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주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차장
박주현 미조직비정규사업단 차장
안랩노조, 그 시작
“우리 회사 쪼개진대요.”
안랩에 대해서 들은 첫마디는 그랬다. 9월 14일 안랩 직원들은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이사회를 통해 안랩은 앞으로 안랩과 안랩BSP로 나눠진다는 내용이었다. 실체 없는 소문이라 생각했던 일이 단 한 통의 메일, 단 30분의 통보로 실체가 생겼다. 그게 처음 접한 안랩의 상황이었다. 물적 분할, 생소한 단어로 이루어진 메일을 이해할 수 없었던 직원들은 카톡방과 블라인드에서 모였다. 불안과 불만, 절망과 근거 없는 희망 속에서 며칠이 지났다. 노총으로 처음 안랩 상황이 전해진 것이 바로 이때였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분사 관련해서는 주주총회가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분사될 안랩BSP의 대표도 내정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노동조합도 없는 상황에서 직원들이 자체적으로 이 사태를 해결하긴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직원들에게 노동조합 설립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9월 27일 노조설립에 뜻을 함께 한 6명의 안랩 직원과 산업안전보건연구소(전 조직본부) 박연주 차장, 미조직 비정규사업단의 박주현 차장이 모였다.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노동조합설립을 통한 분사 저지’
질게 뻔한 싸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지는 분명했다. 분명한 목적지만큼 일사천리로 진행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핵심은 ‘누가’였다. 누가 위원장을 할까? 위원장을 하면 혹은 집행부를 하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거기에 대한 두려움이 그 자리에 모인 6명을 얼어붙게 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는 건 아닐까? 그 싸움에 내가 앞장서서 괜히 나만 다치는 게 아닐까?’ 이런 고민들이 눈으로 오고갔다. 분위기 반전이 필요했다. 그래서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노동조합을 하려고 하세요? 약간의 침묵 후 누군가 말했다.
“사실 저를 비롯해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이 이직을 하고자 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눈 감고 귀 닫고 이직하는 게 가장 쉬울 수도 있겠죠. 근데 너무 억울해요. 불만이 있긴 했지만 저는 여기를 정말 제 직장으로 생각하고 나름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회사는 이해관계에 따라 이렇게 쉽게 우리를 내팽개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나요.” 분노와 실망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 말에 누군가 다시 입을 열었다. 회의 내내 한마디도 안 하던 부장님(현 위원장)이었다.
“저는 이 전에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도 지금처럼 분사를 하고 직원들을 정리하더라고요. 그래서 안랩으로 이직했는데 지금 결국 똑같은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예전에는 분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아요. 이직을 통해 다른 회사에 가면 될까요? 저는 이직은 우리의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여기서 노동조합을 통해 내 노동조건을 지키는 게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키고 싶은 마음이었다. 경영진은 분사가 회사를 위한 결정이라고 했다. 더 좋은 미래를 위한 결정이라고 안랩과 안랩인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안랩에서 일해 온 사람들이 답했다. 우리는 버림받은 것 같았다고 그래서 나는 우리 회사를 지키고 싶다고…
그거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랩 상황에 대해서 처음 전달했을 때 많은 분들이 해주신 말은 “이기기 어려운 싸움, 질게 뻔한 싸움이니 집행부들이 지치지 않게 지더라도 아쉽지 않게 투쟁했다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래서 무서웠다. 신입 차장 둘이서 투쟁을 돕기에는 역량부족이 아닌지 고민했다. 그런데 우린 이날 지키겠단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마음을 확인하고 나자 일은 너무나 쉬웠다. 첫모임 후 2일 만에 노동조합 설립총회를 열었고 1일에 설립신고를 했다. 설립총회를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노조가입이 쏟아졌고 설립신고를 하자마자 언론보도가 쏟아졌다. 그때 처음 어쩌면 이 싸움을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안업계 최초의 노조에서 분사저지의 노조까지
안랩은 보안업계 1위의 기업이다. 흔히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 백신 V3는 안랩의 대표적 상품이다. 그런 업체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생각보다 파급효과는 컸다. 설립자의 명성과 브랜드 파워, 업계 1위라는 실적이 이어지면서 기자들의 관심이 매우 뜨거웠다. 적극적으로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했다. 동시에 사측에 분사와 관련한 우선협상 요구안을 보냈다. 성명서로 노조의 입장을 전하고 사측을 압박했다. 분사에 대해서 안랩인들이 반대하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중요했다.
사측 역시 이러한 노조의 움직임에 설명회 개최로 대응했다. 분사사태 이후 처음으로 사측이 마련한 자리였다. 노조로서는 동의할 수 없었다. 이미 결정한 사항에 대해서 뒤늦은 설명회를 여는 것은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고 회사에 오히려 ‘소통’ 했다는 명분을 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사측이 노조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으니 본격적으로 분사저지투쟁 계획을 세웠다. 11월 2일 주주총회까지의 타임테이블을 정했다. 국정감사가 시작되기 전 국회에서의 기자회견을 통해서 분사문제를 전면 공론화시키는 방법, 1인 시위를 통해서 조합원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출근 선전전 등 다양한 계획들이 세워졌고 D-Day는 10월 9일로 잡았다.
그런데 D-1일 돌연 회사는 분사를 철회했다. 대표가 보낸 메일의 내용은 간단했다. “분사결정은 경영상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안랩인들이 반대한다면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길고 힘든 싸움이 본격 시작되기 전에 승리로 돌아왔다. 노조원들에게 고맙다는 카톡이 쏟아졌다. 위원장은 눈물이 난다고 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받아야 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까닭모를 책임감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코끝이 시렸다. 여러 가지 마음들이 교차했다.
안랩 집행부들은 분사결정이라는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많은 용기를 내어 노동조합을 시작하게 됐고, 개인 시간을 쪼개 모이고 논의하길 여러 번 반복했다. 막연한 미래와 더불어 지금 자신의 선택이 올바른지에 대해서 수없이 고민했을 집행부들의 마음을 알았기에 분사철회라는 엄청난 결심 앞에서 우리는 그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너무나 잘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노동조합 설립을 고민하던 그 순간부터 집행부와 우리는 같이 느끼고 동일한 것을 고민하며 ‘함께’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설립부터 분사철회까지 약 10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우리는 매우 가까워졌고 또 함께 성장했다.
안랩노조는 분사철회라는 변화를 이룩해냈지만 앞으로 변화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았다. 이는 한국노총도 마찬가지이다. 안랩노조가 작은 묘목에서 커다란 거목으로 잘 자랄 수 있게 돕는 것이 판교지역에 조직화 사업의 성과를 좌우 할 것이다. 이에 미조직비정규사업단은 판교를 전략조직화 사업지로 선정하고 안랩 노조가 거목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함을 물론이거니와 다른 곳의 노조설립을 도와 판교 내 한국노총 숲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우리가 뿌린 아주 작은 씨앗이 숲이 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우리는 그 길을 함께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