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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에 나와서 이웃을 보자

등록일 2019년03월06일 15시02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오필민 칼럼리스트

 


 

요즘 어느 화물노동자의 삶과 정신을 쫓으며 글을 쓴다. 그를 직접 만난 적도 없고, 만날 수도 없기에 그의 삶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주저하며 한 글자씩 채워가고 있다.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아 오전 10시부터 점심은 물론 저녁까지 건너뛰며 사람을 만나고, 밤새 녹취록을 풀어 추가 인터뷰를 하고 정신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옛 신문을 뒤지고, 복사가 수없이 된 문건을 읽고, 절판된 책을 찾고, 자료를 파헤치며 한 사람의 삶을 마치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토기를 복원하듯 빈 공간을 둔 채 맞춰갔다. 작업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원고지 매수를 늘려가고 있지만 완성이 될까 회의가 들었다. 도대체 알 수 없는 그의 행적과 결단을 마주칠 때는 컴퓨터 모니터를 닫고 도망치고 싶었다. 그 한계가 극에 달할 때, 쓸지 말지를 결단하기 위해 마지막 담배를 피려고 작업실을 나왔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시간이었다.


작업실 아래에는 마트가 있다. 과일도 팔고 채소도 팔고 과자도 팔고 음료수도 파는 공판장이다. 아직 마트 문이 열리지 않은 시간이었다. 담배를 물고 깊이 마신 연기를 내뿜는데 눈앞에 1톤 화물차가 있다. 새벽 일찍 과일 상자를 싣고 와서, 마트 문 열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차 안에는 예순이 넘음직한 머리가 샌 기사가 앉아 있고, 그가 한 손엔 크림빵을 한 손엔 우유를 들고 있었다. 빵을 한 가득 베어 먹었는지 입술을 닫은 채 오물거리고 있다. 잠시 뒤 우유를 들이킨다. 영하의 날씨, 찬 우유로 피로와 허기에 진 위를 달래는 화물 기사 모습을 본 순간, 막혔던 화물노동자의 삶이 떠올랐다. 그래 ‘밥 한 끼’다. 담배를 끄고 작업실로 올라가 쓰기 시작했다.

 

아침도 굶은 채 새벽에 나와 분류 작업한 뒤 배송을 나가면 점심 먹을 틈도 없다. 차에 오르고 내리고, 계단을 오르고 내리고, 골목을 뛰어갔다 달려오고, 배고픔도 잊고 달리고 또 달리다 배송과 집하가 완료되어야 제대로 된 밥 한 끼를 먹는다. 이미 날이 저문 뒤다. 바짝 마른 택배 노동자가 많은 까닭은 살 찔 틈도, 먹을 틈도 없이 뛰고 오르내리고를 수백 번 반복하기 때문이다. 택배 일을 하면 생각하는 일이 귀찮아진다. 오늘 배송할 물건을 제 시간에 제 장소에 가져가는 일만 생각해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일이 끝나면 곧바로 곯아떨어진다. 택배 노동자에게 생각은 사치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한숨 더 잔다.

 

내가 쓰려는 화물노동자는 박종태다. 그는 2009년 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끌던 중 대전 읍내동 대한통운 터미널 앞 야산에서 현수막을 내걸고 항거했다. 그의 마지막 투쟁을 기록하려면 2006년 삼성전자에 맞선 고공농성, 2008년 화물노동자 총파업 때와 달리 삶의 뒤편에 마주하고 있는 죽음을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쓰는 일을 주저했다. 그런데 어둔 밤을 달려 새벽에 도착해 찬 우유와 마른 빵을 먹는 화물 기사의 ‘밥 한 끼’ 본 순간 꼭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글을 쓰게 하는 힘은 내 이웃의 삶, 노동하는 땀의 현장에 있다. 그 속에 이야기가 있고, 글을 쓰게 동력도 그곳에 있다. 글이 막힐 때는 글 속에 나와서 이웃을 보자. 책상을 붙잡고 있다고 써지는 게 아니다. 나와 함께 숨 쉬는 이웃의 삶을 애정 어린 눈으로 관찰하자.


글을 쓸 때면 꼭 한 번 겪는 위기가 있다. 어느 순간 콱 막혀 포기하고 싶은 순간. 이번 나의 경우도 그랬다. 그때 포기하면 그 작품은 영원히 미완으로 남는다. 그 위기를 다스릴 자신만의 비법을 가져야 한다. 홀로 동굴 속에 머리를 쥐어짜거나 어두운 술집에 처박혀 소주병을 비워서는 답이 없다. 운동을 하든 산책을 하든 음악을 보든 머리를 맑게 해야 한다. 나는 이웃의 노동을 보며, 그 노동의 고단함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찾는다. 이웃과 노동은 내게 영원한 글감이고, 글을 쓰게 만드는 채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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