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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30주년, 소련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임명묵 대학생

등록일 2021년12월02일 10시44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1991년 12월 25일에 세계사의 한 장이 넘어갔다. 20세기 역사를 뒤흔들었던 공산주의 이념의 종주국인 소비에트 연방, 소련이 바로 그날 무너졌기 때문이다. 소련은 인류 문명사에서 하나의 시대를 상징하는 국가였기 때문에 그 해체는 더욱 특별했다. 인류사는 소련의 해체와 함께 다음 시대로 넘어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소련의 시대는 과연 어떤 시대였는가?

 

소련을 탄생시킨 1917년 10월 혁명을 돌이켜보자. 10월 혁명의 승리자들은 페트로그라드의 노동 계급이 일으킨 공산주의 혁명을 표방했다. 그러나 10월 혁명은 다수의 승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혁명의 승리자들은 단순히 노동 계급이라고 포괄하기엔 상당히 의식화되어 있는, 조직된 소수라고 할 수 있었다. 많은 비판자가 이를 두고 10월 혁명을 ‘볼셰비키가 탈취한 혁명’이라고 폄하했다. 그러나 ‘전위’라고 하는 조직된 소수가 혁명을 이끌었다는 것 자체가, 소련이 선도할 20세기의 역사를 예시하는 것이었다.

 

이 전위들은 곧 소련 공산당의 간부가 되어 각종 행정 요직을 이끌었다. 동시에, 혁명 이후에 세워진 교육과 훈련 시스템은 노동자와 농민 출신의 인재들을 신체제로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렇게 전열을 가다듬은 새로운 엘리트층은 ‘스탈린 혁명’이라고 하는 거대한 사회 혁명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 출처 = 클립아트코리아

 

스탈린 혁명이 추구했던 것은 신속한 속도로 소련을 산업화된 대중 사회로 이행시키는 것이었다. 1870년대에 미국에서 시작된 포디즘 혁명이 소련이 따라야 할 모델로 제시되었다. 볼셰비키는 촌락에 흩어진 농민들을 집단농장원과 노동자로 전환하고, 전력, 통신, 교통 체계를 세워 지구 육지 6분의 1의 땅을 하나로 묶고, 그들 모두의 문화생활을 책임질 국가적 단위의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보급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역시 무지막지한 규모의 사회적 희생이 뒤따랐다.

 

그러나 그런 희생은 소련 체제의 본질이었다. 조직된 소수가 이끄는 거대하고 단일한 대중 사회. 그리고 소련의 꿈은 실제로 히틀러의 독일을 무찌르고, 인간을 우주에 보내고, 세계를 감동시키는 영화를 만들면서 세계를 매혹시켰다. 유럽의 오랜 선진국부터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까지, 소련 모델을 분석하고 수용하고자 했던 노력은 오늘날에도 직간접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소련의 꿈은 결국에는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단순히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의 태생적 한계’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련은 20세기 후반에 조직된 소수가 이끄는 대중 사회가 해체될 때, 그 과정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쇠퇴했다. 포디즘에 근거하여 소련과 비슷한 사회를 건설했던 서방 국가들은 세계화와 정보화를 받아들이며 ‘포스트 포디즘’ 사회로 진입한 반면 소련은 계속해서 그들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과거의 방식에 매달리면서 필연적 쇠퇴에 직면했다. 소수의 계획과 영도로 대중을 이끄는 시대는 끝났고, 무한히 파편화된 개인과 그들의 집합인 군중 간의 끝없는 이합집산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비단 러시아인이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지나간 시대에 여전히 향수를 느끼는 것 같다. 평생직장을 다니며 계획에 따라 관리된 삶을 살 수 있던 예측 가능했던 시절, 모든 이들이 하나의 국민 문화를 즐기며 공감대를 나눌 수 있던 시절, 우리는 20세기를 그렇게 추억한다. 그러나 소련의 해체와 그 후 30년의 역사는, 그런 시대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으며, 옛 시대를 붙잡으려 하는 노력은 장기적 쇠퇴로 이어질 뿐이라는 냉혹한 사실만을 보여주었다.

 

평생직장은 사라졌고 국민 문화는 해체되었다. 그렇게 금세기의 혼란이 계속해서 심화되면서, 과거에 대한 향수도 갈수록 커지게 되었다. 가차 없는 시대의 급변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모순된 반응, 소련 말기의 위정자들을 괴롭혔던 질문은 오늘날 서방 선진국으로 돌아와 골치 아픈 질문으로 울려 퍼지고 있다. 그런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사라진 지 3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소련의 역사적 경험, 나아가 20세기 인류의 삶을 계속해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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