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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증 없는 야근’ 부르는 탄력근로제 확대되나

정부 ‘노동시간단축 현장안착 지원대책’, 노선버스 등 노동시간 특례업종 반발

등록일 2018년05월21일 09시3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 자동차노련 조합원들이 지난해 7월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단위노조대표자 결의대회를 열고 장시간 운전 철폐와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에서 버스업종 제외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제공=정기훈 매일노동뉴스 기자>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광역급행버스 운전기사였던 김아무개(52)씨는 하루 18시간(격일제), 심지어 이틀 연속 18시간(복격일제)씩 버스를 몰았다. 한 달이면 20일은 운전대를 잡았다. 차가 막히면 끼니를 놓치기 일쑤인 상황에서 휴게시간은 있으나마나였다. 늘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핸들을 잡고 있는 동안에도 졸음을 쫓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이렇게 일하면 270만원 언저리 월급을 손에 쥐었다. 그러다 사고가 났다. 지난해 7월 경부고속도로 신양재나들목 인근에서 버스전용차로가 아닌 2차로를 달리다 다중 추돌사고를 냈다. 2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비극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사건 담당판사는 "김씨가 졸음운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주의의무를 게을리했다"는 점을 일차적으로 지적하면서도 "김씨가 업무가 과중해도 휴일에 충분한 휴식을 취했으면 대형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구조적 문제를 언급했다. 사회적 문제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잘못된 제도와 비용절감이 빚어낸 장시간노동 관행을 사고 원인으로 본 것이다.
 
버스업종은 50년 넘게 근로기준법 제59조(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에 묶여 있었다. 해당 조문은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한 경우 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하게 하거나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계로부터 ‘무제한 노동자 이용권’이라는 비판을 받아 온 독소조항 중 하나다.
 
해당 조문을 근거로 버스업종은 격일제나 복격일제 같은 장시간 근무체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김씨 같은 버스운전자들은 하루 18~20시간씩 차량을 몰고 다음날 쉬거나(격일제), 하루 16~18시간씩 이틀 연속 근무한 뒤 사흘째 되는 날 하루를 쉬는(복격일제) 살인적 스케줄을 소화했다. 잠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비인간적인 근무체계의 기저에는 비용절감이라는 자본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버스업계 특성상 장시간 운행이 불가피하다면 운전자들이 돌아가면서 일하고 쉴 수 있게 해 주면 된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버스준공영제를 실시하고 있는 서울시·인천시 버스운전자들은 이미 1일2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돈이 많이 든다. 1일2교대제보다는 격일제가, 격일제보다는 복격일제가 싸게 먹힌다. 준공영제가 도입되지 않아 지자체로부터 지원을 받기 어려운 경기도 등이 여전히 격일제 시스템을 고수하는 이유다. 문제는 사용자가 인건비를 줄여 이윤을 늘리고자 할수록 버스운전자에게 가해지는 피로도와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버스업계 장시간노동의 심각성은 운전자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의 생명까지 위협한다는 데 있다.
 
 
버스 졸음운전 사고 줄인다더니
 
 
다행인 것은 복격일제 같은 이름조차 생소한 기형적 근무형태가 퇴출을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근기법 개정안은 노동시간을 기업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한 주 최대 52시간) 제한하고,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기존 26개에서 5개로 줄이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시내·시외·고속버스 같은 노선버스도 특례업종에서 제외했다. 1961년 근로시간 특례제도가 도입된 지 57년 만이다. 이에 따라 노선버스 운전자들은 올해 7월부터는 주 68시간, 내년 7월부터는 주 52시간의 근무시간을 적용받는다. 또, 하루 근무가 끝나면 11시간 이상 연속휴식을 부여받는다.
 
노선버스 특례 제외 결정에 따른 기대효과는 세 가지다. 버스운전자 삶의 질 제고, 버스 안전사고 근절,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일자리 창출 등이다. 따라서 개정법이 온전히 적용되려면 인력 확충이 필수적이다. 기존 운전자들의 근무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신규 인력이 투입돼야 버스운행 차질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런데 상황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부는 지난 17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열어 ‘노동시간단축 현장안착 지원대책’을 마련했다. 노동시간 단축 입법에 대한 정부 차원의 후속 대책이다. 대책은 △신규채용 및 임금보전 지원 강화 △조기단축 기업 우대 지원 △생산성 향상과 일하는 방식 개선 △구인난 완화를 위한 인력지원 △특례 제외업종 등 업종별 특화 지원관리 등 5가지 방안을 담았다.
 
이 중 단연 눈에 띄는 내용은 특례에서 제외되는 노선버스 등 21개 업종에 대해 업종별 노동방식의 표준모델을 개발해 보급한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특례 제외업종에서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포함한 유연 근로시간제 확대를 추진할 방침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뭐 길래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특정 근무일의 노동시간을 늘리면 다른 근무일의 노동시간을 줄여 일정기간(2주 또는 3개월) 평균 노동시간을 법정 한도에 맞추는 일종의 변형근로시간제다. 기업 업무량 변동이 크거나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경우에 대처하고자 한시적으로 근기법상 노동시간 제한을 풀어 주는 것이다. 기업들은 2주 또는 3개월 단위기간 내 기준시간만 맞추면 초과노동 할증률을 적용받지 않으면서도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80년 노동운동을 제약하려는 취지로 국가보위입법회의가 4주 단위 변형근로시간제를 도입한 것이 시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폐지됐다가 96년 말 노동법 날치기 통과 후 97년 부활했다(2주 또는 1개월). 그 뒤 2003년 법 개정으로 단위기간이 현행(2주 또는 3개월)과 같이 늘었다.
 
탄력근로제가 도입되고 단위기간이 늘어나는 동안 노동계의 반발이 이어졌다. 93년 정부가 당시 ‘행정규제완화위원회’에 변형근로제 부활 등이 포함된 규제완화 건의사항을 제출했을 무렵 한국노총이 발표한 성명을 보면 "정부가 노동자들의 기본권과 생존권을 위협하고 노동조건을 악화시킬 것이 명약관화한 구시대적 악법 조항들을 내놓고 있어, 모처럼의 노사협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25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권이 교체되고 노사정이 새로운 사회적 대화를 모색하는 현재의 상황과 오버랩된다. 한국노총은 지난 17일 정부 대책이 나온 직후 성명을 통해 "유연근무제와 탄력근로제 활용은 실 노동시간 단축을 무력화할 뿐만 아니라, 사측이 초과근로 가산수당 부담을 줄이는 꼼수로 활용할 수 있다"며 "실 노동시간 단축 제도 시행은 우리나라의 후진적인 장시간·저임금 노동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좋은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도록 해야 해야 하며, 한국노총은 내용이 빈약하고 실효성도 없는 이번 대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현행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특례 제외업종에 적용하면 해당 노동자는 2021년까지 한 주에 최대 80시간(3개월 단위, 2주 단위의 경우 76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다. 그 뒤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이 줄어들더라도 한 주 64시간(3개월 단위, 2주 단위의 경우 60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하다.(<표1> 참조) 이 자체로 하루 8시간, 한 주 40시간, 한주 최대 연장근로 12시간의 상한을 정한 근기법 규정을 유명무실하게 만든다.
 
 
휴일근로 할증률 낮춘 것도 모자라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장시간 노동국가 중 하나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결정적 이유는 정부의 엉터리 행정해석 때문이었다. "연장근로시간에는 휴일근로시간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노동부 유권해석(근기68207-2855)이다. 1주일을 5일이라고 본 해당 지침은 한 주에 최대 68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해당 지침은 2004년 법정노동시간이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어든 뒤로도 무려 14년이나 영향력을 발휘했다. 지금까지 기업들이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동시간이 충분히 확보된 상태에서 굳이 노사합의 같은 불편함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근기법 개정으로 이제 겨우 비정상의 정상화로 전환하려는 찰나에 정부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주요 대책으로 꺼내들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일개 행정지침이 14년이나 노동시장을 좌지우지했던 흑역사를 환기시킨다.
 
임금 측면에서 봐도 우려스럽긴 마찬가지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하면 초과노동에 대한 할증률 적용이 안 된다. 노동시간이 늘고 노동강도는 높아지는데 그에 대한 보상은 줄어드는 결과가 초래된다. 저임금·장시간노동체제에 기반해 기본급이 낮고 수당이 많은 임금체계가 지배적인 상황임을 감안하면, 수당할증이 적용되지 않는 이 제도가 노동자와 사용자 중 누구에게 유리할 지는 굳이 따져볼 필요도 없다. 더구나 올해 근기법 개정으로 휴일노동에 대한 중복할증수당도 폐지된 상황이다.
 
근기법에 초과노동에 대한 가산수당 지급을 의무화한 것은 장시간노동을 근절하기 위한 취지다. 사용자의 비용부담을 늘려 초과노동 요인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현 정부의 노동시간 정책은, 적어도 임금 측면에서는 이에 역행하고 있다. 더구나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확대되면 노동자의 노동주기가 불규칙해져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이루기도 어려워진다.
 
이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해명은 군색하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2주 단위로 시행할 경우 주당 평균 근로시간을 유지하면서 1주 최대 76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며 "76시간까지는 일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건 아니고, 한시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연착륙 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신규 일자리 창출은커녕
 
 
통계청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수가 전년보다 12만3천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석 달 연속 취업자수 증가 폭이 10만명대로 부진한 것은 세계 금융위기 여파가 남아 있던 2010년 2월 이후 처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과 임금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본다"며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론’에 불을 지폈다.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하며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을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해온 정부의 정책기조가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장 탄력적 근로시간제 일차적 적용 대상으로 지목된 버스업종 노동자부터 정부 대책을 강한 어조로 질타하고 있다. 자동차노련은 지난 18일 성명을 통해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신규인력 채용은커녕 기존 종사자들마저 일터를 떠나게 만드는 졸속대책을 폐기하고 조속히 노사정 교섭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자동차노련에 따르면 전체 노선버스 운전자 가운데 현재 1일2교대제가 아닌 장시간 운전을 담당하는 버스운전기사는 전국 4만3천여명에 달한다. 또 탄력적 근로시간제 적용에 따른 신규채용 규모는 2천여명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다.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지 않다. 이 상태로는 ‘버스 대란’을 피하기 어렵다.
 
기존 운전자들의 이직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신규채용 인력 1명당 기존 직원 10명의 인건비 일부(최대 월 40만원)를 보전해 주기로 한 정부대책을 감안하면, 무려 2만3천여명이 정부지원 사각지대에 방치된다. 이들은 노동시간이 단축되는 만큼 임금이 줄어든다.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운전대를 놓을 가능성이 높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적용으로 한 주 노동시간이 최대 80시간(3개월 단위, 2주 단위의 경우 76시간)까지 늘어나면, 노선버스를 특례업종에서 제외해 교통사고를 예방하겠다는 당초의 목적도 달성하기 어렵다.
 
2016년 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 1천470만여명 중 90.1%가 주 52시간 미만 근무하고 있다(김유선, 2018). 10명 중 9명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근무하고 있는 상황에서 버스운전자에게만 그 두 배에 달하는 노동시간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사회 정의에 반한다. 더구나 한 주 60시간 이상 근무는 산재로 인정받는 과로사 기준이다.
 
 
사회적 대화는 이럴 때 하는 것
 
 
노동부가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 시민안전 제고 측면에서 정책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대책을 들고 나온 진짜 이유가 뭘까. 이쯤 되면 정부의 속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발’인 버스업종 노사가 버스대란에 따른 지탄여론을 감수하면서까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을 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이번 기회를 유연근무제 확산 계기로 삼으려는 의도가 읽힌다.
 
한국노총은 최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와 고용노동부·민주노총·한국경총·대한상의에 공문을 보내 노동시간 단축 후속대책에 대한 ‘원 포인트’ 사회적 대화에 나서자고 제안했다. 노동시간 단축이 임금 저하나 노동조건 후퇴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자는 것이다. 노동자 임금보전과 기업 인건비 지원, 교대제 개편 방안 등을 함께 논의하고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도록 노사정이 일자리연대협약을 체결하자는 취지다.
 
정부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노동계의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고, 무엇보다 현 정부가 전면에 내건 핵심 국정과제이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 김유선, 「주 52시간 상한제의 사회경제적 효과」, 2018.1, 한국노동사회연구소
- 최영기 외, 「한국의 노동법 개정과 노사관계」, 2000.1, 한국노동연구원
구은회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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