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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의무자기준, 가난한 이들의 족쇄

등록일 2018년10월17일 13시27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가장 가난한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다. 이 제도는 가난에 빠진 이들의 최저생활을 사회가 함께 지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제도가 IMF 외환위기 이후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취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IMF 이후 국어사전에 새롭게 등록된 단어 중 하나는 ‘실직노숙자’였다. 당시 곳곳에서는 대규모 정리해고와 퇴직종용이 있었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노숙이라는 극단적인 빈곤까지 밀려났던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두 가지를 말한다. 먼저 불안정한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나 가난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 한 가지는 가난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공통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한다는 사회보장의 기본 원리를 담고 있다. 모두의 존엄을 위한 약속이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으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이 있다. 흔히 빈곤 사각지대로 불리는 이들이다. 부양의무자기준은 빈곤 사각지대를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다. 가난에도 불구하고 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약 93만 명으로 추정된다.

 

가난해도 존엄할 권리로부터 배제 된 사람들

 

부양의무자기준은 본인의 소득과 재산을 고려할 때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가 되어야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족에게 일정기준 이상의 소득이나 재산이 있으면 수급을 받을 수 없도록 막는다. 이 기준은 함께 사는 가족이 아니라 따로 사는 가족들에게 적용 된다. 멀리 사는 부모, 자녀, 사위 며느리나 계부, 계모라 할지라도 소득과 재산이 있다면 실제 부양여부와 상관없이 수급권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대규모의 사각지대를 낳는다.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는 160만 명, 인구의 3% 남짓인데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한 사각지대는 93만 명이다. 수급 규모만큼이나 거대한 사각지대가 있다.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한 수급 탈락, 수급비 삭감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빈곤층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나왔으나 개선은 미진했다. 전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마지막 안전망에 숭숭 뚫려있는 큰 구멍을 방치해 왔다.


둘째, 부양의무자기준은 빈곤을 대물림한다. 수급신청자의 부양의무자에게 수급자의 빈곤은 족쇄가 된다. 2018년 현재를 기준으로 한달 약 351만 원의 합산 소득을 갖는 부부는 따로 사는 1명의 부양의무자를 온전히 부양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판정 받는다. 351만 원의 부부 합산소득이면 정말 따로 사는 1명의 빈곤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충분한가? 가난한 이들의 가족들을 더 나은 삶을 꿈꾸기 어려운 수준에 붙잡혀 살아야만 한다.


셋째, 부양의무자기준은 가난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들에게 돌리고 사회의 책임을 방기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빈곤을 사회적 위협으로 보고 이를 해결하려 한 것과 상반되게 부양의무자기준은 다시 가족과 개인에게 그 책임을 떠넘긴다. 부양의무자기준은 현재 사회와 도무지 맞지 않다. 1인가구가 전체 가구 구성 중 가장 흔한 가구 유형이 되었다. 이는 빈곤층에서 특히 두드러져 빈곤층의 절반이 1인 가구다. 빈곤 청년들은 가족 구성을 포기하고 있다. 소득상위 10%를 제외하니 서울의 아동 40%가 아동수당에서 제외되었다. 중간정도의 소득을 갖는 가구들 역시 부모를 부양하기 어렵다고 답하고 있다. 사회인식조사에 따르면 부모를 가족이 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998년 89.9%애서 2014년 31.7%로 떨어졌다. 누가, 어떻게, 누구를 부양할 수 있다는 말인가?

 

대통령 공약에도 불구하고 지지부진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수급신청을 하려는 사람들은 부양의무자기준과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수치심, 모멸감을 얻곤 한다. 수급신청을 할 때 ‘부양의무자 금융정보 제공동의서’라는 것을 제출해야 하는데, 수급신청을 위해 가족들의 금융정보를 정부가 열람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동의서다. 가난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로 관계가 약화된 이들은 가족에게 이러한 동의서를 얻기 어렵다. 가족이 멀리 살거나 이동이 어려운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자녀가 있는 경우 이혼 후에도 전 배우자가 부양의무자로 남아있어 곤란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을 심사하기도 전에 필요한 서류를 마련할 수 없어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지난 대선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해 8월 광화문의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폐지 공동행동> 농성장을 방문해 대통령 공약의 이행 의지를 다시 확인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크게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로 각각 나누어져 있는데, 올 해 10월 임대료를 보조하는 주거급여의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된다. 그러나 여전히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생계, 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계획은 요원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은 모든 영역에 걸친 박탈을 의미한다. 동시에 생산과 이윤이 중심인 사회에서 빈곤은 무능과 게으름, 실패의 결과물로 취급받는다. 부양의무자기준은 적극적으로 가난을 처벌한다. 사회에 기대지 말고 가족들의 짐이 되라고, 가족이라면 마땅히 가난한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윤리적이라고 윽박지른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빈곤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 지난 여름. 서울의 한 희귀병 환자는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한 수급탈락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양의무자기준은 여전히 소리 없이 사람들을 죽음에 밀어 넣고 있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모두를 위한 요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요구해야 하는 당사자는 93만 명의 사각지대가 아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에게 닥칠지 모르는 가난이 두려운 사람이라면, 가족의 가난 때문에 모두 다 함께 가난해지는 세상이 잘못 되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가난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는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위해 함께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


누구나 가난해질 수 있고, 가난에 빠지더라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를 가졌다는 것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중요한 두 전제다. 이 전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재 빈곤층의 인간답게 살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불평등과 격차가 확대되는 사회 속에서 빈곤은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하고 해결해야 하는 사회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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