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가 노동조합 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금지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81조 제4호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2012헌바90)이 나왔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A산별노조가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7(다수) 대 2(소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했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헌법불합치는 위헌 결정으로 해당 법률을 바로 무효화하면 법의 공백이 생기거나 사회적 혼란이 우려될 때 국회에 시한을 주고 법 개정을 유도하는 것이다. 헌재는 이 조항을 2019년 12월31일까지 국회가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무리 늦어도 내후년부터는 사용자의 노조운영비 원조행위가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 유형에서 제외된다는 뜻이다.
사건 개요와 헌법재판소 결정 요지
A산별노조는 2010년 6월 7개 회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해당 단협에는 “회사는 노조사무실과 집기·비품을 제공하며 노조사무실 관리유지비(전기료·수도료·냉난방비와·영선비) 기타 일체를 부담한다”는 내용과 “회사는 노조에 차량(주유비·각종 세금·수리비용 포함)을 지급한다” 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자 관할 고용노동지청은 이 같은 시설·편의제공 조항이 노조법상 노조운영비 원조 금지조항(노조법 제81조 제4호)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2010년 10월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에 노조는 법원에 이 사건 시정명령을 취소해 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노조는 소송이 진행되던 중 문제의 노조법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정신청도 냈다. 하지만 법원이 이를 각하했다. 법원이 노조의 신청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결국 노조는 2012년 3월 헌법재판소에 이 사건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이 시점으로부터 6년여가 지난 최근에야 노조법 제81조 제4호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놓았다.
헌재는 재판관 7(다수) 대 2(소수) 의견으로 노조운영비 원조 금지조항이 이 사건 청구인인 A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침해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다수의견은 먼저 “노조운영비 원조 금지조항은 사용자가 노조의 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를 통해 노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노조의 자주성을 확보하고 궁극적으로 실질적 행사를 보 장하기 위한 것으로 그 입법목적이 정당하다”고 봤다.
그런데 노조운영비 원조 금지조항은 단서에서 정한 두 가지 예외, 즉 ‘근로자의 후생자금 또는 경제상의 불행 기타 재액의 방지와 구제 등을 위한 기금의 기부와 최소한의 규모의 노동조합사무소의 제공’을 제외한 모든 운영비 원조행위를 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다수의견은 “(해당 조항이) 노조의 자주성을 저해할 위험이 없는 경우까지 금지하고 있으므로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합한 수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수의견은 또 “노조가 노동3권을 실현하는 활동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운영비 원조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노조의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협력적 노사자치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운영비 원조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노사의 자율적 단체교섭에 맡길 사항까지 국가가 지나치게 개입해 노조의 자주적인 활동성과를 감소시키는 것이 불과하다” 고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다수의견은 “노조의 자주성을 저해하거나 현저한 위험을 야기하지 않는 노조 운영비 원조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노사 간 힘의 균형을 확보해 줌으로써 집단적 노사자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노동3권의 취지에 반한다”고 밝혔다.
노조 운영비 원조행위에 대한 대법원 판례들
그동안 학계에서는 노조법이 금지하는 사용자 원조행위와 노조 자주성 사이 상관관계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대립해 왔다. ‘형식설’과 ‘실질설’이다.
먼저 ‘형식설’은 사용자의 원조행위 그 자체가 노조의 자주성을 저해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때문에 사용자의 원조행위가 노조의 자주성을 저해하는 결과에 이르 렀는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일률적으로 부당노동행위로서 금지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실질설’은 형식적으로 사용자의 원조행위가 있더라도 이로 인해 노조의 자주성이 저해되지 않거나 그럴 우려가 현저하지 않으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2010년 1월 노조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대부분 판례들은 실질설의 태도를 취했다. 특히 당시 판결들은 사용자가 노조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노조간부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것도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B버스노조 사건에 대한 1991년 대법원 판결(90누6392)이 대표적이다. 당시 대법원은 “노조전임자나 노조간부가 사용자로부터 급여를 지급받는 것이 형식적으로 보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것 같지만, 이는 형식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고 그 급여 지급으로 인해 노조가 자주성을 잃을 위험성이 현저하게 없는 한 부당노동행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급여 지급이 노조의 적극적 요구 내지는 투쟁 결과로 얻어진 것이라면 그 급여 지급으로 인해 노조의 자주성이 저해될 위험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으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그런데 2010년 노조법이 개정된 뒤 판결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노조법 개정으로 그해 7월부터 사용자의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을 금지한 제24조 제2항, 전임자 급여 지원이나 노조운영비 원조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한 제81 조 제4호가 시행됐기 때문이다. 개정법이 시행되자 행정관청들은 노조운영비 원조 내용이 포함된 단체협약을 상대로 시정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하급심 판결들은 형식설의 입장에서 정부 시정명령이 정당하다고 봤다.
C건설노조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소송은 사용자가 노조사무실과 책상·의자·전기시설 등 비품 외에 매월 상당 금액의 ‘사무보조비’를 지원한 것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형식설에 입각해 “주기적·고정적으로 이뤄진 운영비 원조행위는 노조전임자 급여 지원행위와 마찬가지로 노조의 자주성을 잃게 할 위험성을 지닌 것으로 노조법이 금지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2012두12457).
D자동차노조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 소송은 회사가 노조 편의를 위해 자동차를 무상으로 제공한 행위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다툼이었다. 대법원은 “사용자의 자동차 무상 제공이 노조운영비를 원조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므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고, 그 행위가 단협에 의한 것이든 민법상 사용대차에 의한 것이든 무효이므로 노조는 자동차를 반환해야 한다”고 판결했다(2013다72046).
이 밖에도 대법원이 내놓은 다수 판결(2013두3160, 2013두11789, 2014두11137 등)이 형식설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이들 판례는 법조계 전문가들의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노사 교섭의 결과물인 단협에 의해 사용자가 부담하던 의무 를 법률의 이름으로 면제해 줌으로써 노조활동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수십 년 이상 지속돼 노사관행으로 정착된 편의제공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파기한 행위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노사교섭에 끼칠 영향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은 물론이고 노조운영비 원조행위까지 부당노동행위로 본 대법원 판결과 달리 이번 헌재 결정은 실질설의 입장에 가까워 보인다. 형식적으로 사용자의 원조행위가 있더라도 이로 인해 노조의 자주성이 저해되지 않거나 그럴 우려가 현저하지 않으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헌재는 이번 결정을 내리기 위해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실질적 역학관계나 노조의 재정적 현실 등을 두루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언론에 배포한 자료를 통해 “(노조사무실·차량·기타 관리유비지 정도의) 운영비 원조행위가 노조의 적극적 요구에 의해 이뤄진 경우나 노조가 사용자의 노무관리업무를 대행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이뤄진 경우, 노조의 자주성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기업별노조는 필요시설을 기업 내에 마련할 수밖에 없으므로 사용자의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 이 있고, 노조 재정자립도가 높지 않은 우리나라 현실에 비춰 볼 때 소규모 사업장 노조는 경제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자로부터 일정 정도의 지원을 받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헌재의 이번 결정에 따라 현행 노조법상 노조운영비 원조 금지조항은 2019년 12월31일 전까지 개정돼야 한다. 헌재 결정의 취지를 고려할 때 ‘노조의 자주성을 저해하지 않거나, 노조의 자주성을 저해할 현저한 위험을 야기하지 않는’ 운영비 원조행위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로 보지 않는 내용으로 개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또, 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이라도, 현행 노조 운영비 원조 금지조항에 대한 법원 판결이 종래보다 유연한 방향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산업별 또는 기업 단위 노사교섭에서 노조운영비 확대를 요구하는 노조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노조로서는 이번 기회를 적극 활용해 노조활동의 안정적 기반을 다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주의할 사항이 있다. 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현행 노조운영비 원조 금지조항의 효력이 유지되므로 자칫 부당노동행위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신경 쓸 필요가 있다.
‘노조전임자 급여 지원행위’와의 관계는?
한편 헌재의 이번 결정은 노조법 제81조 제4호 중 ‘노조 운영비 원조행위’ 부분에 국한된다. 같은 호의 ‘노조전임자에게 급여를 지원하는 행위’는 판단 대상이 아니다. 헌재는 이미 지난 2014년 노조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한 바 있다(2010헌마606).
이번에도 헌재는 ①노조법은 전임자의 급여를 사용자가 전적으로 부담하는 관행을 시정하기 위해 전임자급여 지원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제하는 것 외에 전임자가 사용자로부터 급여를 지원받는 것 자체를 금지한 것이고 ②이로 인해 노조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동자가 근로시간면제 한도 내에서 유급으로 일정한 노조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시간면제 제도를 함께 도입한 점을 고려해 ③노조운영비 원조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금지하는 것이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전임자급여 지원행위와 동일하게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요컨대 노조운영비 원조행위와 노조전임자 급여 지원행위는 이를 금지한 취지와 규정의 내용, 예외의 인정 범위 등이 달라 양자를 동일하게 볼 수 없다는 것이 헌재의 입장이다.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이 노조전임자 급여 지원행위 부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하지만 헌재의 이 같은 입장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정은 노조전임자 급여 지원을 둘러싼 논쟁에 불을 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노조법 재개정을 위한 노동조합의 과제
한국노총은 성명을 통해 “전임자급여는 노사가 자율교섭을 통해 결정할 사안임에도 국가가 (법률로) 지나치게 개입해 노조의 자주적 활동성과를 저해하고 있다”며 “전임자급여 지급금지 조항 역시 위헌으로 판단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현행 근로시간면제 제도를 폐기해 전임자급여 문제를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노조법 개정을 전제로 한 주장이다.
노동계의 이 같은 주장은 2010년 노조법 개정에 따른 부작용을 근거로 하고 있다. 13년의 유예 끝에 2010년 이뤄진 노조법 개정은 오랜 갈등의 종지부가 아니라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일부 대공장노조 파업을 빌미로 전체 노조에 교섭창구를 단일화하고 전임자임금 지급을 금지해 노조를 무력화했다.
노조의 자주성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의 노조활동을 확대하겠다던 정부 주장은 공허한 울림에 그쳤다. 정부는 정작 엉뚱한 데 힘을 쏟았다. 대대적인 실태조사를 토대로 단협 시정명령을 남발하기 시작했다. 노조운영비 지원 조항이 포함된 단협이 타깃이었다.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A산별노조 사건도 정부의 단협 시정명령이 발단이 됐다.
법원은 정부 시정명령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판결을 내놓으며 정부정책에 호응했다. 이는 노사관계 힘의 불균형을 더욱 악화시켰다. 중소·영세사업장에서 노조전임자 수가 대폭 줄어들었다.이제 막 싹을 틔우던 산별노조 운동도 직격탄을 맞았다. 노조활동과 재정운영에 있어 사업장 단위 폐쇄성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방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집단적 노사관계를 정상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단기적 방안으로는 고용노동부장관이 고시하는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손보는 방식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중소·영세사업장이나 전국 단위 사업장의 노조활동을 보완해 주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사회적 접근이 필요하다. 노조 혼자 힘으로 노조법을 바꾸거나 노사 간 역학관계를 바로잡기는 불가능하다. 노조에 우호적인 세력을 결집시키는 일이 먼저다. 노동운동이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체 국민의 권익과 조직노동의 이해를 조화시킬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문제나 ‘직장 갑질’ 문제처럼 양자의 이해가 맞물리는 지점을 찾아내고, 설득력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사회적 대화’는 이를 위한 전술적 공간일 때 활용 가치가 있다.<끝>
❙ 참고 문헌
- 강희철 외, ‘노동조합 운영비 원조를 부당노동행위로 금지한 노조법 제81조 제4호에 대한 헌법불합치 선고’, Legal Update, 법무법인 율촌, 2018.06
- 권오성, ‘조합사무실 운영비 지원 관행의 일방적 파기는 정당한가?’, 월간 노동리뷰, 한국노동연구원, 2014.04
- 김도형, ‘노조전임자 급여 지원 및 노동조합 운영비 원조 부당노동행위 성립에 관한 대법원 판례’, 법무법인 원, 2016.05
- 노광표, ‘근로시간면제제도 시행 후 노사관계 변화와 쟁점’, 월간 노동리뷰, 한국노동연구원, 2011년 12월호
- 대법 90누6392, 대법 2012두12457, 대법 2013다72046, 대법 2013두3160, 대법 2013두11789, 대법 2014두11137, 헌재 2010헌마606
- 도재형, ‘노조 운영비 원조행위의 부당노동행위 판단 기준’, 월간 노동리뷰, 한국노동연구원, 2016.04
- 한국노총, ‘노조 운영비 원조행위 부당노동행위 헌법불합치 판결에 대한 한국노총 입장’ 성명, 2018.05.31.
- 헌법재판소, 2012헌바90 결정 관련 설명자료, 2018.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