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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3일제 노동자로 산다는 것

최수빈

등록일 2023년12월06일 10시16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나는 주 3일제 노동자다. 월수금 출근하고 화목은 쉰다. 내가 실제로 일하는 곳은 IT와는 아무 관련도 없다. 내가 입사하기 전에는 회사 홈페이지도 없는 곳이었다. 규모도 아주 작다. 이 회사의 직원은 나를 포함해 여섯 명뿐이다. 회사에서 내게 주 3일제 근무를 제안한 건 혁신을 추구한 결과가 아니었다. 작은 회사가 직원은 고용하되 인건비 부담은 최소화하기 위한 전술에 가까웠다.

 

나는 주 3일을 일하고 한 달에 200만 원을 받는다. 물론, 이건 세전 금액이다. 근무시간은 선진적이지만, 내 월급은 20대 하위 40%에 해당한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나를 부러워하던 사람들은 거의 남지 않는다.

 

그중에서 한두 명은 여전히 나를 부러워하고는 한다. 적게 벌더라도 적게 일하고 싶다면서 주 3일 노동자로 사는 건 어떤지 묻는다. 그들의 눈은 여전히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주3일 노동이 끝내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 주에 딱 3일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인생! 나도 똑같은 기대를 품고 주 3일 노동자가 되기로 했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실제로 경험한 주 3일 노동은 기대와는 달랐다.

 

처음에는 주 3일제를 제대로 즐겼다. 남들 다 일하는 평일에 자유롭다는 건 이점이 많았다. 사람 없는 마트에서 여유롭게 장을 볼 수도 있고, 줄을 서지 않고 맛집에서 밥을 먹을 수도 있고, 아플 땐 곧장 병원에 갈 수도 있다.

 

한가한 나처럼 한갓진 장소에 가면 그 공간을 나 혼자 독점하는 것 같아 얼마간은 우쭐했다. 이내 그곳에 느긋한 젊은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사실에 불안해졌지만. 사람들이 혹시나 나를 철없는 캥거루족이나 현실 감각 없는 백수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쉬는 평일에 외출하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내가 평일에 이틀씩 펑펑 놀아도 회사는 잘만 굴러간다는 사실에 더 불안해졌다. 내가 주중에 자리를 비워도 부재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이러다가 회사에서 나의 쓸모를 의심하는 건 아닐까. 주 3일 근무를 주 2일로, 그러다가 주 1일로, 나중에는 내 자리를 없앨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졌다.

쉬는 평일에도 9시가 되면 회사 메일에 접속했다. 불필요한 메일은 지우고 답신이 필요한 메일은 사장님께 카톡으로 알렸다. 보낸 메일함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방금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학생처럼, 보낸 메일을 확인하면서 내가 쉬는 날 회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려 했다.

가끔은 내가 쉬는 날이라고 확인을 안 했다면, 큰일 날 뻔한 메일이 있기도 했다. 물론 열 통 중에 아홉 통의 메일은 휴일을 반납하면서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었다. 내가 휴일에 회사 메일함을 확인하는 행위는 휴식 시간을 축낼 뿐, 대부분 의미가 없고, 가치도 없고, 회사에 도움도 안 되는 일이었다. 주 3일 근무를 하는데도 주 5일 근무를 하는 것처럼 피곤했다.

 

<가짜 노동>의 저자는 사람들이 바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며, 아무 영향도 없는 가짜 노동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가짜 노동으로 시간을 메꾸며 바쁨에 집착하는 이유는 바쁘지 않다는 말이 사회적 금기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여가는 게으름으로 여겨지고, 게으름은 죄가 된다. 우리는 죄인이 되고 싶지 않아서 몸과 마음을 한가하게 두지 못한다. 그렇게 현대인의 노동 시간은 1980년대 이후로 답보 상태를 유지해왔다.

 

우리는 좀 더 뻔뻔해져야 한다. 전 국민이 밤낮으로 열심히 일해서 유례없는 산업화에 성공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어 쉬는 게 어렵다. 하지만 그 결과 우리는 OECD 회원국 사람들보다 평균 149시간 더 일하고, 한 해에 500명이 과로해서 사망한다. 우리에게는 휴식이 절실하다. 뻔뻔하게 쉬고, 더 뻔뻔하게 휴식을 요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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