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인간다운 삶을 위한 시대적 과제, 근로시간 단축

일자리 창출, 워라밸 구현 위한 근로시간 단축

등록일 2019년09월06일 15시51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진병우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실장


일본의 경제침략에 대한 국민적 공분과 국내산업 육성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틈타 정부가 내놓은 카드는 ‘특별연장근로’였다. 여당은 한술 더 떠 아예 주 52시간 제도를 유예하자며 나섰다. 노동존중사회라는 정권의 모토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재계는 이때다 싶어 한시적 인가연장근로제와 재량 근로시간제 확대를 정식으로 요구했다. 주 52시간제 시행시기도 늦추자며 총공세에 나선 모양새다.

 

그러나 저들이 내놓은 이 모든 방법들은 노동자는 물론 국민의 공감을 전혀 얻지 못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완전히 동떨어진 진부한 해법과 국민정서에 대한 몰이해는 실패로 귀결될 것이 뻔하다. 새삼 근로시간 단축이 갖는 가치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일자리 창출, 워라밸 구현 위한 근로시간 단축

근로시간 단축은 이번 정부 들어 새삼스레 등장한 것이 아니다. 고도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기였던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64시간에 육박했다. 그러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고용지표가 최악의 상황에 이르자 ‘기존의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만들자’는 논의가 본격화 됐고, 2000년대 접어들어 고용 증대 목적의 과거 논의에 더해 일과 가정의 양립, 즉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의제가 등장했다. 이렇듯 이 문제는 국가의 급격한 성장과 위기, 그리고 국민 가치관의 이동 등 사회 전반의 변화와 시대적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부각되었다. 보수와 진보, 자본과 노동이라는 대결적 프레임을 벗어난, 필연적인 과제이자 사회현상이라는 의미다.


근로시간 단축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일자리 창출인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근로시간을 줄이고 부족한 인력은 추가 고용을 통해 해결하자는 것이다. 실리적 접근이기는 하나, 인력을 대체하기 위한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기대효과는 감소할 수밖에 없는 약점도 있다. 둘째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것으로, 최근 회자되는 ‘워라밸’ 구현에 있다. 일하는 시간을 줄여, 가족과 저녁을 보내고 여가와 취미를 통해 삶의 질적인 향상을 희구하는 가치적 접근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상당부분 해소된 현대사회에서 후자에 무게중심이 쏠리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위 두 가지 측면에서 주 52시간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현재, 어느 정도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노총에서는 지난 6월, 개정 근기법 시행을 전후해 사업장의 변화와 실태를 조사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85%에 해당하는 대다수의 사업장에서 ▲휴일근무일수나 휴일노동시간 축소 ▲평일 연장근로시간 축소 ▲교대제 개편 ▲작업공정 개선 조치 등 실제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적절한 대응조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적극적인 대응조치는 사업장의 인력규모와 관계없이 비슷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언뜻 근로시간 단축 제도가 산업현장에서 상당부분 수용성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는 신규 고용 없이 임금만 줄여
그러나 몇 가지 문제점도 드러났다. 먼저 근로시간 단축이 실제 신규 고용 창출로 이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설문에 응답한 사업장 중 불과 38%에서만 추가고용이나 신규채용 계획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사업장에서는 인력 충원 계획이 아예 없거나, 탄력근로제 또는 유연근로제 도입을 통해 실제 노동시간 단축 없이 주 52시간 제한을 회피하려는 의도마저 확인됐다.

 

또한 노동계가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임금감소에 대한 우려도 현실로 드러났다. 설문 응답 사업장 중 53%에서 평균 16%에 달하는 실질임금이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비록 제도 도입의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법은 앞서나가고 있는데 부차적인 보완책과 부작용에 대한 해법이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 결과는 기대보다 부진한 일자리 창출 효과와 근로자들의 임금이 줄어들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삶의 질 향상에서는 어떨까. 이 문제는 다분히 상식적인 부분이기는 하나, 참고를 위해 최근 한 취업포털 사이트의 설문 결과를 인용해 본다. 2018년 7월 주 52시간 제도의 시행 이후 삶의 질이 긍정적으로 변화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84%가 ‘그렇다’고 답했다. 직군과 업종별 만족도 순으로는 사무직과 전문직이 상위에 속했고 제조직군이 가장 낮았다.

 

상기 한국노총의 설문조사 결과와 종합해 보건데, 제조업의 임금구조상 급여가 줄어드는 폭이 큰 것이 그 이유라고 유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의 여지없이 근로시간 단축은 노동자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북유럽의 연구사례에서는 노동자의 행복과 자존감의 상승은 물론 병가사용 횟수와 질병에 걸리는 비율마저 줄어드는 등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까지 확인된 바 있다.
 

근로시간 단축 온전한 도입으로 노동존중 실천

이렇듯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근로시간 단축은 일자리 창출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두 가지 분야에 분명한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반면 부작용 또한 존재한다. 제도의 안착을 위해 후속조치 마련은 매우 시급한 과제다.


먼저 일자리 창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의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 이미 고용창출지원금 등 몇몇 정부지원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부족한 정책홍보와 까다로운 조건으로 인해 사용자가 실제 이를 이용하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이다. 기업의 측면에서 당장의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재정지원을 추가하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

 

사용자의 막연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공격적인 홍보도 필수적일 것이다. 사회적 비용의 과다지출이라는 우려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재정 지원은 제도가 안착하는 과정 동안의 과도기적 조치이기에 우리 사회가 이를 감내할 수 있는 여력은 충분하다.


아울러 노동자의 임금감소가 근로시간 단축의 순효과를 훼손해서도 안 될 것이다. 임금이 줄어드는 이유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기본급에 비해 각종 수당의 비중이 기형적으로 큰 임금구조 때문이다. 이러한 임금구조는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지 않고 현재의 인력을 유지한 채, 생산력을 높이려 했던 사용자들의 오랜 꼼수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정상적인 임금구조로의 개선, 즉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 수반되는 고통은 기존의 자본 중심 사고에 경도되었던 사용자가 받아들여야 할 당연한 몫이다.


살펴본 것처럼, 주 52시간제로 대변되는 근로시간 단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그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치기도 하고, 생각지 못했던 부작용이 대두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간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장시간 노동과 이로 인한 착취의 굴레를 벗어나는 과정이 다소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이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제적·사회적 발전과 맞물려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이자,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변화의 흐름이다.

 

따라서 사용자의 인식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노동자의 행복과 건강이 사업장의 생산성 향상과 효율 증대를 견인할 것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노·사 상생의 가치 구현, 산업 현장에서의 노동존중 실천은 근로시간 단축 제도의 온전한 도입으로 반드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회사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이 미덕이고, 나의 삶과 가족보다 일을 우선하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인간이 경제적인 욕구보다 내 삶의 근본적인 행복을 탐구하기 시작했다면,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월간 한국노총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 0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인터뷰 이슈 산별 칼럼

토크쇼

포토뉴스

인터뷰

기부뉴스

여러분들의 후원금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듭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