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나영
5·18 광주항쟁 당시, 관련하여 일본이 작성한 외교문서 중 일부가 얼마 전 해제되어 읽고 있다. 일본은 미국의 최측근으로서 한국의 정치·군사·여론 동향을 분석하고 있는데, 당시의 긴박한 정세를 외부자가 오히려 더 선명하게 파악하고 있던 역설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한국 사회의 움직임을 외부에서 얼마나 체계적이고 정밀하게 감지하고 있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한 사이에, 너무도 잘 간파당하고 있었다.
그러한 기밀 외교문서를 지금 나는 AI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번역해가며 읽고 있다. AI가 외교문서의 문장을 읽고 해석하고 맥락을 제시한다. 기술은 언어와 시공간의 장벽을 제거하고,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나에게 일본 외교문서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내 깨닫는다. 내가 읽고 있는 문서는 수십 년간의 공개 요구와 소송, 그리고 제한적 공개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여전히 대부분 기밀문서는 공개되지 않았고, 어떤 문서가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과 정보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며, 정보 접근권과 통제권 모두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있다.
1980년대 광주에서 외국 정보기관들이 수집해야 했던 정보의 종류를 생각해보자.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어떤 조직에 속해 있는지, 누구와 연락하는지. 이런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을 보내서 다양한 정보원들을 활용하거나, 전화 도청, 자료 확보 등을 진행해야 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현지 네트워크와 정치적 감각,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는 능력까지 필요했다.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부터 자발적으로 생성되는 정보의 흐름 안에 들어간다. 누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앱을 열었는지, 어떤 키워드를 검색했고,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냈는지 모두가 실시간으로 기록된다. 과거라면 정보기관이 수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파악할 수 있었을 움직임이, 지금은 일상적 기술 인프라 속에서 자동으로 수집된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이 정보의 민주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40년 전 기밀문서들을 AI의 도움으로 간신히 읽을 수 있을 뿐이지만, 오늘 하루의 내 모든 디지털 흔적은 빅테크 기업과 국가 시스템에 의해 실시간으로 저장되고 분석된다. 감시는 도청이나 감시카메라의 문제를 넘어 일종의 시스템이 되었고, 정보는 우리의 행동 및 미래를 예측하고 통제하기 위해 쓰이는 자원이 되었다.
정보 권력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부가 정보를 독점했다면, 이제는 빅테크 기업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부가 이를 활용한다. 미국의 NSA는 구글과 메타의 협조 없이는 글로벌 감시망을 운영할 수 없다. 중국의 사회 신용시스템은 알리바바와 텐센트의 결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민을 평가한다. 한국의 코로나19 역학조사는 통신사와 카드사의 데이터 제공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AI 기술의 발전은 이렇게 국가-기업 결합을 가속화한다. 팔란티어의 '고담(Gotham)' 플랫폼은 미국 정보기관과 군대에서 활용되며, 사회 전반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데 사용된다. 우버는 운전자의 실시간 위치를 추적하여 서비스를 최적화하고, 메타는 사용자의 감정 상태를 예측하는 AI 기술을 개발 중이다. 또한, ChatGPT와 같은 AI는 사용자의 대화를 통해 개인의 성향과 심리를 분석한다. 감시의 범위와 정밀도는 늘어나지만, 이에 대한 공적 통제는 없다.
감시 기술은 개인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게 되었고, AI는 우리의 행동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석은 단지 개인 정보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세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한마저 일부 플랫폼에 내주고 있다.
검색 결과는 구글이, 영상 시청 순서는 유튜브가, SNS 피드는 메타가 정한다. 알고리즘은 사람이 만들지만, 정보 흐름을 구성하는 방식에서 인간의 개입은 점점 불투명해진다. 무엇을 알아야 하고, 언제 알아야 하며, 어떤 순서로 이해해야 하는지, 플랫폼이 결정한다.
과거 5·18의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수십 년이 걸렸다면, 지금의 디지털 감시는 실시간으로 작동한다. 개인은 여전히 제한적 정보에만 접근할 수 있지만, 개인에 대한 정보는 전방위적으로 수집되고 분석된다. 우리는 기술의 발전으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더 정밀하게 분류되고 예측 당하고 있다.
정보사회는 단지 정보가 많은 사회가 아니다. 누가 어떤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그것을 어떤 기준으로 해석하며,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가 권력의 비대칭이 문제다. 기술의 진보가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제,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감시하고 있는지를 역감시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과거의 질문이 “그들은 우리를 아는가?”였다면, 지금의 질문은 이렇다. “우리는 그 시스템을 알고 있는가?”