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필민 칼럼리스트
글을 쓰고 나서는 꼭 소리 내어 읽으며 고쳐야 한다. 노래를 부르듯 박자가 맞아야 문장이 제자리를 찾기 때문이다. 눈으로 읽을 때는 잘못된 문장이 없는데, 뭔가 어색하고 쏙쏙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우리말 문장이 제대로 장단을 타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글은 우리말로 써야 엇박자가 나지 않는다.
잘못된 문장이 없는데 엇박자가 나는 까닭은 일본말투, 중국말투, 서양말투 때문이다. 중국글자는 중국말로 할 때 그 문자의 우수성이 나타난다. 중국글자를 우리글자로 옮겨 읽으면 우리글 고유의 장단이 사라진다.
단어 끝에 ‘~적的, ~화化, ~하下’를 붙이는 때가 많다. 오랜 시절 써오니 이미 우리말처럼 여겨지는데, 우리말투는 아니나 문장이 아니라 중국말투다.
‘형식적으로는 추상적이나 내용적으로는 표현주의적인 화가의 작품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문장에 ‘형식적’, ‘추상적’, ‘내용적’, ‘표현주의적’, ‘단적’처럼 ‘~적’이 네 번 나왔다. 눈으로만 읽으면 여기서 ‘~적’을 빼면 문장이 안 될 성싶다. 아니다. 모조리 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눈에 쏙 들어오고, 말할 때도 훨씬 쉽고, 무슨 말인지도 쉽게 알 수 있다.
‘형식은 추상(화)이나 내용은 표현주의인 화가의 작품 세계를 바로 보여 준다.’
두 문장을 비교해보고, 소리 내어 읽으면서 ‘~적’을 써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바란다.
‘노동조합 활동이 모범적이어서 조합원들은 희망적이다.’ 이 문장에서도 ‘~적’을 빼자. ‘노동조합 활동이 모범이어서 조합원들은 희망이 크다.’ 어떤 문장이 읽기 쉽고, 쉽게 이해되는가?
몇 가지 자주 쓰는 예를 살피자. ‘무조건적’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으로 쓰자. ‘임의적으로 선정’하지 말고, ‘임의로’ 또는 ‘마음대로’ 선정하자. ‘극적인’ 사랑 말고, ‘연극 같은’ 사랑은 어떤가. ‘내부적으로’ 합의하지 말고, ‘내부에서’ 합의하면 안 될까. ‘대체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 말고, ‘대체로’ 옳으면 그만이다.
‘~화’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노동자를 ‘조직화’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냥 비정규직노동자를 ‘조직’해도 문장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위원장 선거가 ‘무효화’ 되기 전에 위원장 선거가 ‘무효’가 되지는 않았는지 고민하자. 노사분규가 ‘과격화해지는’이 아니라 노사분규가 ‘과격해지는’으로 써도 괜찮다. 차별을 ‘고착화시키는’ 일은 막아야하고, 차별을 ‘굳어지게 하는’ 일도 벌어져서는 안 된다.
‘~성’에서 ‘성’을 빼도 문장이 어색하지 않다. 새 집행부의 ‘방향성’이 어용인 게 아니라 새 집행부의 ‘방향’이 어용이다. 조합 간부의 근면성이 부족한 게 아니라 ‘부지런함’이 부족하지는 않았을까. 정치인의 ‘정직성’이 중요하지만 정치인의 ‘정직함’도 중요하다. 노동개혁의 ‘지속성’을 의심하지 말고, 노동개혁을 ‘지속할지’ 또는 ‘이어갈지’ 생각해보자.
‘~하’도 마찬가지다. 주52시간문제가 이어지는 ‘상황하에서’는 ‘상황에서’로 바꾸자. 구조조정의 문제점이라는 주제하에 토론회가 아니다. ‘주제로’ 토론회를 열자. 언제든 구조조정 될 수 있다는 ‘인식하에’ 대책을 마련하지 말고, 구조조정 될 수 있다는 ‘인식에서’, ‘깨달음에서’ 대책을 준비하자. 협상이 차가운 ‘분위기하에서’ 진행되지 않도록, 따뜻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도록 바꾸자.
단체협약안의 ‘기초하에’는 ‘기초로 하여’ 또는 ‘바탕으로 하여’ 진행하고, 합의안이 나온 뒤에는 평가할 시점이 되었다는 ‘판단하에’ 회의하는 대신 ‘판단에서’ 회의를 개최하자. ‘제하의’라는 말도 자주 쓰는데, ‘제목의’, ‘제목으로’ 바꾸면 딱 어울린다. 세계금융위기의 ‘배경하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배경에서’ 또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 옳다.
‘~감感’, ‘~시視’, ‘~상上’도 위처럼 ‘감, 시, 상’을 빼고 쓰기를 바란다. ‘기대감’은 ‘기대, 바람, 희망’으로 바꾸고, ‘금기시하고’는 ‘꺼림칙하게 보고’로 고치자. ‘외형상’은 ‘겉으로’가 어떤가. 전국노동자대회가 ‘평화리’에 끝난 게 아니라 ‘평화스럽게’ 끝났다. 이래야 우리 문장의 장단이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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