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영 매일노동뉴스 기자
가지지 못한 것을 포기하기는 쉬워도 이미 가진 것을 내려놓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게 설령 다른 이의 밥그릇을 빼앗아 얻게 된 무엇이라도 말이다. 비현실적인 밥그릇의 크기는 이미 견고하게 구축된 시스템 안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 대다수의 침묵과 방관 속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합리화한다.
최근 아이 입에서 자주 나오는 말 중에 하나가 “불공평해”다. 처음에는 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 입에서 이런 수준 높은 단어가 나오는 것에 신기했다. 아이는 이 말을 어린이집 누나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불공평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냐고 했더니 아이는 그 조그만 입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 엄마가 사준 젤리 말이야. 자꾸 **누나가 더 많이 먹겠다고 하잖아. 내가 다 먹고 싶은데도 누나가 달라고 해서 양보했단 말이야. 2개 줬어. 그런데 누나가 더 달래. 그럼 누나는 3개 먹고 나는 2개밖에 못 먹잖아. 그건 불공평해.”
그렇지. 젤리가 5갠데 한 명이 3개를 먹으면 한 명은 2개밖에 먹지 못한다. 그것도 우리 엄마가 나 먹으라고 사다 준 젤린데. 세상 이토록 억울하고 불공평한 일이 어딨겠나. 결국 문제의 그 젤리 하나는 열심히 일한 돈으로 젤리를 사 온 내가 먹는 것으로 공평하게 마무리됐다. 물론 이 역시 공평한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선거제 개혁 관련 논의가 한창이다. 소수정당은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유한국당은 “우리 당 의석을 빼앗아 더불어민주당 2중대에 주려 한다”며 반발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잘못된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진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면, 이를 빼앗긴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까. 뼈를 깎는 아픔이 있더라도 특권과 불공정으로 점철된 정치를 시정해 대의민주주의를 바르게 실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정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포스코는 2004년 국내 최초로 성과공유제를 도입하고 지난해 하청노동자 임금을 원청 대비 80%까지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포스코 원청 노동자는 평균 9,800만 원을 받았지만 하청노동자는 연장근무수당을 포함해 평균 6천만 원가량을 받았다. 원청 대비 61% 수준이다. 노동강도는 당연히 하청노동자들이 더 세다.
포스코의 지난해 매출액은 64조 9,778억 원으로, 영업이익은 5조 5,426억 원이다. 6분기 연속 영업이익 1조 원대를 달성했다. 그러나 포스코가 약속했던 성과공유제는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5명의 하청노동자가 일하다 목숨을 잃은 곳이 포스코다. 올해에도 폭발사고와 추락으로 하청노동자가 사망하거나 다쳤다. 2만 명이 넘는 하청노동자들을 제외하고 포스코의 64조에 달하는 매출액을 말할 순 없다.
불평등과 불공정을 극복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최근 한 대공장에서는 제조업 노동자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 하후상박 원칙을 확정하고 대공장 임금인상 폭을 낮췄다. 그 결단과 실행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임금이 대폭 인상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원청의 임금인상 수준을 넘을 수 없다는 기존 인식 때문이다. 이미 시스템으로 구축된 원하청 불공정거래와 단가후려치기로 불공평이 보편화되고 확고해졌기 때문이다.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개선하고 납품단가를 정상화하며 원하청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노동현장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극복하는 단초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