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한국노총 조합원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정부가 각종 복지 서비스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인식하면서도, 복지 확충을 위한 재정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거둬 조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번 의식조사에서는 정부의 세금정책 방향에 대한 조합원들의 의견을 묻기 위해 4가지 선택지에 대한 찬반들 물었다. ‘선별적 복지 vs 보편적 복지’에 대한 선호와 ‘보편적 증세 vs 선별적 증세’에 대한 선호를 알아보기 위해 △취약계층을 위한 선택적 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부유층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함 △취약계층을 위한 선택적 복지를 강화를 위해 모든 계층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함 △교육·의료·돌봄 등 보편적 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부유층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함 △교육·의료·돌봄 등 보편적 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모든 계층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함 등의 보기를 제시했다.
조사 결과 한국노총 조합원들은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에 대해서는 비교적 둔감한 반면, 보편적 증세에 대한 거부감은 뚜렷했다.
‘취약계층을 위한 선택적 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부유층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함’이라는 선택지에 조합원 89.5% “찬성” 의견을 밝혔다. ‘교육·의료·돌봄 등 보편적 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부유층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함’이라는 선택지에 대해서도 조합원 85.4%가 “찬성”했다. 그런가 하면 ‘취약계층을 위한 선택적 복지를 강화를 위해 모든 계층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함’이라는 선택지와 ‘교육·의료·돌봄 등 보편적 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모든 계층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함’이라는 선택지에 대해서는 각각 44.4%와 48.2%의 조합원이 “찬성”했다.
이는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이 지난 2011년 노조간부 1천46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조합의 복지정책 수립을 위한 노조간부 의견조사’ 결과와도 비교된다. 당시 조사에서는 보편적 복지에 대한 지지도가 압도적으로 높고(보편적 복지 85.1%, 선별적 복지12.0%), ‘세금부담이 높고 복지 수준이 높은 사회’에 대해서도 찬성(64.9%) 의견이 월등했다. 당시 조사가 ‘무상급식 논란’이 한창이던 해에 진행돼 어느 때보다 복지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시기였음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조사결과와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불과 6년여 만에 복지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노총 구성원들의 관점이 상당히 보수화됐음을 알 수 있다. 한국노총이 ‘노동이 존중되는 평등복지통일국가’를 지향하고, 보편적 복지를 통한 교육·보육·주거·노후·의료 부담 해소를 표방하는 점에 비춰 봐도, 이번 조사 결과는 조직의 이상과 조응하지 못한다.
복지 확충, 노동조합 정치력에 달렸다
복지는 노동시장 밖의 재분배 의제다. 노동시장에서 거둔 공적 재원인 세금을 토대로 노동시장 외부에서 사용되는 사회임금이다.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고통 받는 불안정 노동자일수록 사회임금 인상이 절실하다.
사회임금을 늘리려면 반드시 증세가 동반돼야 한다. ‘증세 없는 복지’를 외쳤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주장은 궤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누구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일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런데 부자들에게 세금을 거둬 복지를 강화하자는 한국노총 조합원들의 태도는 마치 사용자를 상대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모습과 닮았다. 복지를 쟁취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임금을 둘러싼 투쟁이 기업 내부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서 이뤄지는 반면, 사회임금을 둘러싼 줄다리기는 사회보험·교육·주택 등 정부 정책과 국회 입법 영역에서 전개된다. 하지만 사회임금의 수준과 방식을 둘러싼 협상은 노동조합의 정치력과 직결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가 2차 방정식이라면, 사회임금을 둘러싼 협의는 고차 방정식이다. 허투루 덤벼들었다가는 본전도 못 건질 수 있다. 조직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노동조합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복지 논의를 주도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시장임금의 불평등을 줄여 노동자 내부의 격차를 완화하고, 이를 통해 노동자 내부의 단결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는 현재 한국노총이 사활을 걸고 있는 조직 확대와도 불가분의 관계다. 특히 한국노총처럼 보편적 복지를 주창하는 세력은 실질적인 세입 확대방안까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림3> 한국노총 운동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