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대선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으로 마무리됐다. 12·3 내란으로 시작된 이번 대선이 결국 내란 세력 심판과 정권교체로 귀결되었다. 내란 종식과 정의로운 사회개혁을 열망하며 광장을 지켜낸 시민들의 만든 빛의 연대, 헌신과 투쟁의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선과정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지지 선언과 정책협약이 넘쳐났지만, 어느 정당과 어느 후보도 더 나은 사회의 정책 비전을 국민에게 각인시키지 못했다. 지난 18대 대선의 경제민주화, 19대 대선의 소득주도 성장, 최저임금 1만 원, 노동존중사회 등과 같은 정책 담론조차 21대 대선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다.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는 대선과정에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을 전면에 내세웠다. 아울러 윤석열 내란이 초래한 경기침체와 경제위기 상황에 대응하여 경제회복, 성장을 최후선 과제로 제시했다. 반면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을 외쳤으나 진짜 대한민국의 비전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지 못하였다. 이제 이재명 정부는 내란 종식과 민주주의 회복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고, 경제정의를 실현함으로써 국민이 행복한 정의로운 사회 대전환에 나서야 할 출발점에 서 있다.
▲ 5월 1일 프레스센터(서울)에서 열린 '한국노총-이재명 후보 정책협약식'
새 정부의 정책 기조와 노동정책 방향
지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문재인 정부의 출범 때와 마찬가지로 이재명 정부도 대선이 끝난 다음 날인 6월 4일부터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하게 된다. 이에 대통령 비서진 인선과 함께 (가칭)국정기획자문위원회 등을 설치·운영을 통하여 새 정부의 정책 방향 및 국정과제 수립을 위한 활동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역대 보수·진보 정부를 막론하고 출범 첫해는, 새로운 리더십에 기초해 핵심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국정 주도권을 확립해가는 결정적 시기이다,
특히 100일의 활동이 새 정부의 성패를 좌우한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이루어지는 핵심 정책 방향은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신뢰와 지지로 이어지고, 임기 내내 국정 동력의 기반을 형성하게 된다. 이재명 정부는 민생경제와 내수회복을 살리기 위한 경제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하되, 사회적 대화를 통한 포용과 소통, 통합의 리더십을 함께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첫 노동정책 행보는 새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를 결정한다. 무엇보다 노동정책은 핵심적인 민생대책이란 접근이 필요하다. 사각지대 없는 노동권을 보장하고,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의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는 것, 전체 노동시장의 고용안정과 저임금노동자들의 소득안정과 생활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야말로 내수경제 회복. 진정한 민생대책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새 정부의 노동정책 우선순위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① 노동법 밖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 대책 수립
첫째, 사각지대 없는 보편적 노동권이 보장되도록 제도적 기반조성을 하여야 한다. 우리 노동시장에서는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플랫폼노동자 등 비정형노동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만큼 사각지대 없는 보편적 노동권 확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우선 근로기준법의 보호 대상을 5인 미만 사업장까지 전면 확대해야 한다.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의 단계적 적용은 1998년 대통령령으로 일부 규정이 적용된 이래 27년 넘게 전면 적용을 유예하고 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노동을 보장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적용문제를 더는 경제 사정을 이유로 미뤄서는 안된다. 영세·소상공인에 대한 과감한 지원과 함께 계도기간을 부여하는 조치를 통해서 적어도 3년 이내 근기법의 전면 적용을 추진해야 한다.
아울러 노동법 적용대상에서 배제되는 고용형태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 선진국 사례와 같이 ‘고용관계 추정’ 제도의 도입을 모색해야 한다. 노동권 사각지대에 방치된 다양한 고용형태 종사자들에게 보편적 노동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일하는 사람을 위한 기본법’ 제정이 시급히 필요하다.
② 불평등-양극화로 점철된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 구조개선
불평등한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 구조개선을 위한 노조할 권리보장과 초기업 단위 연대교섭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노조할 권리의 보장이다. 우선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고 노조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했던 윤석열의 반노동 정책부터 전면 폐기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실질적 지배력 있는 사용자의 교섭 책임을 강화하고, 쟁의행위에 대한 사용자의 무분별한 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조법 제2·3조’ 입법이 연내 추진되어야 한다.
지난 우리 정부가 비준한 ILO 제87호, 제98호, 제29호 협약을 위배하는 타임오프 한도 제한, 노조 임원·대의원 자격 제한, 쟁의행위 및 교섭대상의 제한, 과도한 필수업무 유지의무, 주요방위산업체 종사자의 쟁의행위 금지, 노조법상 형사처벌 규정 등의 개정도 요구된다. 공무원·교원도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헌법상의 정치기본권이 회복되어야 한다.
특히 기업별 노사관계와 교섭구조의 한계를 극복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산업·지역·업종 단위로 체결된 단체협약의 효력확장 제도개선, 공공부문에서 저임금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연대적 교섭 구축 확립, 실질적 노정 교섭 보장 등 모범적 초기업 교섭 및 단체협약 모델을 구축시키는 정책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행 노조법 제30조 제3항에 의거 정부는 산업·지역별 교섭 등 다양한 교섭방식이 활성화될 수 있는 지원계획과 예산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③ 지속가능한 일자리 정책으로써 법정 정년연장과 사회안전망 구축
새 정부는 국민연금 수급연령과 법정 정년의 차이로 인한 소득 공백 해소,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노동시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에 나서야 한다. OECD 국가 중 유일한 공적연금의 수급 연령과 불일치 하는 정년제도의 문제를 2025년 정기국회 내에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 30인 이상 기업의 80% 이상이 정년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정년문제는 단순히 정년연장의 혜택을 누리는 기업들만의 문제가 아닌 노동시장의 지속가능한 일자리 대책의 핵심임을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경제위기 상황을 이유로 증가하는 무분별한 해고 방지를 위한 기업변동에 따른 고용 승계 보장법, 소득기반 전국민고용보험의 조속한 전면 시행 등도 요구된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 대책’을 수립하고 석탄발전소 폐쇄에 따른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지역 지원특별법’ 제정, 공공재생에너지 확대 등 다각적인 고용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④ 더 나은 삶을 위한 실노동시간 단축 및 주 4.5일제 확대 추진
새 정부에서는 장시간 노동 근절을 위하여 ‘1일 최장 노동시간 제한’, ‘포괄 임금 약정 금지’ 및 ‘근로시간 적용제외·예외, 특례업종’ 폐지, ‘11시간 연속 휴식 시간제’ 전면 도입,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정상화, 연장 노동시간의 단계적 감축, 업무 외 시간 연결차단권 도입, 일정한 기간 내 야간노동 총량규제 등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제도개선 플랜 및 노동자 건강권 보호 대책을 명확히 수립해야 한다.
아울러 주4.5일제는 일과 삶의 균형, 온실가스 감축, 일자리 창출, 생산성 향상 등 정책적 효과가 매우 크다. 시범사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임금·노동조건 저하 없는 주4.5일’ 시행을 위한 제도개선을 모색해야 한다. 사회적 대화 기구에 ‘국가노동시간단축위원회’를 설치하여 2030년까지 연 1,700시간대로의 실노동시간 단축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로드맵를 수립·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번 대선과정에서 한국노총은 이재명후보를 공식 지지후보로 결정하고 이재명 후보와 직접 ‘노동이 만드는 정의로운 전환’ 정책협약을 체결했다. 향후 한국노총은 이재명 정부가 대선과정에서 약속했던 노동존중 정책협약과 공약들을 말이 아닌 실천으로 이행하도록 적극적인 정책개입에 나설 것이다. 우리 사회의 책임있는 경제주체로서 사회적 대화를 강화하여 복합위기 시대에 타협과 신뢰의 노사관계가 구축될 수 있도록 책무를 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