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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노동과 민주주의의 한 자락

말뿐인 노동3권과 진짜로 지켜지는 노동3권

등록일 2019년03월05일 17시53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한국에서 일본 민주주의나 노동문제는 한일관계 떄문에 인식이 굴절되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한국사회에서 <노동>과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도전적이고 재미있는 주제들로 가득합니다.  일본의 노동조합조직률이 17%이고, 통상 노동권력이 강한 국가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노동조합은 사회의 기본조직으로 존재하며, 노동자가 사회적 시민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번 <노동N이슈>에서는 그 이유를 일본 노동운동의 역사와 정당정치를 통해 추적해봅니다.

 

* 본 브리프는 집필자의 연구 및 2019년 1월13일부터 1주간 일본 정당들과 노동조합에 방문해서 가진 간담회와 일본 정치학과 교수님들에게 들은 강연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 이 자료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한국노총의 공식 견해를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포세(POSSE)는 노동문제를 연구하고 이슈화하는 노동관련 시민단체이다. 이들은 블랙기업(노동법을 무시하거나 법망미비를 악용하여 노동자에게 가혹한 노동을 요구하는 기업)이란 개념을 일본사회에 이슈화하고, 매해 블랙기업시상식을 열어 <일본 노동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왔다. 포세는 시민단체에서 멈추지 않고 2014년에 종합서포트유니온(総合サポートユニオン)이라는 형태로 새로운 노동조합을 발족시켰다. 종합서포트유니온은 기존의 기업별노동조합과 다른 형태의 커뮤니티유니온, 개인 가맹 유니온의 일종이다. 일본에서 1990년대 이후 지역노조운동, 고유한 직종이나 특정한 세대 및 성별로 조직되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운동이 활성화되었다. 한국의 청년유니온이나 희망연대노조 등과 비슷한 노조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운동방식을 보면 한국 노동운동에서 생각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존재한다. 유니온들은 개인 가입을 많이 받는데, 한 회사 내 해당 노조 조합원이 한두 명밖에 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에도 회사 측에 단체교섭을 요청하면 보통 교섭에 응한다. 교섭에 응하지 않는 회사도 간혹 있지만 노동위원회에 제소하면 거의 해결된다(정이환, 2012: 317). 이에 일본의 개인가맹유니온은 사용자측과 단체교섭을 통해 약 70%의 노동분쟁을 해결해왔다(오학수, 2010; 2013).
 


▲ 지난 2017년 한국노총과 일본노총의 조직화 관련 국제세미나

 

왜 일본 회사는 한명의 조합원이 교섭을 신청해도 무시하거나 해고하지 않고 교섭에 응하는 것일까? 한국과 차이는 무엇 때문인가? 

첫 번째 차이는 한국과 일본에 복수노조와 관련된 법적 차이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2010년부터 모든 노조에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하는 노조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후 작은 노조나 적은 수의 조합원은 사실상 교섭권을 가지기 어렵다. 반면 일본은 일찍부터 같은 기업 내 복수노조의 병존을 인정해오고 있으며, 사용자는 소규모 노동조합이라 할지라도 독자적인 단체교섭에 임할 의무가 있다. 오히려 단체교섭에서 작은 노조라고 차별을 하는 경우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된다(이정, 2009: 499).
둘째, 법적 차이보다 더 큰 것은 사용자가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받아들이는 관행이나 인식의 차이이다. 한국의 경우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단체교섭을 하려면 ‘죽을 각오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되고, 자칫하면 소수 정예의 장기적인 ‘저항’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진숙경, 2007: 219). 한국 신생 노조의 가장 큰 어려움은 사용자가 노동조합을 아예 인정하지 않거나 교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정규노동센터의 연구(2006: 118)에 따르면 한국 비정규직 노조가 회사와 교섭이 안되는 이유로 사용자의 교섭 기피(47%), 노조 불인정(25%)을 꼽았다. 즉 한국은 노사관계가 대립적이고 사용자들이 노동조합에 매우 적대적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비정규직조차 노동조합을 만들기가 한국보다 용이하다. 일본 노동조합의 경우 기존 기업 내 노동조합이 비정규직노조를 만들기 위해, 먼저 일본 사용자측에 설명을 하고 조직화를 시도한다.
이 때 일본 사용자들의 반응은 찬성이 60%인 반면, 반대는 10%에 미치지 못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노동정책・연수기구, 2006: 6). 일본 사용자들이 건전한 노사관계를 위해서는 노조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정이환, 2012: 316).
 

일본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7%(2018년 기준)로 높은 편이 아니다. 여러 측면에서 일본은 노동조합이 강한 권력을 가진 국가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의 노사관계는 왜 차이가 있을까.

 

일본사회의 기본조직으로서 노동조합

 

이에 대한 답의 일부는 2019년 1월13일 방문한 와세다대학의 노동정치 전공자 시노다 도오루(篠田徹)교수에게서 그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일본은 정권의 성향이나 정치에 상관없이, 노동조합은 사회 기본조직으로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고 ‘노동조합’을 통해서 회사와 사회의 ‘제도’를 통해서 역할을 하는 것이 시민의 보편적인 권리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대기업은 대부분 노동조합이 존재하며, 노조가 없으면 오히려 떳떳한 기업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특히 노조가 없는 기업들은 경영자가 왠지 위축되어있고 주변 상황을 매우 신경 쓴다. 일본사회(community)는 공기(空気)를 읽는 것이 중요한 사회이다. 중소기업은 특히 눈치를 본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없는 기업들은 노조가 있는 기업, 특히 대기업이 하는 임금협상이나 방식(즉 공기)을 보고 그 스타일을 따라간다. 매해 일본의 임금협상(춘투)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3월 말까지 대기업이 임금수준을 정하고 나면, 그걸 보고 중소기업이 4월부터 5월까지 정한다.” 그는 일본에서 기업이란 사용자와 노동자가 힘을 합쳐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하나의 규범(norm)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위와 같은 일본의 규범, 노동조합에 적대적이지 않은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일본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비롯된다. 

일본 노사관계의 출발점은 1945년 일본이 패전한 이후 일본을 점령한 미군정(GHQ)의 정책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는 1945년부터 1952년까지 미군정이 점령했으며, 강한 사회개혁정책을 펼쳤다. 특히 점령 초 미군정을 지배한 정책입안자들은 일본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국가가 되려면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할 수 있는 노동조합과 그에 기반을 둔 좌파정당이 사회의 기본조직으로 필요하다고 보았다. 당시 맥아더(Douglas MacArthur)사령관은 반공주의자였지만 일본에서 노동운동이 활성화되어야 반(反)군국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 전통이 정착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일본노동조합법은 헌법보다 먼저 1945년 12월에 통과된다. 미군정이 노동조합의 결성을 장려하며 일본 노동운동도 활발해진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냉전질서가 심화되고 한국전쟁이 일어나며 미군정의 정책 역시 ‘역코스(逆コース)라 불리는 반(反)개혁 바람이 불게 된다. 미군정은 공무원노조의 파업권을 금지하기도 했고 노동조합에서 공산당계를 대대적으로 추방하기도 하는 등 초기점령정책에서 변화한다(이시카와 마스미. 2006). 그러나 일본의 노동운동은 거세게 타올랐고 1950년대에 조직률이 50%에 육박하게 된다.
1945년부터 1960년까지는 일본의 노사 간 투쟁이 치열한 시기였다. 흔히 일본 노동자들은 파업도 투쟁도 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때는 다르다. 가장 큰 이유는 1953년 이후 일본경제를 뒷받침했던 미군정의 원조가 중단되고, 한국전쟁으로 일시적으로 부흥했던 일본 경제가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일본 거리에는 다시 대량의 실업자가 넘쳐난다. 기업은 해고를 단행했고,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을 탄압하거나 어용노조를 만들며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았다. 탄압이 거셀수록 노동자들의 투쟁 역시 격렬해졌다. 일본 노동과 자본 측이 화해를 하게 된 것은 1960년 이후이다.

 

1960년 이후 노사 간 합의의 시작

 

노사 간 격렬한 투쟁 끝에 협의와 화해의 시스템이 자리 잡는 것은 선진 자본주의국가에서 노동이 사회권을 가지는 일반적 과정이다. 사용자는 노조를 탄압하거나 대립하기보다는 화합하는 것이 기업운영을 위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한다. 노동조합도 투쟁만으로는 노동자들의 복리를 확장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일본은 1960년대 이후 소위 <일본적 노사관계>라는 용어가 적용될 수 있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일본적 노사관계>는 연공임금, 종신고용, 기업별노동조합이란 세 가지를 특징으로 한다. 물론 일본에서 노사타협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힘의 우위는 어디까지나 자본 측에 있었다. 일본의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투쟁적·계급적 노동운동이 패배하고, 계급노선을 반대하는 민간기업 노동조합 중심으로 노사관계가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적 노사관계>가 반드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서유럽의 경우 노사가 타협을 하며 노동자는 고용을 보장받는 대신 임금인상을 자제하며 보편적 국가 복지시스템을 만들었다. 반면 일본은 <기업>을 중심으로 회사 내에서 노사가 타협하고, 회사 내에서 종신고용과 기업복지를 누리게 된다. 즉 일본사회는 <기업>을 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고 노동자는 <회사형인간>이 되어야했다. 나아가 일본은 서유럽이나 스칸디나비아국가에 비해 국가복지 수준이 낮은 편이다. 기업복지가 다르기 때문에 대기업노동자들과 중소기업·파트타임 노동자들 간에는 엄연히 격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도 성장기에는 비교적 중소기업노동자들도 지속적 임금상승을 통해 일정한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일본은 예외적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는데 이는 노사관계 때문만이 아니다. 일본은 자민당이 38년간 장기집권을 유지했다. 그런데 보수정당이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 이전까지는 OECD국가들 중 3~4번째로 평등하고 완전고용이 이루어진 국가였다. 즉 평등지수가 높은 국가들 중에 사민주의정당이 정권에 참여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라는 점에서 예외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았다(펨펠, 2001: 47-55). 그러나 노동세력이나 좌파정당이 배제된 것은 아니었다.
일본사회당은 전후 일본정치사에서 집권은 하지 못했지만 제1야당으로 자민당과 경쟁했다. 사회당은 서유럽 좌파정당과 다르게 전체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복지국가의 한 축이 되지 못했다. 대신 평화헌법수호를 내세우며 일본 전후 역사에서 일본이 전전체제로 돌아가지 않게 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일본사회당의 가장 큰 기반은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 이하 ‘총평’)라는 노동조합 전국조직으로, 총평은 공무원과 교사,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중심의 노동조합이었다. 즉 일본의 <노동>세력은 사회당을 통해 정당체제, 정치영역에서 대표될 수 있었다.
위와 같은 <일본적> 노사화합체제와 사회당-자민당 경쟁구도는 1990년대 이후 일본이 버블붕괴와 경기침체에 들어가면서 위기와 재편을 맞이하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과정과 일본 정치의 변화

 

1990년대 일본정치 및 사회의 급속한 재편은 자민당 장기집권체제가 위기를 맞이하며 시작되었다. 전후 일본의 사회통합의 한축이 기업을 통한 노동자통합이었다면, 또 한 축은 지방 공공사업·보조금을 통한 지방과 도시의 통합이었다. 자민당은 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면서도 세금수입을 지방 공공사업과 각종 이익단체를 위한 보조금정치에 투입해 자민당정치를 안정화시켰다. 지방에서는 각종 공공사업(댐건설, 신칸센 건설, 농지개척)들이 이루어지며 자민당의 지지기반인 지역의 농민, 자영업자, 건설업자들의 이익을 뒷받침해주었고 도시와 지방 간 격차를 해소할 수 있었다(사이토 준, 2018).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파고는 일본 역시 예외가 아니었으며 1990년대 초반 일본 사회는 버블 붕괴로 신자유주의화 흐름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지방과 이익단체에게 제공되던 공공사업과 보조금이 정치부패와 재정적자의 원흉으로 지적되며 자민당정치의 정당성도 훼손되기 시작했다. 이에 일본은 1990년대 들어와서 재계와 정계 내에서도 ‘시장자유화 및 작은 정부’, ‘유연한 노동시장’을 요구하는 입장이 점차 힘을 얻어가기 시작했다.
자민당정치가 위기를 맞이하며 38년 만에 자민당정권이 무너지고 1993년 비자민연립정권이 수립된다. 1994년 선거제도개편을 비롯한 정치개혁의 바람이 불지만, 그 과정에서 무너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부패스캔들에 휘말려서 정치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된 자민당이 아니라 사회당이었다. 사회당은 정치개혁 소용돌이에서 사민당으로 이름을 변경했으나 현재 중의원·참의원 각각 2석씩만 가진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사회당 침체 이후 자민당과 경쟁하는 제1야당으로 등장한 정당은 일본민주당이다. 이들은 1998년 탄생했고 변화된 소선거구제도 하에서 의원들 간 이합집산 속에서 성장했다. 민주당은 2009년 9월에 일본 전후 정치사에서 최초로 다수파에 의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1998년부터 2016년까지 존재했던 일본민주당은 (민진당으로 당명을 개정했다가 현재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으로 분열되어 있다) 정당 강령이나 세력 분포상 좌파정당이 아니라 리버럴정당인데 일정하게 ‘노동’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 일본민주당의 당 강령이나 의원들의 이념성향을 보면 좌부터 우파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어, 노동자정당이나 사민주의정당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1994년 소선거구제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의원중심 정당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고정된 지지층은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이하 ‘렌고’>라는 일본 최대 노동조합 전국조직에 기반하고 있으며 적어도 민주당의 고정표의 20% 정도는 노동조합에서 나온다. 렌고는 과거 사회당-총평 정도는 아니지만, 민주당의 정치자금에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민주당을 움직이는 정당조직의 상당부분은 사실상 렌고가 없으면 돌아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일본 민주당, 그리고 현재 민주당에서 분화된 정당들은 여전히 렌고 산별 후보들에게 일정한 비율로 공직후보선출권을 주고 있다.
 
 
 

일본민주당은 2018년 분당사태를 겪으며 현재 입헌민주당(立憲民主党)과 국민민주당(国民民主党)으로 분열되었다.
렌고는 1998년부터 선거방침에서 배타적으로 민주당 지지를 선언해왔고 현재는 개별단위노조나 산별 차원에서 정당 소속 의원들을 지지하고 있다.
필자는 정당과 노조를 찾아 다음과 같은 질문을 거듭 던졌다. “혹시 일본의 노조출신 의원들은 노동조합의 경력을 이용해서 의원이 되고난 이후에는 <노조>출신임을 지우고 싶어 하거나 노동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는 정책결정을 하지는 않는가?”  

이 질문에 대해 각 관련 정당들과 노동조합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런 일은 발생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물론 의원에 따라 <노동조합>과의 결속이 좀 더 강한 의원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노조출신 의원들은 노동조합과 정당의 방침이 달라서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동조합 간부를 거쳐 의원이 된 경우에는 <노동>의 이해를 배반해 입법 행위를 하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국민민주당의 한 실무자는 “오히려 우리는 <노조출신 의원>은 전체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지나치게 노동조합의 이해만 대변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라고 밝혔다.
의원들이 노동조합의 이해, 나아가 노동의 이해를 배신할 수 없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노동조합출신 의원은 철저하게 해당조직의 결정에 의해서, 자기 조직의 이해를 대변하겠다는 목적에서 국회의원이 된다. 전일본철도노동조합총연합회(이하 ‘JR총련’)출신으로 참의원을 지낸 적 있는 타시로 가오루(田城郁) 부위원장은 “개인적으로는 정치는 하고 싶지 않았고, 제일 싫은 게 정치였다. 그러나 조직적으로 지명을 받아서 조직의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6년간 열심히 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즉 조직에서 검증된 사람만이 조직의 이해 실현을 위해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
둘째, 노동조합(특히 산별 노조)의 이해를 위해 정치인이 되는 만큼, 그의 정치자금은 전적으로 노동조합이 책임진다. 일본에서는 1994년 선거제도개편과 정치자금법에 관한 규제가 강화되며 단체 및 기업들이 의원이나 정당에게 자금을 직접적으로 제공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일본의 노동조합들은 각각 별도의 정치단체를 설립해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있다. 규제가 생기긴 했지만 한국보다 노동조합의 정치자금제공이 용이한 편이다.
아사히신문의 2006~20008년 3년간 정치수입보고서 분석에 따르면 민주당 국회의원 35명 중 정치헌금과 정치자금 파티권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렌고가 정당에 3년간 지원한 자금은 약 11억 엔(120억 원)을 넘어섰다.

 

 

* 파티권 ; 정치인이 정치자금을 모으기 위해 유료로 개최되는 연회로, 한국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와 비슷하다. 개인은 파티권1매당 150만엔(1500만원)이하로 정치자금을 제공할 수 있으며, 200만엔(2000만원)이상일 경우 사람이름과 주소 등을 기입해야 한다. 
 

위의 표는 공식적인 정치자금만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노동조합 관계자로부터 정치자금에 대해 “합법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상 노동조합이 출신 의원의 모든 정치자금, 전체를 책임진다.”라는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즉 비공식적인 정치자금까지 포함하면 노동조합 출신 의원의 정치자금은 사실상 노동조합이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다.
셋째, 렌고는 중앙조직으로서 노동조합 출신 의원들을 간담회를 통해 일상적인 만남과 관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식적인 간담회만이 중요한 것만은 아니다. 자치체노동조합은 “자치노 출신 의원과 자치노위원장은 적어도 3일에 한번은 만난다. 물론 사적인 만남이 아니다.”라며, 노조와 의원은 주기적으로 만나 노동조합의 민원을 듣고 국회 법안과 정치현안에 대해 논의한다고 설명했다.
넷째, 일본노동조합이 조합원을 정치에 동원하는 방식은 한국과 차이가 있었다. 다수 한국의 조합원들은 정치참여에 매우 부정적인 인상을 가진다. 가끔 선거 때만 조합원들이 <돈>과 <조직력>을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렌고정치센터의 사무국장은 “기본적으로 조합원을 동원하는 건 없다. 선거에서는 조합원이 아니라 조합의 임원만을 동원하도록 되어 있다. 렌고 조합원이라 해도 일반국민들과 정치성향이 차이 있지 않다. 자민당지지자가 70%일 것이다.”라는 설명을 들었다. 

JR총련의 설명도 비슷했다. “노동조합은 해당 노조 출신 의원을 위해 파티권을 산다. 그러나 보통 파티권을 조합원에게 주며 정치참여를 권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조합원의 정치참여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일본민주당을 비롯한 정당조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해당 지역의 노조, 특히 산별노조나 기업노조의 조합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정당조직의 형성 과정에서 조합원 중 일부가 당원이 된 것이다. 즉 노조원을 비롯한 해당 지역의 이해결사체들이 정당의 지역조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조직들로 결합했다. 이에 정당조직은 해당지역의 이해관계자들의 민원창구로서 역할을 해왔고, 각 이해관계자들 간 갈등을 관리해왔다. 그리고 그 경험과 역사 속에서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자기 조직사람들이 의원이 되어야 노조의 이해, 나아가 노동의 이해가 실현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과정과 역사가 존재했다(정혜윤, 2018).
그러나 민주당은 2009년 9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집권했지만, 3년3개월의 집권기간은 실패로 평가받았고, 2012년 12월 이후 현재까지 아베독주 시대가 열렸다. 즉 전체적으로 일본민주주의에서 <노동>을 대변하는 정당의 힘은 자민당에 비해 약했으며 <노동>을 대변하는 정당이 다수파였던 기간은 너무 짧았다.
1990년대 이후 일본 역시 비정규직의 문제뿐 아니라 노동자 간 격차와 빈곤문제가 심각해졌다. 포세(posse)는 노동환경이 열악한 비정규직이 급증했을 뿐 아니라 정규직조차 과로노동, 저임금에 시달리며, 사회적 재생산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이야기가 결코 과장된 것만은 아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노동시장에서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 과정이 진전되었다.
일본적 고용안정의 축을 이루는 종신고용은 흔들리게 되었고, 파견·비정규직 등의 외부노동시장이 급격히 확대되며 전체노동자 중 비정규직노동자비율이 40%에 육박하게 되었다. 불평등지수를 말해주는 일본의 지니계수(0일수록 평등하고 1일수록 불평등하다)는 1996년부터 급등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2009년 집권하며 격차시정과 새로운 복지국가 건설을 주장했지만, 이들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가며 자민당과 아베정권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아베정권의 독주는 왜 위험할까? 가령 민주당이 집권했던 2012년에는 파견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조항이 들어간 법개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자민당정권은 복귀하자마자, 위의 보호 조항이 들어간 <파견법>을 되돌리는 형태로 재개정을 서둘렀다. 결국 2015년에 개정된 파견법은 파견노동에 관한 규제가 대폭 완화되고, 파견노동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형태로 변화했다. 즉 자민당일당우위, 아베수상의 독주는 노동자에게 결코 이롭지 않다.
문제는 민주당정권이 실패하고 현재는 민주당세력이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으로 분열하며, 아베수상과 자민당의 강세는 계속될 것 같다는 점이다. 애초에 일본 전후민주주의 70년의 역사에서 비자민당이 집권한 기간은 모두 합쳐도 5년 남짓이다. 즉 일본에는 1990년대 이후 심화된 불평등을 바로잡고 견제할 세력이 취약하다고 보아야 한다.
  
노동이 사회적 시민권을 가지는 나라를 위해    
 

일본의 시민단체인 희망연대(希望連帯)는 우리에게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 정부이고 최저임금도 오르고 긍정적이지 않은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문재인행정부의 노동정책의 갈지자 행보를 이 지면에 자세히 서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문재인정권 출범 이후 최저임금은 올랐지만 산입범위가 확대되며 임금인상 효과가 상쇄되는 법안이 민주당 주도로 통과되었다. 최근에 발표된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 추진계획안 역시 노사정의 협의, 결국 노동계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노동존중 정부, 소위 한국의 진보정권조차 정책이 일관되지 않은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 중요한 부분은 민주당을 비롯한 소위 진보적 정치세력조차 노동문제를 <온정주의적>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즉 노동세력이 독립된 시민권 갖는 노동 정치가 부재하다는 점에서 일본과 가장 차이가 있다. 

양극화해소를 말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사회복지강화를 주장하고 약자에 대한 보호를 말할 때, 말하는 자는 언제나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스스로 온정을 베푸는 자애로운 엘리트로 생각한다. 정부나 정당이 아무리 <친노동>을 내세워도 불쌍하고 가여운 노동자에게 온정을 베푼다는 시혜적이고 온정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당연히 그 방향은 은혜를 베푸는 정권과 자본의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권을 가진다는 의미는 단순히 정책방향이 노동자에 우호적이란 의미만이 아니라, 노동권을 가진 시민들이 스스로 정치과정에 참여하고 있는가 여부이다. 박정희 정부 시기에도 의료보험체제, 산재보험, 노동자 보호입법들이 도입되었고, 전두환 정부의 대학정책은 지금보다 취약한 소외계층 자녀들의 사회적 상향 이동을 가능하게 했다. 그런데 시민권이란 물질적 급부만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서 절차적 가치로서 권리획득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즉 그 정책과 수혜를 필요로 하는 사회세력과 그들의 대표가 직접 정치의 행위자로서 정치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의 확립과 이를 통한 정치적 기회와 통로의 확대를 의미한다(최장집, 2010: 168-170, 212).
일본은 일찍부터 노동의 시민권이 보장되고 서유럽보다 약하긴 해도 노동정치의 틀 속에서 제도화되어왔다. 비록 역코스과정, 사용자 우위의 노사관계 형성, 신자유주의의 물결에도 불구하고 일본 노동정치는 그 틀 내에서 변화와 개선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제도화>경험이 없는 한국과 구분된다. 즉 한국과 일본의 노동정치는 다른 유형에 속한다.  

물론 일본의 노동운동은 제도화된만큼 한국과 또 다른 고민이 존재한다. 중소기업만 공기를 읽으며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즉 사회분위기에 순응하는 태도, 바로 순응성(conformism)이 노동세력의 진전을 어렵게 했다. 일본의 노동조합이나 교수들은 일본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항의하기보다는 내 책임, 자기책임으로 돌리는 문화가 일반적이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반면 한국 노동자들은 사회나 기업에 순응하지 않고 무언가 변화를 만들어내려한다는 점에서 부러움을 표했다.  

한일 양국은 노동조합 및 시민사회 간 다른 해외국가에 비해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는 편이다. 우리는 일본 노동조합과 정당들의 성공과 실패의 역사를 통해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이는 한국 노동운동과 민주주의 진전을 위해 좋은 자산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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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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