사망자 163명, 행방불명자 166명, 부상 뒤 숨진 사람 101명, 부상자 3,139명, 구속 및 구금 등의 기타 피해자 1,589명, 아직 연고가 확인되지 않아 묘비명도 없이 묻혀 있는 희생자 5명 등 총 5,189명으로 확인됐다.

 


광주시민을 학살하면서 권력을 잡은 전두환 군사파쇼 일당은 불법 체포, 고문, 살인을 이어가다가 1987년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면서 주저앉았고, 이후 대한민국은 군사독재에서 민주화로 이행할 수 있었다.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전진을 거듭하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1997년 말 IMF금융위기의 도전에 직면했음에도 김대중-노무현 자유주의 정권을 연달아 탄생시켰다. 하지만 정치적 민주주의의 실현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성과로 이어지지 않음으로써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출현을 가져왔다.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정권 핵심에 보수와 극우가 섞여 있던 이명박 시기를 거쳐 보수가 극우에 의해 숙청되고 극우가 판을 치는 박근혜 정권에 이르러 바닥을 쳤다가 지난 4.13 총선으로 가까스로 회생하게 되었다.


전두환은 군사반란과 광주학살의 수괴로 사형선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법대로 철저하게 처단되지 않은 채 김영삼 정권 말기 어이없이 사면되었다. 이 때문에 군사파쇼의 잔당들을 청소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고, 그 덕분에 군사파쇼의 수괴인 전두환은 광주학살의 책임이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보수와는 공존할 수 있어도 극우세력과는 공존할 수 없다. 히틀러-무솔리니-히로히토의 파시즘이 타도되어야 할 체제였듯이, 군사파쇼와 뿌리를 같이 하는 한국의 극우세력들은 하루 빨리 척결되어야 한다.


김영삼 정권의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으로 전두환과 노태우는 1996년 8월 26일 나란히 법정에 섰다. 이후 전두환은 사형을 언도받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이들이 법치의 정신대로 지금 감옥에 있었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윤효원 인더스트리올 컨설턴트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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