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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조합원 2명 중 1명 “미래가 우울해”

조합원 의식조사 … 복지확대 열망 크고, 부자증세 선호

등록일 2018년04월02일 10시5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한국지엠이 군산공장 폐쇄방침을 내놓은 지 채 50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2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등졌다. 한 사람은 공원에서 한 사람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회사에 희망퇴직원을 낸 뒤였다. 살아 있었다면 4월1일부터 실업자가 될 처지였다.

 기업이 구조조정을 추진할 때 노동자들이 극렬하게 저항하거나 자살 같은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이유는 분명하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가정살림이 뿌리째 흔들리기 때문이다. 해고 같은 노동시장의 위험으로부터 노동자 생존을 지켜 줄 ‘완충지대’가 없어서다. 일자리·교육·보육·주거·노후·건강 불안을 낮춰 줄 사회안전망이 빈약해서 벌어지는 문제다.
 노동자들의 삶을 위협하는 불안요인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한국노총 조합원 10명 중 6명은 ‘불평등’에서 그 답을 찾았다. ‘현재 한국의 사회·경제적 분배구조가 평등한 편이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응답자 63.3%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매우 반대”가 22.4%, “다소 반대”가 40.9%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상위 10% 가구가 전체 자산의 40% 이상을 점유하는 등 자산 양극화가 고착화하고 있다. 소득 불평등도 심화됐다. 대표적 소득분배지표인 지니계수를 보더라도 2015년 0.354였던 처분가능소득 기준 지니계수가 지난해 기준 0.357로 0.003 상승했다. 지니계수는 0부터 1까지 수치로 표현되는데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근접할수록 불평등하다는 뜻이다.


 <그림1> 한국의 사회·경제적 분배구조가 평등한 편이라고 생각하나?

 

한국노총 조합원 63.3% “한국사회 불평등”

노동자가 가정살림을 꾸리려면 돈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가계소득은 ‘월급’이다. 노동자가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고용주로부터 직접 받는 ‘시장임금’이다. 그런데 시장임금이 가계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할 경우 가계소득 불평등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노동자 월급은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 사이의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기업 규모를 기준으로 보면 올해 1월 기준 300인 미만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월평균 326만6천원의 급여를 받았다. 같은 달 300인 이상 대기업 노동자는 726만5천원을 벌었다. 대기업 월급이 중소기업보다 2.2배나 많다. 지난해 1월과 비교하면 중소기업 노동자 월급은 6.3% 줄고, 대기업 노동자 월급은 6.9% 늘었다. 이런 구조라면 중소기업 노동자나 비정규직·여성 같은 노동시장 내 취약계층은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하지만 가계를 지탱하는 또 다른 기둥이 있다. 바로 ‘사회임금’이다. 정부가 개인에게 제공하는 복지혜택을 돈으로 환산해 더한 수치다. 사회임금은 복지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회임금 비중이 높아지면 시장임금 격차가 완화돼 가계소득 불평등이 줄어들 수 있다. 반대로 사회임금이 낮다는 것은 노동자가 삶을 꾸려 나가는 데 정부 지원이 매우 취약하다는 뜻이다.

 한국노총 조합원들 역시 사회임금 확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복지 서비스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대부분 문항에서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답변이 압도적이었다.

 먼저 ‘정부가 환자에게 더 많은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문항에 응답자 91.9%가 “찬성”했다. ‘정부가 노인에게 적정한 생활수준을 더 보장해야 한다’는 문항과 ‘아이 있는 취업자에게 질 높은 보육서비스를 더 많이 제공해야 한다’는 문항에서도 각각 88.4% 응답자가 “찬성” 입장을 밝혔다. 한국노총 조합원들도 건강·노후·보육불안을 크게 느끼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밖에 ‘정부가 저소득층 대학생 학비를 더 많이 지원해야 한다’(찬성 83.4%), ‘정부가 남녀 평등을 더 많이 촉진해야 한다’(찬성 80.0%), ‘정부가 실업자에게 적정한 생활수준을 더 보장해야 한다’(찬성 66.3%)는 항목에서 전반적으로 찬성 의견이 많았다.


<그림2> 정부 사회정책에 대한 생각은?

 

이 같은 조사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노동조합이 협상을 통해 시장임금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노후와 질병·일자리 불안과 주택·교육 부담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는 얘기다. ‘기업 내 임금협상’을 너머 ‘사회적 임금협상’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한국노총 조합원의 92.9%가 “노사정위원회 등을 통한 사회적 대화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은 정부가 ‘예뻐서’가 아니다. 촛불혁명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계기로 들어선 현 정부가 노동친화적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노동계가 적극적으로 견인해 내야 한다는 의미다. 사회적 대화의 의제는 단연 사회임금의 확대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부자증세로 보편복지?

문제는 재정이다. 우리나라 사회임금이 부실한 이유는 국가재정 규모가 작은 데다 복지제도 자체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재정 규모를 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지출은 32.3%로(2015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에서 두 번째다.

복지지출 비중도 국내총생산의 9.7%(2014년 기준)로 OECD 평균인 21.1%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회원국 가운데 꼴찌다. 2011~2016년 우리나라 보건복지 재정지출 연평균 증가율이 7.4%를 기록하는 등 최근 들어 우리나라 사회복지부문 지출이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국제 기준에 견줘 보면 갈 길이 멀다. 보편적 복지를 위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보편적 증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런데 한국노총 조합원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정부가 각종 복지 서비스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인식하면서도, 복지 확충을 위한 재정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거둬 조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번 의식조사에서는 정부의 세금정책 방향에 대한 조합원들의 의견을 묻기 위해 4가지 선택지에 대한 찬반들 물었다. ‘선별적 복지 vs 보편적 복지’에 대한 선호와 ‘보편적 증세 vs 선별적 증세’에 대한 선호를 알아보기 위해 △취약계층을 위한 선택적 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부유층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함 △취약계층을 위한 선택적 복지를 강화를 위해 모든 계층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함 △교육·의료·돌봄 등 보편적 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부유층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함 △교육·의료·돌봄 등 보편적 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모든 계층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함 등의 보기를 제시했다.

조사 결과 한국노총 조합원들은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에 대해서는 비교적 둔감한 반면, 보편적 증세에 대한 거부감은 뚜렷했다.
‘취약계층을 위한 선택적 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부유층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함’이라는 선택지에 조합원 89.5% “찬성” 의견을 밝혔다. ‘교육·의료·돌봄 등 보편적 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부유층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함’이라는 선택지에 대해서도 조합원 85.4%가 “찬성”했다.  그런가 하면 ‘취약계층을 위한 선택적 복지를 강화를 위해 모든 계층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함’이라는 선택지와 ‘교육·의료·돌봄 등 보편적 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모든 계층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함’이라는 선택지에 대해서는 각각 44.4%와 48.2%의 조합원이 “찬성”했다.

이는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이 지난 2011년 노조간부 1천46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조합의 복지정책 수립을 위한 노조간부 의견조사’ 결과와도 비교된다. 당시 조사에서는 보편적 복지에 대한 지지도가 압도적으로 높고(보편적 복지 85.1%, 선별적 복지12.0%), ‘세금부담이 높고 복지 수준이 높은 사회’에 대해서도 찬성(64.9%) 의견이 월등했다. 당시 조사가 ‘무상급식 논란’이 한창이던 해에 진행돼 어느 때보다 복지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시기였음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조사결과와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불과 6년여 만에 복지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노총 구성원들의 관점이 상당히 보수화됐음을 알 수 있다. 한국노총이 ‘노동이 존중되는 평등복지통일국가’를 지향하고, 보편적 복지를 통한 교육·보육·주거·노후·의료 부담 해소를 표방하는 점에 비춰 봐도, 이번 조사 결과는 조직의 이상과 조응하지 못한다.

복지 확충, 노동조합 정치력에 달렸다

복지는 노동시장 밖의 재분배 의제다. 노동시장에서 거둔 공적 재원인 세금을 토대로 노동시장 외부에서 사용되는 사회임금이다.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고통 받는 불안정 노동자일수록 사회임금 인상이 절실하다.

사회임금을 늘리려면 반드시 증세가 동반돼야 한다. ‘증세 없는 복지’를 외쳤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주장은 궤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누구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일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런데 부자들에게 세금을 거둬 복지를 강화하자는 한국노총 조합원들의 태도는 마치 사용자를 상대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모습과 닮았다. 복지를 쟁취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임금을 둘러싼 투쟁이 기업 내부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서 이뤄지는 반면, 사회임금을 둘러싼 줄다리기는 사회보험·교육·주택 등 정부 정책과 국회 입법 영역에서 전개된다. 하지만 사회임금의 수준과 방식을 둘러싼 협상은 노동조합의 정치력과 직결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가 2차 방정식이라면, 사회임금을 둘러싼 협의는 고차 방정식이다. 허투루 덤벼들었다가는 본전도 못 건질 수 있다. 조직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노동조합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복지 논의를 주도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시장임금의 불평등을 줄여 노동자 내부의 격차를 완화하고, 이를 통해 노동자 내부의 단결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는 현재 한국노총이 사활을 걸고 있는 조직 확대와도 불가분의 관계다. 특히 한국노총처럼 보편적 복지를 주창하는 세력은 실질적인 세입 확대방안까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림3> 한국노총 운동방향


내 세대보다 자식 세대에 사회·경제적 상태가 더 좋아질까? 조합원 의식조사에 포함된 질문 중 하나다. 조합원 48.0%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합원 2명 중 1명 꼴로 우울한 미래를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비관의 장막을 걷어낼 방법은 무엇일까.

그래도 희망은 우리 내부에 있었다. 이번 조사에서 한국노총 조합원 59.7%는 “조합원이 된 후 정치사회적 행동에 더 많이 참여한다”고 답했고, 조합원 69.0%는 “나의 정치사회적 행동 참여가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조를 통해 사회를 바로 보는 눈을 떠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만큼 올바른 경로 설정이 중요하다. 지도부가 낙관의 길잡이가 돼야 한다.<끝>

❙참고자료
- 통계청·금융감독원·한국은행(2017) ‘가계금융·복지조사’
- 고용노동부(2018) ‘2월 사업체노동력조사’
- OECE(2015), General government spending(Total, % of GDP)
- OECD(2016), Social spending(Public, % of GDP, 2016 or latest available)
- 황선자(2011), 노동조합의 복지수요와 재정전략-복지태도와 영향요인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 오건호(2012), 나도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다, 레디앙미디어

이지현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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