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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에 질병까지…

건강권 위협받는 마필관리사 노조를 만나다 

등록일 2019년04월04일 14시11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박연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차장 

 

강인하며 역동적인 말이 전력을 다해서 달려 골인 지점에 들어가는 순간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진다. 매일 짧은 환호성의 순간을 위해서 새벽부터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말을 돌보는 마필관리사들이다. 새벽 6시에 출근해야 하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고 연장근무에, 말이 아프기라도 하면 당직까지 자처해야 한다. 찰나의 순간을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 이들이 준비해야하는 시간들은 이처럼 길고 고되다. 최근 이 고된 삶에 폐암이라는 질병까지 더해졌다고 한다. 마필관리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신동원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 노조위원장을 만나보았다. 

 


 

입사 후 5년이면 전 직원이 산재환자

 

Q. 마필관리사라고 하면 조금은 생소하게 들리는데 어떤 업무를 하는가?
 

“마필관리사는 말들이 경마에 나가기 직전까지 모든 업무를 다하는 사람들이다. 말의 훈련부터 시작해서 말의 먹이를 주는 일, 말의 청결, 말의 보건치료, 말발굽관리 등 말에 대한 전반적인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Q. 사람이 아닌 말을 관리하다보니 사고가 많을 것 같은데 최근에는 사고가 아니라 폐암으로 인해 산재승인을 받은 조합원들이 늘고 있다고 들었다.
 

“마필관리사는 사고가 많은 직종이다. 말에 밟히고 채이고 물리는 사고가 있고 시설적인 부분에서 사고가 날 수 있는데 18년도 재해율만해도 13.7% 정도 된다. 그런데 이 13.7%라는 것은 산재승인을 받은 건수에 불과하고 공상처리 한 것까지 합하면 20%가 넘을 것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입사 후 5년이 지나면 전 직원이 산재환자가 되는 거다. 위원장인 나 역시 산재경험이 있다. 이런 사고에 대해서는 마사회 측에서도 신경을 쓰고 있는데 문제는 최근에 발생하는 폐암이다. 현재까지 7명이 폐암판정을 받았고 이중에 두 명이 산재승인이 나지 않고 있다.”

 

Q. 마필관리사와 폐암이라는 언뜻 듣기에는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폐암 발생의 원인이 무엇인가?
 

“2013년에 서울경마장에 처음으로 폐암이 발생하였다. 당시에는 작업환경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산재승인이 나면서 막연히 경마할 때 달리는 주로(走路)에서 분진이 많이 일어나니까 그게 원인인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유리규산(1급 발암물질로 경마장에서는 말을 훈련시키는 훈련장 모래와 주로의 모래에서 발견되었다)이 원인이었다. 그것도 주로보다 평소에 말들을 훈련시키는 장소가 더 위험하다고하니 황당했다. 문제는 지금 ‘7명’ 이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폐암은 잠복기가 길다고 하니 이미 퇴직하신 분들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최초에 폐암으로 산재승인을 받으신 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노동부에서 특별감독을 나와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폐CT를 했는데 관찰 추적을 해야 한다는 분이 26명 정도 나왔다. 더 많은 조합원들이 폐암에 걸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노조의 입장에서 가장 걱정이 되는 부분이다.”

 

Q. 폐암 발병 이후에 그럼 사측에서는 어떤 조치들을 취했는가?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마필관리사는 마사회 소속이 아니다. 93년 직고용에서 조교사협회 고용으로 노동조건이 변화되면서 현재는 조교사협회 소속이다. 그런데 사실 조교사협회에서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예산과 시스템이 모두 마사회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마사회는 이 부분에 있어 책임을 회피 중이다. 유일하게 한 조치라고는 질병사망에 대한 보험가입이 전부다. 
 

가장 답답한 것은 마사회 측이 자체적인 작업환경측정결과 기준치 미달로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는 거다. 최근 정부에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있는 것과는 역행하는 태도다. 마사회도 공기업이다. 공기업이 원청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사기업에게 원청의 책임을 다하라고 하는 것은 역설이지 않는가? 사실 폐암문제는 마사회가 의지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다.그런데 하지 않는다. 정기적으로 노조와 조교사협회와 마사회 측과 회의를 하는데 마사회는 사고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대책을 내놓는데 폐암과 관련해서는 대책이 없다. 인식이 사고에만 머물러 있고 질병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폐암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고뿐 아니라 질병의 위험성도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인식도 낮고 준비도 너무 부족하다.”

 

Q. 그렇다면 노조에서 요구한 해결책이 있을 것 같다. 무엇인가? 
 

“노조에서는 줄기차게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폐CT검사를 요구하고 있다. 폐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얼마든지 완치 후 현업복귀가 가능하다. 그러니 전직원들에게 폐CT검사를 해달라는 것인데 예산이 없어 불가능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심지어 검사를 하더라도 혈액검사. 객담검사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노총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조기검진을 같이 요구해주면 좋겠다. 또 정부에서는 집단역학 조사를 시행해주었으면 한다. 최근에 돌아가신 조합원의 경우 아직도 산재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어 유가족들이 많이 답답해하고 있다. 2월말, 3월말 계속 미뤄지고 있으니 유가족 입장에서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이런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소모적이라고 생각한다.”

 

공공기관 작업장 안전대책 내용은 진일보

 

Q. 지난 3월 19일 정부가 공공기관 작업장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혹시 내용을 보셨는가?
 

“내용은 진일보한 것 같다. 다만 아쉽게도 앞서 말한 독특한 고용구조로 인해서 우리 문제가 직접적으로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사고나 질병으로 마사회 기관장이 해임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다만 전체 산재사고에 마필관리사의 질병과 사고도 포함하여 통계를 잡는다고 하면 기대되는 측면이 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2013년~2014년 마필관리사들이 자살을 하면서 이슈화가 된 적이 있다. 지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에서 마필관리사의 산재에 대해서 많은 노력을 해주셨다. 그러나 아쉽게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실례로 사고를 경험한 마필관리사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그걸 도박치료 상담센터에 보내는 식이다. 잠깐 반짝하고 이슈가 되었지만 여전히 마필관리사들은 어려운 고용관계와 말도 안 되는 성과주의, 복잡한 급여체계에 시달리면서 질병과 위험에 노출되어있다. 어느 정부보다 산재사고와 노동자의 건강권에 대해서 관심이 높은 정부라고 하고 원청의 책임 강화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마필관리사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고 마사회가 더 이상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

 

과천 경마공원을 둘러보며 말을 위한 시설이 매우 잘되어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경기 전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 말을 돌보는 사람들은 위험과 질병에 노출되어 마사회 측으로부터 배려는커녕 당연한 권리도 보장 받지 못하고 있다. 일을 하다가 죽거나 병을 얻어서는 안 된다. 모든 노동자는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가지고 있고 모든 사업주는 건강한 일터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마사회만 예외 일 수는 없다. 마필관리사 노조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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