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은회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원
남과 북은 최근 판문점에서 ‘철도협력 분과회담’과 ‘도로협력 분과회담’을 잇달아 열어 동해선·경의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노후화된 시설을 현대화하기로 합의했다. 공동연구조사단을 구성하고 경의선 북측 구간에 현지 공동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4월27일 판문점에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 이후 군사적 긴장완화 방안·체육 교류·인도적 사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데 이어 경제협력 문제까지 논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노동조합총연맹·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이용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공동주최하고 한국노총중앙연구원이 주관한 ‘평화번영 시대, 남북경협의 의미와 노동조합의 과제’ 토론회가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렸다.
개성공단 사업의 빛과 그림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적대와 대결로 점철된 분단질서를 허물고 공존․공영을 바탕으로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나아가겠다고 선포했다. 그 뒤 역사의 수레바퀴가 빠르게 돌고 있다. 6월12일 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북미관계 정상화 의지를 담은 포괄적 내용의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은 남북의 실질적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남북경협의 대표적 성공 모델로 꼽히는 개성공단 사업의 현재적 의미를 고찰하는 내용으로 시작됐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2월 개성공단 가동이 전면 중단되기 전까지 135개 입주기업에 5만6천여명(북한 노동자 5만5천명)이 근무했다. 연간 생산액은 5억6천만달러 수준이다.
‘개성공단 사례를 통한 남북경협 경험과 시사점’을 발제한 이유진 KDB산업은행 통일사업부 연구위원은 “입주기업 96%가 ‘개성공단 재개시 재입주 의향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며 “과거 인적교류 경험을 통해 북한 노동자들의 숙련도와 생산성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눈 여겨 볼 대목은 ‘무조건 재입주하겠다’고 밝힌 기업(26.7%)보다 ‘정부와 북측의 재개 조건과 상황을 판단한 뒤 재입주하겠다’는 기업(69.3%)이 두 배 이상 많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 때 급작스럽게 이뤄진 공단 가동중단 조치로 막대한 피해를 본 경험이 반영된 수치다. 당시 입주기업들이 신고한 피해금액은 총 9천446억원에 달한다. 이 연구위원은 “입주기업 구제제도 같은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고, 근본적으로는 정치적 영향에 의해 경협이 중단되지 않도록 ‘정경분리’ 원칙을 수립하면서 양자 및 다자간 협력의 틀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70년간 끊긴 ‘민족의 혈맥’ 다시 이으려면
남북경협의 역사는 1988년 노태우 정부가 발표한 ‘7·7 특별선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북교역을 ‘민족 내부의 교역’으로 규정한 해당 선언은 90년대 이후 본격화된 남북교역의 밑바탕이 됐다. 하지만 북핵문제를 중심으로 국제정세가 요동치면서 남북경협도 부침을 거듭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강화되고, 2010년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침몰사건을 계기로 남북교역을 전면 중단하는 내용의 5·24 조치를 발표하는 데 이르렀다.
‘판문점선언 시대 남북경협 추진 여건과 SOC사업 추진 전망’을 발제한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ICNK 센터장은 최근 ‘북한의 변화’에 주목했다. 임 센터장은 “여러 제약조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가 새로운 경제 번영의 기회를 맞은 건 분명하다”며 “북한이 구조적·본질적으로 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2012년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뒤 북한의 경제구조는 빠른 속도로 변해왔다. 이듬해인 2013년부터 22개 경제개발구를 지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 인근에만 5개의 경제개발구를 지정하는 등 외부 자본유치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또 판문점회담 일주일 전인 4월20일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열어 기존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폐기하고, ‘경제건설 총력노선’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임 센터장은 “새로운 노선은 ‘체제를 보장하면 인민생활 향상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며 “향후 남북경협 진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리 정부의 남북경협 추진 의지도 확고하다. 그 중에서도 철도·도로 연결 사업은 문재인 정부가 구상하는 ‘한반도 신경제구상’의 토대를 이룬다. 서해안과 동해안․비무장지대(DMZ) 지역을 H자 형태로 동시 개발하는 남북 통합개발 전략으로, 남북 간 교통망 연결이 전제돼야 한다.
임 센터장은 “우리 정부는 한반도 신경제구상 틀 안에서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재배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살아있는 상황에서 전격적인 SOC사업 착수는 어렵겠지만, 제재 수위가 낮아질 때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인프라 개발에 필요한 자금조달과 리스크 분담방안을 마련하고, 경협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정부차원, 민관차원, 민간 간 거버넌스를 정비하는 일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표1] 대북 SOC사업 주요 분야(예시) 자료 : 임을출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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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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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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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평양 고속도로, 개성-신의주 철도 개·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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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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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나선·원산 항만 개·보수, 물류단지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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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특구 및
배후도시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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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해주·신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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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프라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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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갈마 관광지구, 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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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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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에너지 자체생산 열병합 설비 건설, 동북아 슈퍼그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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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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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인프라 현대화, 남북한 통신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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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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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녹화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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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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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관련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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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수도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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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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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하구 개발, 수자원 공동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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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역할 중요” … “노동조합도 적극적 지원자 돼야”
이날 토론회에는 대북 SOC사업 참여 주체인 공기업 관계자들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김봉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북한센터장은 초기 투자과정에서 공공부문의 역할을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대북제재가 완화되더라도, 국제금융기구들의 자금지원요건이 워낙 까다로워 북한이 재원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민간투자자 역시 리스크가 크고 수익성 확보가 곤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중국 등 주변국이 북한의 인프라시장을 선점하는 것에 대비하고 남북이 중심이 되는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실현하려면 공공부문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력노조 위어량 사무처장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전력망 연계방안에 주목했다. 위 사무처장은 “이미 북미·유럽·북아프리카·중동 지역에서는 국가 간 전력연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한국-중국-일본-러시아의 전력망을 잇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이 허황한 주장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전력·가스·철도 분야 공동연구를 진행하기로 뜻을 모은 바 있다.
위 사무처장은 “러시아의 저렴한 전기를 수입해 북한과 남한이 공급받으려면, 북한의 노후화된 송전계통망을 개·보수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때 남한의 공공기관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한국노총을 대표해 토론자로 나선 권재석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은 남북경협 활성화를 위한 노동조합의 역할을 강조했다. 권 본부장은 “북측 전역에 각종 기반시설을 확충하려면 남측 공기업 노동자를 대변하는 노동조합과 정부․기업(공기업․사기업) 간 상호 소통과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남북 노동자 간 만남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그는 “한국노총 산하 공기업과 북측 조선직업총동맹 산하 공기업의 만남을 주선할 생각”이라며 “남북 공기업 노동자들이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