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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감정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역할

임지영(서울서부근로자건강센터 상담심리사)

등록일 2020년10월30일 11시19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심리상담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내담자)이 전문적 훈련을 받은 사람(상담자)과의 관계에서, 사고, 행동, 감정 측면의 인간적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다(이장호, 상담심리학 입문, 1982). 내담자-상담자의 치료적 관계를 통해 성장을 목표로 하는 것이 심리상담인 것이다. 필자는 상담자로서 내담자를 조력하며 변화와 성장에 대한 용기, 도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배우며 보람을 느낀다. 다만, 이 경험은 심리·물리적으로 안전한 심리상담실에서 적어도 1시간, 약 10회기의 지속상담을 할 때, 호소문제가 내담자 자신이 통제 불가능한 직업·환경적 요인이기보다 내담자가 통제 가능한 심리적 요인과 연관성이 높을 때 가능하다.

 


 

과연 외부의 ‘고객’이 스트레스 원인일까

근로자건강센터는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지원을 받아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또는 특수고용직과 같은 보건관리에 취약한 노동자의 건강관리를 돕는 기관으로 전국에 23개소가 있으며, 서울서부 근로자건강센터는 2015년 6월 강서구에 개소했다. 현재까지 5년 반 동안 근무하며 부딪혔던 난관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충분한 시간과 안전한 공간이 확보되지 않은 현장에서 감정노동자를 지원한다는 점이었다. 업무 중에 노동자들이 상담심리사를 만나는데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제한적이었고, 사업장에서 안내 받은 장소는 개방되었거나, 사장실 같은 곳이어서 불편했다. 시간과 공간을 적절히 제공받은 경우조차, 심리지원에 대해 노동자들은 “형식적”이라며, 내담자-상담자의 치료적 관계형성이 어려웠다.

 

필자는 노동자들이 왜 사업장에서 제공하는 심리지원을 형식적이라 하는지 주목했다. 요청에 따라 1회 행사로 실시하는 것도 문제지만, ‘감정노동자에게 정말 필요한 무언가가 없어서는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필자는 내담자 내면과 상담실 밖의 작업 현장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정식 심리상담은 아니지만, 감정노동자에게 “업무 스트레스 원인은 무엇이고, 스트레스가 완화되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질문하며 자료를 조사했다.

대개 사업주는 감정노동자의 스트레스 요인을 오로지 외부의 “고객” 때문이라 여기고 근로자건강센터에 심리지원을 요청한다. 하지만 감정노동자는, “악성 고객은 일하는 중에 종종 만나게 되지만, 지나가버리는 일”이라고 인식하며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스트레스 대해 효과적인 심리적 대처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에서 얻는 긍정적 보상과 보람을 생각, 취미생활과 운동, 가족 또는 지인과 즐거운 시간 보내기” 등으로 스트레스 해소를 잘 하고 있었다. 오히려 감정노동자를 힘들게 하는 사업장 내부에 있는 것은 다른 여러 가지들이었다.

 

한 콜센터의 면담결과, “고객 불만을 키우는 업무 시스템(부서 간 고객에게 상이한 정보제공, ARS 노후화로 연결 중단 등), 쉼 없는 연속된 감정노동, 악성 고객 응대 후 심리적 안정을 취할 시간과 공간의 부재” 등이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24시간 운영되는 한 서비스업체의 조사에서는, “불규칙한 스케줄 근무로 인해 수면부족과 피로가 누적되어 업무집중은 물론, 친절한 고객응대가 불가능 해지는 것”이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버스회사에서도 대부분 승객으로 인한 감정노동을 스트레스로 토로했지만 모든 문제는 배차간격과 관련 있었다. 일부 승객의 승하차 시간을 지연시키는 행동(핸드폰 보다가 승하차를 놓치고 뒤늦게 요구, 요금결제 수단을 준비하지 않음, 일행과 길게 인사 등), 교통체증, 동료기사의 배차간격 미준수가 운행 중 몇 번만 반복되면 배차간격이 길어져 승객의 항의를 받는다는 것이다.

 

하는 일도, 소속도 다르지만 공통된 것은, 심리적 스트레스에는 스스로 대처 가능하지만, 업무 시스템이나 환경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개인이 대처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작업환경을 개선하여 스트레스를 완화하려는 노력이 없는 사업장에서 행사처럼 심리지원을 한다고 하니, 당연히 노동자들은 “형식적”이라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파악한 스트레스 요인, 감정노동 개선 권고사항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하여 사업주에게 전달했다. 이 보고서는 노동자가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현장에서 시간과 장소가 충분할 땐, 본연의 상담심리사로서 스트레스 완화법을 실습하는 집단 심리상담을 실시했다.

 

근로자건강센터의 권고를 수용한 사업장과 그렇지 않은 사업장의 차이는 컸다. 고객 불만을 키우는 부정확한 의사소통 구조 개선, 노후 장비 교체, 휴게시간과 공간 마련을 이행한 콜센터에서는 근로자건강센터, 사업주, 노동자 모두 감정노동 관리에 신뢰하는 협업관계가 되었고,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며, 감정노동을 개선할 수 있었다. 집단상담 참여도 활발해 노동자들은 스트레스 관리법 뿐 아니라, 고객 응대의 실질적 노하우도 공유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배차간격이 조정된 버스회사의 노동자들은 휴식시간이 보장되어, 다음 운행을 보다 더 집중해 안전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24시간 서비스업체에는 근무환경 적응을 높이고, 일-생활-자기계발이 병행될 수 있도록 근무 스케쥴 조정, 직무교육과 건강증진 프로그램(수면장애 등)을 권고했지만 이행되지 않았고, 집단상담에 참여하는 노동자들도 점점 줄어들게 되며 지원을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감정노동자의 노동현장 전체를 봐야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볼 때, 감정노동자 노동조합에서는, “감정노동자의 가장 큰 고충은 고객”이라는 것에서 확장해 노동현장 전체를 볼 필요가 있다. 감정노동 개선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사측에 요구해야 감정노동자 권익과 복지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각 분야 업무의 전문가인 현장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감정노동자가 필요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직업·환경적 요인은 노동조합이 개입하여 사업장 차원에서 개선하도록 하고, 노동자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심리적 요인은 전문가인 상담심리사에게 역할을 나누는 것도 필요하다. 감정노동자 조합원이 스스로 동료 상담자가 되는 것도 필요하다.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이 심폐소생술을 배워 위급한 환자를 돕는 것처럼, 심리적 위기에 놓인 사람을 돕는 심리적 응급처치(mental or psychological health first aid) 기술이 있고, 이 훈련을 받은 사람을 게이트키퍼(gatekeeper)라고 한다. 서울서부 근로자건강센터에서는 심리적 응급처치 교육을 진행하여 “감정노동자인 나 자신은 물론, 힘들어하는 동료를 돕는데 유익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업무 현장에서 위기를 겪는 노동자가 있을 때, 가장 가까이 있는 조합원이 동료에게 도움을 주고 심리상담 전문가에게 연결해준다면, 심리적 건강 회복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노동현장을 살피고, 보고서를 작성해 내담자가 아닌 사업주를 설득하면서, 상담심리사 본연의 전문영역에서 벗어나게 되는 건 아닐까 염려되었지만, 필자가 만난 내담자들이 성장을 위해 도전했던 것처럼, 필자도 새로운 역할에 도전했기 때문에 근로자건강센터 직업건강 전문가로서, 그리고 사업장도, 감정노동자도 변화와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노동조합도 사업장 전체를 보며 감정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을 찾는 안목과 심리적 응급처치 기술을 배워본다면 감정노동자 권익과 복지향상에 크게 이바지 할 있을 것이다. 

 

임지영(서울 서부근로자건강센터 상담심리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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