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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식민지의 시작 포츠머스 조약

등록일 2016년02월15일 14시3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1905년 5월 29일 아침 해군 블로힌 중령은 <돈스꼬이>호의 장교와 승무원에게 하선하여 울릉도로 헤엄쳐 가라는 명령을 내리고선 <돈스꼬이>를 깊이 2천 미터가 넘는 심해에 침몰시켰다. <돈스코이>호는 대마도 해전 최후의 러시아 순양함이었고, 이로써 러일 전쟁은 사실상 종료됐다. 러시아 측 피해는 엄청났다. 사망자 5,045명, 부상 364명, 포로 7,282명을 기록했다. 대마도 해전에 참전한 제2 태평양 함대 1만6,170명 중 블라디보스토크로 탈출한 병력은 870명이었다. 일본 측은 사망자 116명, 부상자 538명에 불과했다.


대마도 해전엔 러시아 해군과 일본 해군만 있었던 게 아니다. 미국 장교도 대마도 해전을 참관했고, 그 결과를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생애 1858~1919, 대통령 재임 1901~1909)에게 타전했다. 미국은 독일과 영국, 프랑스의 동의하에 러시아-일본 평화 중재에 들어갔다. 회담 장소가 미국의 포츠머스로 결정되고, 협상단이 구성되었다.


러시아 대표단은 각료회의 의장 세르게이 비테, 주미대사 로만 로젠, 법률고문 프리드리히 마르텐스, 일본 대표단은 전 외상 고무라 주타로, 주미대사 다카히라 고고로, 미국인 법률고문 H.W. 데니슨으로 정해졌다. 일왕은 대표단에 훈령을 내려 조선에서 일본의 완전한 지배권 인정을 관철시킬 것을 지시했다. 8월 9일에서 30일 사이 12차례 회담이 열렸고, 9월 5일 합의문 서명이 이뤄졌다. 협약은 러시아에선 10월 14일, 일본에선 10월 10일 최종 비준이 이뤄졌다.


포츠머스 협약으로 일본은 극동 아시아의 강자로 제국주의 국가로 발돋움했고, 러시아는 군주제의 몰락과 사회주의 혁명으로 치달았다. 일본제국이 조선에서 정치·군사·경제적인 우월권이 있음과 조선에 대해 지도·보호·감독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이 국제법적으로 승인됐다. 포츠머스 회담 직전인 7월 29일 도쿄에서 미국 전쟁장관 월리엄 하워드 태프트(1857~1903)와 일본 수상 카츠라 타로(1948~1913)가 만나 미국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보호권 설정을 지지한다는 비밀협정에 서명하였다. 미국은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을 챙겼다.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 외무대신 박제순(1858~1916)은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1860~1939)와 제2차 한일협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그리고 1906년 동아시아의 평화에 기여했다는 공로로 시오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사진은 협상을 마친 후 (왼쪽부터) 러시아 협상대표 비테, 로젠,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 일본 협상대표 고무라, 다카히라가 포즈를 취한 장면이다. 미국과 일본이 손잡고 한반도를 옭아매는 형세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윤효원 인더스트리올 컨설턴트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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