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결혼식 날짜가 잡혔다. 내년 9월 1일이다. 동생과 남자친구는 특별히 선호하는 날짜 없이 그저 빨리 결혼하기만을 바랐고, 그때가 올해 8월을 기준으로 가장 빨리 결혼할 수 있는 날이었다. 일 년 후가 가장 빠른 날이라니. 동생은 믿기지 않아서 그때보다 더 이른 날은 없는지 물었다고 했다.
“올해 예약은 작년에 벌써 끝났고, 내년 예약도 거의 끝나가고 있어요. 서두르셔야 내년 9월에라도 결혼하실 수 있어요. 다른 곳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거예요.”
동생은 그 말이 손님의 불안감을 자극해서 빨리 계약금을 치르게 하려는 예식장의 술수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속이려 한 예식장이 괘씸했던 동생은, 그곳을 나와서 다른 예식장들도 둘러보고 다녔다. 하지만 다른 예식장도 마찬가지였다. 동생은 세 군데의 예식장을 더 가본 뒤에야 자신이 속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동생에게 결혼 현실을 알려줬을 뿐이었다. 현실이 어떤지 깨달은 동생은 처음 갔던 예식장에 다시 가서 결혼 날짜를 내년 9월 1일로 확정했다.
동생은 내년 9월 1일에 결혼하게 된 것이 여전히 자기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출산율이 1명대도 안 되는 나라에서 일 년은 기다려야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니. 이 모든 게 꼭 먼 나라 이야기 같다고 동생은 말했다. 결혼 계획이 없는 나는 더 먼 나라를 떠올리며 동생이 전해주는 먼 나라 이야기를 들었다. 청년들의 65%가 연애를 하지 않고, 20대 청년 10명 중 9명은 결혼하지 않은 나라에서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비현실적인 상황이 현실이 된 건 코로나 영향이 크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인 2019년에 전국 예식장 수는 890개였다. 지금은 전국에 742개의 예식장이 있다. 백여 개의 결혼식장이 코로나와 함께 사라졌다.
결혼식장은 줄었는데 결혼하려는 사람들은 늘었다. 1996년 이후로 우리나라의 혼인 건수는 매년 감소해 왔다. 1996년은 43만 쌍의 부부가 탄생한 해였다.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부부가 탄생한 시기였다. IMF가 터지면서 1년 만에 혼인 건수는 30만 건대로 추락했다. 2016년에는 처음으로 혼인 건수가 20만 건대를 기록했다.
코로나가 유행했던 지난 3년 동안 혼인 건수는 10만 건대로 추락했다. 코로나 발생 직전 해인 2019년의 혼인 건수는 23만이었다. 3년 만인 2022년의 혼인 건수는 19만이었다. 혼인 건수가 30만 건에서 20만 건으로 감소하기까지 19년이 걸렸다. 20만 건이 붕괴하기까지는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코로나가 혼인 감소 속도를 세 배 가까이 앞당긴 셈이다.
27년 만에 혼인 건수가 증가세를 보였다는 소식을 연말에 듣게 될지도 모른다.
올해 1월부터 월별 혼인 건수는 전년 동월 대비 꾸준히 증가해 왔다. 작년과 비교했을 때 혼인 건수는 월마다 평균적으로 12.35% 증가했다. 상반기에만 10만 건의 혼인이 이뤄졌다. 이런 추세가 하반기에도 계속된다면 혼인 건수는 다시 20만을 돌파할 수도 있다.
수요는 급증하는데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공급자가 전적으로 가격을 결정하게 된다. 예식업계는 물가와 인건비 인상을 이유로 예식비를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씩 올렸다. 이제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리려면 적어도 3천만 원이 필요하다.
가격뿐 아니라 계약 조건도 예비 신혼부부에게 한층 더 불리해졌다. 200명의 식사를 예약했는데 실제로는 150명이 식사를 하더라도 예식장은 50명분의 식대를 돌려주지 않는다. 어떤 기준으로 고가의 대관료와 식대가 결정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없다. 예식장이 이 조건으로 그 금액이라고 하면 예비부부는 그저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비현실적이었던 결혼은 이제 초현실적인 사건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누군가의 초현실은 누군가의 현실이다. 일 년을 기다려서라도 비용이 비싸도 매일 결혼식장에서 행진하는 사람들이 있다. 초현실과 현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곳. 그래서 어떤 것이 진짜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곳. 이건 이상한 나라의 결혼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