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아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 국장
1월 15일, <2020 경제대개혁·민생살리기 대담회>가 전태일기념관에서 개최되었다.
대담회는 1부 ‘재벌개혁’, 2부 ‘양극화 해소’, 3부 ‘경제민주화와 민생살리기’를 주제로, <경제대개혁, 양극화해소를 위한 99% 상생연대>(이하 99%연대)가 주최하였다. 이는 2020년 4.15총선 시기 99%연대가 발표할 정책요구안을 수립하기 위해 마련되었으며, 따라서 19년 경제민주화 및 민생에 대한 정부 정책을 평가하고 향후 개선 방안을 각 영역별로 제출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99%연대는 한국노총과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이하 한상총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 한국YMCA전국연맹(이하 YMCA), 참여연대가 함께 결성한 상설 연대체이다.
0.3%의 대기업 자산이 68.8%인 나라
대담회에 참여한 모든 학계, 법조계, 단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한국 사회의 양극화 문제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만큼 심각한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결국 재벌개혁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재벌개혁의 핵심은 국가 권력이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을 최대한 억제하고, 중소기업 활성화로 기본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선 한국 사회 대기업 및 중소기업의 현황을 알아보자.
2018년 기준 대기업은 전체의 0.3%이며, 중소기업은 99.1%에 육박한다. 그러나 매출액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비해 오히려 10% 가량 높으며, 영업이익은 중소기업에 비해 대기업이 무려 3배 가까이 높다. 자산 역시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3배를 넘어섰다.
또다른 통계가 있다. 바로 5대 재벌 보유 토지자산 장부가액 변화이다. 1995년에서 2018년까지 약 23년 간 현대자동차의 자산은 22.5% 증가했으며, 롯데는 16조, 삼성은 10조, SK는 8조, LG는 3조 증가하여, 이들 토지자산 장부가 증가총액은 무려 60조 원에 달한다.
결국 두 개의 통계에서 나타나는 결과는 한국 경제가 얼마나 대기업으로 집중되어 있는가의 문제이다. 기업수와 영업이익, 자산에서 나타나는 집중도도 높거니와, 부동산에서 나타나는 재벌 대기업의 편중도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이러한 재벌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 현상은 중소기업 및 자영업의 자생력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고 있고, 이는 결국 일자리 문제의 핵심 원인이 되며, 결과적으로 사회 양극화를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개발시기의 한국은 효율적인 경제성장과 수출경쟁력 강화를 위해 재벌대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국가정책을 펴왔다. 이는 소위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매우 빠른 경제성장을 가져온 반면,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 및 양극화를 낳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문제는 개발시기가 지난 오늘이다. 이미 97년 IMF를 거치며, 노총은 물론 한국사회의 다수는 재벌대기업 중심의 국가정책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제출했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지난 오늘도, 이러한 국가정책은 전혀 변화의 조짐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이로써 재벌대기업들은 계열사 부당지원과 복잡한 순환출자를 통해 문어발식으로 계열사를 확장했으며, 자동차·조선·전자·반도체·영화·통신 등 주요 산업마다 2~4개의 재벌 대기업들이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하청 협력업체’로 수직계열화되어 전속거래 계약이 일반화되고 납품단가 인하, 기술탈취 등 불공정행위가 일상화되었다. 그 결과 2015년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대기업 노동자의 58% 수준으로 떨어지고, 일을 해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빈곤층이 600만에 이르고 있다.
일을 해도 빈곤한 600만 명의 한국인
특히 우리는 노동빈곤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동빈곤층은 정규직, 비정규직에 상관없이 풀타임으로 일을 해도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개인이나 가족을 말한다. 노동조건(임금 및 후생복리 등)의 차별과 고용불안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물론 저임금과 기업복지가 열악한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상용직노동자 및 비공식 노동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들도 노동빈곤층에 속한다.
이들의 핵심적인 문제는 과거 개발시기의 소위 ‘희망의 빈곤’과 달리 상대적 박탈감과 가난이 대물림되는 ‘절망의 빈곤’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광풍은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가치인 ‘노동’을 간과했고,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상시적인 구조조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는 급속히 늘어 노동빈곤이 확대되었다. 노동도 상품이니 시장에서 싼 값에 언제든지 구입이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노동가치의 저가경쟁’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 노동빈곤층이 확대된 것이다.
이를 위한 제1과제가 바로 재벌개혁이다.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 및 재벌의 사익 편취를 최대한 막아내며, 보다 공정한 경제구조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노동빈곤층을 비롯한 주요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열쇠다. 이를 위해 재벌대기업의 순환출자 문제 해결, 지주회사 체계 개혁, 금산분리 등의 정부 정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또한 소위 ‘일감몰아주기’ 근절을 위한 대대적인 노력 역시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로 사용되는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근절을 위해 ① 간접지배 계열사 부당지원행위 규율 ② 입증책임의 전환 내지 완화 ③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에 대한 손해배상 활성화와 이사회 독립성 강화 ④ 주주대표소송과 연기금의 역할 강화 등이 시급히 필요하다.
재벌대기업이 아닌, 노동자가 행복한 나라
여전히 대기업과 그에 편승한 언론은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존재는 바로 노동자요, 국민이다. 노동자의 행복을 위한 나라, 국민의 행복을 위한 나라야말로, 21세기 정상적인 국가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 정부 정책은 여전히 비정상적이다. 여전히 기업하기 좋은 나라, 기업투자의 활성화가 경제를 살린다는 말만 되뇌고 있다.
우리는 소수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반대한다. 적어도 풀타임으로 일하는 노동자가 빈곤에 시달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수가 600만을 헤아린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이제 99%연대는 이번 대담회를 시작으로, 경제민주화와 양극화해소를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것이다. 이를 위해 원하청불공정거래를 개선하는 문제에 집중하며, 노동빈곤층을 해소하기 위한 사업에 앞장설 것이다. <2020 경제대개혁·민생살리기>를 위한 실천에 현장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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