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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시간과 길의 시간 : 라스트미션 The Mule

손시내(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등록일 2020년10월21일 16시57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1930년생이니 벌써 아흔, 놀랄만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여전히 현역으로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영화감독이다. 그는 60년대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의 거친 서부 사나이와 70~80년대 <더티 해리> 시리즈의 폭력 경찰을 연기하며 당대 유명한 스타 배우의 반열에 올랐고, 1971년에 <어둠 속의 벨이 울릴 때>라는 영화로 일찌감치 감독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직접 연출한 장편영화는 지금껏 39편, 감독과 배우를 겸한 작품은 23편에 달한다. 최근에 만든 두 영화 <15시 17분 파리행 열차>(2018)와 <리차드 쥬얼>(2019)은 국내에서 정식으로 극장 개봉하진 못했지만 IPTV를 통해 유통되고 있다.

 

그의 연출작은 국내외에서 이미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배우로서 오래 몸담아온 장르인 서부극을 자기 방식으로 변주한 <용서받지 못한 자>(1992), 메릴 스트립과 함께 한 멜로 드라마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를 비롯,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미스틱 리버>(2003),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연작 <아버지의 깃발>(2006)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2006), 실화를 다룬 <체인질링>(2008),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2016) 등 수많은 영화를 통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동시대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영화들은 극적 재미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인과 세계를 마주하는 어려움과 곤란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그때 갖춰야 할 태도와 예의를 깊이 고민하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라스트 미션>(2018)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37번째 연출작이다. 10년 전에 만들어진 <그랜 토리노>(2008)에 이어 오랜만에 직접 주연을 맡았다. 그렇다 보니 노쇠한 그의 육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허리와 어깨가 굽고 얼굴은 한없이 주름진 이 주인공 노인의 이름은 얼 스톤, 영화는 마약밀매 조직의 운반책이 된 그가 도로를 오가며 여러 차례 수행하는 ‘미션’들을 따라간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80대 노인 얼은 평생 백합 농장을 운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너무 일에만 몰두한 나머지 자신의 가족에게는 언제나 소홀했다. 아내와 딸을 내버려 두고 늘 전국을 누비며 꽃만을 바라보며 살았고, 대회에 참가하느라 딸의 결혼식에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농장도 문을 닫으면서 얼은 갈 곳 없는 신세가 된다. 낡은 트럭에 짐을 몽땅 싣고 나타난 얼을 반길 리 없는 아내와 딸은 그를 차갑게 대한다. 그러던 중 그는 우연히 물건을 안전하게 운반하고 큰돈을 받는 일을 맡게 된다. 그에게 이 일은 어쩌면 가장 적합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누군가가 말하듯, 미국에서 단순한 차량 검문으로 목숨을 잃을 확률은 꽤 높은 편인데, 얼은 여러모로 검문을 피할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백인인 데다 노인이며, 농장을 운영하느라 지금껏 사고 한번 없이 장거리 운전을 해왔기에 얼은 별 탈 없이 운반을 완수한다. 그 돈으로 손녀딸의 결혼식 피로연 비용을 대며 다시 가족의 자리에 초대받기까지 한다.

 


 

그 이후로도 그는 계속 운반한다. 그렇게 받은 돈으로 농장도 되찾고, 참전군인들이 머무는 재향군인회의 집도 지킨다. 그즈음 얼은 자신이 운반하는 물건이 마약임을 알게 되고, 마약 단속국에서는 많은 양의 마약이 주(州)를 넘나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영화의 많은 시간은 마약을 운반하는 얼의 여러 경로를 비추는 데 할애된다. 백인이자 남성 노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체 능청스럽고 친화력이 좋은 얼은 다양한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넘기며 10차례가 넘는 마약 운반을 수행하게 된다. 마약 단속국의 베이츠 요원(브래들리 쿠퍼)은 얼과 마주하고 대화까지 하지만, 그가 운반책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이처럼 여러 차례 지속되는 운반의 시간이 영화를 진행시키며 적당한 긴장감을 부여한다면, 얼의 가족 이야기는 영화의 감정적인 축을 담당한다. 어느 카페테리아에서 얼과 베이츠가 나누는 대화도 다름 아닌 가족에 관한 것이다. 그날이 결혼기념일임을 알아챈 베이츠가 낭패의 표정을 짓자, 얼은 늘 가족보다 일을 우선시했던 자신의 전철을 밟지 말라며 부드러운 충고를 건넨다. 너무 오랜 세월이 흐르고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얼은 가족에게로 돌아가고자 하며, 그러기 위해 계속해서 마약을 운반하고 돈을 번다. 영화 후반부, 그는 죽어가는 아내의 곁을 지키기 위해 마약을 트럭에 실은 채로 경로를 이탈한다. 멕시코 갱들이 그를 내내 감시하고 있었으니, 목숨을 건 이탈인 셈이다. 그렇게 가족에게 잠시 돌아간 그는 이미 지나간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니 어느 정도는 <라스트 미션>을 나이 든 남자의 후회와 속죄의 서사로 읽을 만하다. 하지만 영화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몇 가지 요소들을 살펴보며 다음과 같은 점들도 함께 생각해본다면 더욱 풍부한 관람이 될 것이다.

 

영화 전반부, 손녀의 결혼식 피로연 자리에 나타난 얼은 자신이 꽃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단 하루 꽃을 피우고 져버리는 모습이 독특하기에, 시간과 정성을 들일만 하다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장면일 수 있지만,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시간성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한 번쯤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영화에서 얼이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도 다름 아닌 도로 위이다. 수많은 영화가 사랑해온 공간인 길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경로이지 집을 짓고 삶을 일구며 살 수 있는 땅은 아니다. 얼은 도로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친다. 오토바이를 타는 레즈비언 무리부터, 얼 자신이 여전히 ‘니그로’라고 부르는 흑인들과 다른 유색인종들까지. 그들에게 모두 말을 걸긴 하지만, 결국 얼에게 그들은 그저 마주치고 떠나가는 타인들일 뿐이다. 어쨌거나 얼을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은 가족이나 집이 아니라 꽃과 길이다. 세속의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얼이 몰두하고 욕망하는 것은 그 틈새에 존재하는 ‘찰나의 시간’이다.

 

그러나 그 또한 육체를 지닌 인간이기에, 몸은 점차 노쇠하고 언젠가 죽음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얼이라는 인물은, 가족과 집이 있는 세속의 시간이 꽃과 길로 대변되는 찰나의 시간과 충돌하고 긴장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이 충돌과 긴장은 실은 끝까지 해소되지 않는다. 얼이 아내의 임종을 지키고, 마약 단속국에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지자 참회의 표정을 지으며 순순히 모든 죄를 인정하는데도 그러한가? 그렇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으로부터 격리된다. 동시에 영화는 그가 되찾았다고 생각한 가족과의 시간이 얼룩진 돈으로써만 가능한 것임을 드러낸다. 그가 욕망해왔던 찰나의 시간은 가족의 세계 안에 안전하게 통합되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그는 교도소 안에서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꽃을 가꾸고 있다. 마치 시간의 흐름을 망각한 듯한 얼굴이다. 그는 진정 시대착오적인 인물이다. <라스트 미션>은 한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 미국의 얼굴과 풍경들을 보여주면서, 시간의 속성까지 두루 다루는 간단하고도 복잡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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