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헌 前노동자신문∙노동일보 기자
‘긱 이코노미’란 말은 이제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새로운 시대를 나타내는 표현의 하나가 된지 오래다. 개인의 입장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해서 무조건 공정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실제로는 비정규직 확산과 동전의 양면이고, 주로 노동이 아닌 자본측 필요에 부합하는 현상이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세상을 말하지만 사실 지난 세기의 문제들을 대부분 해결하지 못한 상태다. 비정규직 문제도 그중 하나다. 그나마 문재인 정부 들어 많은 노력과 시도가 있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이런 노력들은 주로 공공부문이 선도하고 있다. 그리고 무기계약직 전환이 유력한 지렛대로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나는 약 10여년 전부터 최근까지 은행권 무기계약직 도입 과정을 현장에서 함께 한 바 있다. 나는 처음에 은행창구의 기간제 직원들이 무기계약으로 전환되면 은행권의 비정규직 이슈는 사실상 마무리될 것으로 생각했다. ‘기한의 정함이 없는’, 그러니까 정년이 보장된 상용직, 사회적 제도적으로 완벽한 정규직 신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사내복지도 거의 동일하게 적용됐다. 직군분리나 임금격차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같은 회사 안에서 별도의 직군은 별도의 신분을 의미했고 그에 따른 지속적인 갈등과 혼란이 일어났다. 법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업무를 구분했지만 본질적인 구분이 불가능했다. 결국 적지 않은 진통 끝에 무기계약 직원들을 기존직군에 통합하고서야 실마리가 풀렸다.
최근 나온 [제로화의 길]은 이런 고민에 관한 국내외 사례와 연구를 집대성하고 있다. 비정규노동센터, 국가인권위, 매일노동뉴스가 함께 펴냈고 연구 집필에는 조돈문, 정흥준, 남우근, 김철 등 최고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이 책이 제시하는 ‘제로화의 길’이 바로 첫 단계 상시업무 비정규직의 무기계약 전환, 그리고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2단계 접근법이다.
첫 단계 무기계약 전환에 이은 두번째 단계에서는 무기계약직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기존 정규직과 동일한 인사관리체제로 통합해 정규직 전환을 완성한다. 공공부문 뿐 아니라 모든 부문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있어 참고하고 적용할만한 사례와 관점들이 잘 제시돼 있다.
한가지 덧붙일 점은 정규직 노동조합의 역할이다. 나는 비정규직 문제의 책임이 사측이 아닌 정규직에 있다는 식의 주장은 단호히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정규직 노조의 역할과 책임을 축소할 생각도 없다. 사측의 입장이 고정돼 있음을 감안하면 정규직 노동조합의 의지는 사실상 핵심변수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무리 비정규직을 배제하려 한들 사측이 정규직 고용안정을 천년만년 보장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이를 입증하는 사례는 날마다 차고 넘친다. 노동자는 노동자끼리 먼저 단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