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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 땔감이 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임승수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저자

등록일 2025년06월20일 13시2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재테크 열풍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계기는 좀 독특했다. 어느 날 검색을 하다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 곳곳에서 재테크 학습 교재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블로그에, 누군가는 재테크 커뮤니티 게시판에 관련된 독서 후기를 남기고 있었다.

 

‘어? 이상하다? 주식, 코인, 부동산 투자 방법을 책에서 다룬 적은 없는데? 왜 자본주의 비판 서적을 재테크 모임에서 읽을까?’

 

처음엔 당황스러움을 넘어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마르크스 《자본론》은 명백히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판한 책이고, 나는 그 책을 더 많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쓰려고 했을 뿐이다. 공부해서 자본주의 체제에 잘 편승하라고 쓴 게 아닌데. 체제의 문제를 꿰뚫어 보고 더 나은 대안을 함께 고민하자고 쓴 책인데.

 

상황을 알아보니 재테크 모임에서 이 책을 읽는 나름의 맥락이 있었다. 본격적인 재테크 공부에 앞서 학습 동기 부여 용도로 활용되고 있던 것이다. 마르크스 《자본론》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부를 축적할 수 없으며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니 개인이 착취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려면 재테크만이 유일한 동아줄이라는 얘기다.

 

진보 성향의 노동조합이나 사회단체에서 내 책을 교재 삼아 공부하는 일은 종종 있다. 그럴 땐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독서 방향과 반응이 있다. 하지만 재테크 모임에서 이렇게 활용되리라고는 털끝만큼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독자 저변도 넓어지고 인세 수입도 증가하니 생계형 작가에게는 반가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당혹스러운 감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사회주의 혁명가인 체 게바라가 이런저런 상품에 인쇄되어 팔릴 때는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혁명의 아이콘이 패션 브랜드의 로고로 재탄생하는 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니까. 하지만 마르크스 《자본론》까지 재테크 땔감으로 동원되다니. 전설적인 체조 선수 나디아 코마네치도 울고 갈 자본주의의 유연함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문득 한 젊은이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강의를 마친 후였는데 키가 훤칠한 청년이 다가와 질문했다.

 

“작가님, 저 ◯◯대학교에서 작가님 강의 들었던 아무개입니다.”

“오랜만이에요. 기억합니다. 반가워요.”

“제가 요즘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데요. 작가님이 자본주의에 대해 빠삭하게 잘 알고 계시잖아요. 저에게 투자 관련 인사이트를 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20대인 제가 어떤 방식으로 재테크를 하면 좋을까요?”

 

나는 그 물음에서 시대의 공기를 느꼈다. 자본주의에 우호적이든 비판적이든, 그런 건 전혀 상관없다. 어쨌든 내가 자본주의를 공부하고 책까지 내서 강의하는 사람이니, 그 틈을 뚫고 나갈 방법도 알고 있겠다는 기대. 어쩌면 그는 마르크스 해설서에서조차 ‘더 많은 이윤을 취득할 방법’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음.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재테크 경험이 없어요.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합니다. 다만 젊은 시절에는 통장 잔액을 늘리는 것보다는 자신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어떨까요. 그게 진짜 남는 장사거든요.”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어딘가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내 대답은 눈앞의 투자 수익에 꽂혀 있는 청년에게는 성에 차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거짓 없는 진심을 얘기하고 싶었다. 돈이 삶의 목적이 되어버리면, 결코 만족에 다다를 수 없다. 숫자는 끊임없이 더 큰 숫자를 요구할 뿐이기 때문이다.

 

최근 청년들이 빚까지 내며 주식과 코인에 올인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단타 수익이 일상의 화제가 되고, 대박을 쳤다는 얘기에 그날 하루의 감정이 좌우된다. 아무리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통장 잔액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게 되면 숫자 변화에 일희일비하다가 인생을 저당 잡힌다. 그날그날의 투자 소득에 삶이 흔들리고, 투자 실패는 마치 존재의 실패처럼 여겨진다. 시나브로 삶의 서사는 밋밋하고 납작해진다.

 

문득 지나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니 그저 주식과 코인 그래프로만 점철되어 있다면 그 삶이 얼마나 빈한하고 허망하겠나. 누가 죽으면서 ‘내 포트폴리오 구성이 더 안정적이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겠는가. 내 시간과 감정을 오직 수익률 그래프에 내던지지 말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가능한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좋은 사람들과 두루두루 교류하자.

 

무심코 사용하는 일상의 물건이 내 돈 주고 산 상품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노동의 결과물임을 깨닫자. 타인의 수고와 노동 덕분에 지금의 삶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자. 하나뿐인 지구에서 모든 생명체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삶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자. 그런 과정을 통해 인간은 통장 잔액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품격을 갖추게 된다.

 

통장 액수와 명품 옷으로 애써 누추한 모습을 가린다 한들 그런 식으로는 인간 명품이 될 수 없다. 그저 돈만 많은 이는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일 뿐이며 종종 사기꾼과 허영에 휘둘리는 인물들이 주변에 꼬인다. 하지만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이는 수백 년이 흘러도 허름한 생가에 그를 기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살아온 자취, 그리고 남겨진 향기다.

 

낑낑대며 이 글을 쓰다가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에서 일을 보는데, 공간적 유사성 때문인지 모 청소년 단체 건물 화장실 변기 위에 붙어 있던 문구가 떠올랐다. 시애틀의 크리족 원주민 추장의 말이라는데 화장실에서 만난 최고의 문장이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마지막 강이 더럽혀진 후에야

마지막 남은 물고기가 잡힌 후에야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또 누군가 재테크 조언을 구한다면 모 청소년 단체 건물 화장실 몇 번째 변기에서 소변을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내 책이 비록 재테크 동기 부여 도서로 독자와 인연을 맺을지언정, 역할이 거기에서만 그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재테크 동기 부여로 책을 읽은 사람들도 하나같이 자본주의 시스템이 착취 시스템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이런 사실을 좀 더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의견을 남긴다. 자신이 부동산과 주식을 공부하는 것도 결국 기득권층 자본가가 되려는 발버둥인가 싶어 혼란스럽다는 의견도 적지 않게 보인다.

 

누구나 노력해 부자가 될 수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하지만 소수 자본가에게 쏠린 엄청난 부는 착취당하는 다수의 빈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게, 자본론이 밝혀낸 불편한 진실이다. 설령 재테크 공부 모임이 계기였다 한들, 내 책이 잠시 재테크의 땔감으로 쓰였다 한들, 좀 더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그 자체로 이득 아닐까. 그저 내 책이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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